[week& 맛] '냉차' 전통 주스 여름 별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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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돌아온 아이가 마중하는 엄마는 아랑곳없이 쪼르륵 냉장고로 달려간다. 저녁 찬거리 사러 슈퍼마켓에 다녀온 엄마도 마찬가지다. 둘째가 학원에서 돌아왔는지 살피지도 않고 냉장고 문부터 연다.

냉장고 문의 여닫이 횟수가 부쩍 늘어났다. 아이·어른 할 것없이 더위를 달랠 시원한 음료를 찾는 것이다. 아이들 눈에는 톡톡 쏘는 청량음료가 최고지만 가족의 건강을 따지는 엄마 입장에선 별로 달갑지 않다. 그렇다고 맹물만 권할 수도 없는 일이다.

본격 더위가 시작되면서 주부들의 고민거리 중 하나가 건강음료다. 몸에 좋으면서도 갈증을 달래줄 시원한 음료는 없을까.

궁중음식연구원 한복려 원장은 "답은 먼 곳에 있지 않다. 이름도 모르는 화려한 색과 모양의 외국 음료에 현혹되지 말고, 조상님들이 즐겨 마시던 전통 냉차 가운데 찾으면 된다"고 말했다. 그는 "더운 날 우물가를 지나던 나그네가 아낙에게 물 한그릇 청해 마실 때 갓 길어올린 물을 바가지에담아 버들잎을 띄워 내밀던 옛 정경을 떠올려 보라"며 "물 한그릇에서조차 급하게 먹어 몸에 해가 될까 염려하는 마음이 우리 전통 음료의 본뜻"이라고 덧붙였다.

예전엔 삼천리 방방곡곡 어느 곳의 물이라도 바로 마실 수 있을 정도로 물이 좋았다. 어떤 골짜기의 물은 톡 쏘는 청량감을, 어떤 우물의 물은 달달한 달콤함이 녹아 있었다. 그래도 우리 조상들은 맹물로 마시는 것에 만족하지 않았다. 물 맛을 더 좋게 하기 위해 제철에 나는 열매.새순.나뭇잎.뿌리를 냉수에 타서 마시기도 했다. 제철에 갈무리한 재료로 다양한 색깔을 내서 즐기기도 했다. 단순히 더운 몸과 갈증을 풀어주는 데 그치지 않고 식은 몸을 보할 수 있도록 세심한 배려도 빠뜨리지 않았다.

여름철에 가장 인기있는 전통 냉차는 오미자(사진(左)) 화채. 오미자는 신맛이 나면서 붉은 색을 내는 열매다. 땀을 멈추게 하고 가래를 삭여주며 신장 기능을 돕는 한약재이기도 하다. 오미자를 우려낸 국물에 꿀.과즙.한약재를 섞어 과일이나 꽃을 띄워 내면 보는 것만으로도 청량감이 느껴진다. 오미자 국물에 보리를 띄운 보리 수단은 여름철 햇보리가 나오면 해먹는 별미 냉차. 삶은 보리를 녹두 녹말에 여러 차례 묻히며 익혀 유리알처럼 투명하게 만들어 띄운다. 새콤한 맛과 더불어 보리로 요기까지 가능해 요즘 음료로 치면 기능성 음료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한약재를 사용한 냉차로는 생맥산이 으뜸이다. 성질이 찬 맥문동.황백과 성질이 따뜻한 오미자.인삼을 같이 써서 몸의 열을 내리면서도 원기를 돕게 하도록 처방한 약이성 음료다. 오미자의 신맛과 꿀의 단맛이 들어가 청량감이 뛰어나다. 약간 불그스름한 황색이 나서 얼음을 띄우면 매우 시원하게 보인다. 무엇보다도 색이나 향이 강하지 않아 보리차처럼 편안하게 마시기 좋다.

갈수(渴水)는 농축 과일즙에 약재를 보태고 꿀로 단 맛을 낸 전통음료다. 옛 음식책 '임원 십육지'에 나오는 혼합성 음료의 일종이다. 목이 마를 때 그냥 물보다 신 과일의 농축액이나 소화를 돕는 곡물 발효 재료로 만든 주스가 효과가 더 뛰어남을 보여주는 냉차다. 일반인들이 외국에서 들어온 것으로 알고 있는 농축 과일 주스는 우리 조상들이 오래 전부터 만들어 먹던 갈수와 다를 것이 없다. 여름철 과일인 포도로 만든 포도 갈수는 껍질의 보라색이 녹아나와 시각적으로도 무척 시원한 음료다. 맛이 시고 달며, 갈증 해소 능력이 뛰어나다.

유지상 기자
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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