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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녀가 ‘간호원’ 된 건 언제부터였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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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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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동탄성심병원 김현아 간호사가 최근 ‘올해의 간호인’으로 선정됐다. 지난해 메르스 환자를 성심껏 돌본 공로를 인정받았다.

20세기초 선교사 에드먼즈 첫 사용
108년 전 『간호교과서』 문화재로

간호사는 1987년 의료법이 개정되면서 사용됐다. 그 전에는 간호원이었다. 영어로 ‘너스(nurse)’, 간호원이라는 이름 석 자에도 역사가 있다. 사극에 등장하듯 조선시대에는 의녀(醫女)로 통했다. 천민 출신의 관기(官妓)가 대부분이었다.

 간호원은 한국 근대의료사의 한 대목을 보여준다. 20세기 초 캐나다 출신의 간호선교사 마거릿 에드먼즈(1871~1945)가 만든 신조어다.

당시 중국의 호병인(護病人), 일본의 간호부(看護婦)에서 공통으로 사용됐던 ‘간’과 ‘호’를 수용하고, 여자를 가리키는 ‘부’ 대신 의미가 포괄적인 ‘원(員)’을 덧붙였다.

옥성득 미국 UCLA 아시아언어문화학과 교수는 “한국 간호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노력의 하나”라고 평가했다.

 마거릿 에드먼즈는 한국 최초의 간호교육기관인 보구여관 간호원양성학교(현 이화여대 간호학부)를 1903년 설립했다. 미국 북감리회 여자해외선교부의 일원으로 한국에 파견됐던 그는 한복을 대신하는 현대식 간호복을 디자인하기도 했다.

그가 편찬한 『간호교과서』(상권 1908년·사진, 하권 1910년)가 11일 문화재로 등록 예고됐다. 한글 최초의 간호학 교과서다.

문화재청은 “20세기 초 의학용어 한글 번역과 우리말 연구에 도움을 주는 자료”라고 설명했다. 일례로 마취를 몽혼(夢魂), 수술실은 몽혼실, 소독약은 패독약(敗毒藥), 연고는 고약(膏藥)으로 번역했다. 당시 번역 못한 스폰지·드레싱 등은 지금도 사용되고 있다.

박정호 문화전문기자 jhlogo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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