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작&상영작] 헐크 ★★★☆ (만점 ★ 5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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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능력은 인간에게 축복인 동시에 저주가 되기도 한다. 4일 개봉하는 '헐크'의 주인공 브루스 배너(에릭 바나)가 그렇다.

과학자인 그는 어느 날 실험실에서 감마선에 노출되는 사고를 당하면서 화가 나면 괴력의 소유자 헐크로 변하는 신세가 된다. 헐크의 행동은 파괴, 또 파괴뿐. 배너에겐 난폭하고 통제불능인 녹색 괴물 헐크가 바로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이라는 사실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헐크'는 '슈퍼맨'이나 '스파이더 맨'의 영웅과 다르다. "배트맨은 동굴에 가고 슈퍼맨은 공중전화 부스에 가지만 헐크는 헐크가 되는 걸 통제할 수가 없다"는 주연 에릭 바나의 말처럼 헐크는 그냥 한순간에 헐크가 돼버린다. 그 누구도, 자신조차 이 괴물을 막을 수 없는 것이다.

'헐크'를 즐기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이건 만화잖아!'라는 탄성이 절로 나올 만큼 신출귀몰한 헐크의 액션을 잠자코 따라가는 것이다. 하늘로 솟았다 바다로 꺼져도 멀쩡한 헐크의 지칠 줄 모르는 괴력은 가면을 쓴 다른 영웅들의 그것과 확실히 차별화된다.

할리우드 최고의 디지털 기술을 자랑하는 ILM과 1억2천만달러(약 1천4백억원)의 예산, 그리고 '와호장룡'으로 세계를 놀라게 한 리안(李安) 감독의 연출이 한데 모인 이 거대한 블록버스터는 여름철 머리 식히는데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다른 하나는 "이 영화는 사이코 드라마"라는 감독의 설명처럼 브루스 배너의 심리를 쫓아가는 것이다.

배너의 성장 과정은 베일에 싸여 있다. 여기에는 역시 과학자였던 아버지(닉 놀티)의 비밀 실험과, 연구실 동료 베티(제니퍼 코널리)의 아버지인 로스 장군(샘 엘리엇)의 과거가 얽혀 있다.

죽은 줄 알았던 아버지에 대한 애증과 갈수록 파괴를 즐기게 되는 배너의 은밀한 심리 등을 읽을 수 있다면 꽤 색다른 블록버스터로 다가올 것이다. 다만 초반이 다소 늘어지는 게 오락용으로서는 큰 흠이다.

주연 에릭 바나는 호주 출신의 신인으로 리안은 그가 괴물로 분했던 데뷔작 '차퍼(Chopper)'를 보자마자 캐스팅했다고 한다. 만화가 원작인 '헐크'는 1970년대에 TV 시리즈 '두 얼굴의 사나이(The Incredible Hulk)'로 만들어져 인기를 모으기도 했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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