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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되치기당한 한국 관광산업…총체적 개혁 필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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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선 산간오지에도 외국인 관광객이 북적댄다. 일본인도 평생 한 번 갈까 말까 한 산골에 외국인 관광객이 찾아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아베노믹스가 겨냥한 엔저(低)효과다. 한국에서는 아베노믹스를 평가절하한다. 일본 국내 소비가 살아나지 않고 물가목표 2%도 달성하지 못했으며 경제성장률도 끌어올리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이렇게 일본의 아베노믹스를 평가절하하는 동안 일본은 한국에게서 관광객을 무더기로 빼앗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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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일본은 1년 전에 비해 47% 늘어난 1974만명의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했다. 같은 기간은 한국은 6.8% 감소했다. 관광은 이제 미래의 먹거리 산업이다. 일본은 이를 먼저 간파했다. 총리가 직접 지휘하고 있다. 한국보다 앞서 저성장을 경험한 일본으로선 제조업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서는 3차 산업 가운데서 관광산업의 위력을 알아봤다는 얘기다. 관광산업은 가만히 앉아서 국내로 고객을 불러들이는 공해없는 산업이다.

 국내로 들어온 외국인 관광객은 자고 먹고 산다. 뭔가를 먹어야 하고 잠을 자야 하며 물건을 구매한다는 얘기다. 일본에선 관광이 특수를 일으키면서 일본 경제 전체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관광이 3차 산업은 물론이고 제조업과 건설업ㆍ농업에 이르기까지 1, 2, 3차에 걸친 모든 산업에 온기를 불어넣고 있다. 일본 각지에서는 갑자기 불어난 외국인 손님으로 숙박시설이 모자라 홋카이도부터 오키나와까지 전국 방방곡곡 100여 곳에서 호텔 신축 붐이 일고 있다. 관광이 건설 경기까지 일으키는 양상이다. 지난해 한국을 찾은 찾은 중국인 관광객은 600만명에 달한다. 중국인이 태어나 한 번만 한국을 찾아도 220년이 걸린다는 얘기다. 하지만 정부의 관광산업 전략 부재로 국내 관광산업은 고사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지난해 100만 명 가까이 외국인 관광객이 감소한 여파다. 국내 1만7000여 관광업자 가운데 상당수는 인바운드(외국인 유치)를 포기하고 아웃바운드(한국인 해외관광)로 사업을 재편하는 경우가 속출하고 있다. 미래 먹거리 산업인 관광의 근간이 무너지고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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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아베노믹스로 관광산업 우위 확보
 한국은 2008년 이후 외국인 관광객 유치에서 일본을 압도했다. 무기는 한류였다. 엔저가 본격화하고 한ㆍ일 관계가 냉랭해지기 전까지 서울에는 일본인 관광객이 넘쳤다. 40~50대 일본 여성들이 한류 스타를 보기 위해 도로에 400~500명이 신문지 한 장 깔고 쭈그리고 앉아 있는 모습은 도처에서 목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런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외교 문제와 먹고사는 문제를 분리하지 못한 채 반일 감정을 앞세운 데 따른 여파가 적지 않다는 게 관광업계의 시각이다.

 일본은 관광입국 전략을 세우면서 국적을 따지지 않고 외국인 관광객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한국인도 일본 관광을 온다면 대환영이라는 자세다. 최근 일본 관광의 매력을 소개하고 상품화하기 위해 서울시관광협회를 초청한 일본 시골 마을 다카야마(高山, 일본 중부 ‘일본 알프스’ 아래 마을)에서도 이런 자세를 확인할 수 있었다. 다카야마 시청 관광홍보부장은 “우리는 한국을 각별히 생각하고 있고 평화와 친선을 생각해 한국인과 가깝게 지내고 싶다”고 말했다. 일본 전통 료칸(旅館) 업자들은 전통을 깨고 한국인 종업원을 잇따라 채용하고 있다. 2000만명 목표 달성을 조기에 달성한 일본이 3000만명 유치를 위해 주요 타깃으로 중국인과 한국인을 겨냥하고 있는 만큼 한국인의 마음을 사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한다는 자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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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체계적인 관광정책으로 공동화 막아야
 한국은 관광산업 공동화(공空洞化)가 우려되고 있다. 우선 엔저 공세에 속수무책이다. 엔저가 계속되는 한 일본인 유치가 어려워진다. 반면 중국인은 물론이고 한국인의 일본행은 계속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이 흐름을 한국에 유리한 쪽으로 돌리기 위해서는 한국의 매력을 발산해야 한다.

 한국에도 중국인 관광객 유커(遊客)와 동남아 관광객을 유인할 요소는 얼마든지 있다. 일본에선 눈을 관광상품화해 산간오지까지 외국인을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한국에도 태백산이나 한라산은 물론이고 평창올림픽이 열리는 산간지역에는 강설량이 풍부하다. 이를 한류상품과 연결하고 한국 고유의 먹거리와 결합해 새로운 관광상품을 만들어내야 한다. 이미 수요는 있다. 안목이 높은 관광객은 서울에 머물지 않고 지방으로 발길을 옮기고 있다. 이런 수요에 맞춰 교통 편의를 높이고 지역별 관광의 특색을 살려야 한다. 일본처럼 손님을 극진히 모시는 오모테나시(고객에 대한 극진한 맞이하기)정신도 필요하다. 싸구려 관광과 퇴폐관광을 추방하는 노력도 강화해야 한다.

 ◇ 정부조직 개편 때 관광청 꼭 신설해야
 관광으로 일자리 창출에 성공하는 나라들은 모두 관광을 전담으로 하는 정부기관을 두고 있다. 하와이관광청, 캐나다관광청, 뉴질랜드관광청, 태국관광청, 일본관광청이 대표적이다. 일본은 원래 관광청이 없었다. 그러나 2007년 한국에 관광객 유치 실적에서 역전당하자 와신상담을 결심하고 2008년 관광청을 설치했다. 그로부터 지난해 7년만에 한국을 완전히 따돌리는 성과를 거두었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관광정책다운 정책을 내놓은 적이 없다. 현재 관광정책은 문화체육관광부에서 1개 국이 담당하고 있다. 문체부 내에서 목소리를 내기 어려울 수밖에 없는 구조다. 관광상품 개발은 완전히 민간에 맡겨져 있는 상황인데 이래서는 한계를 극복할 수 없다. 일본처럼 커다란 인프라는 정부에서 깔아주고 지원해줘야 민간이 탄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정부 지원에 힘입어 지방자치단체가 해외판촉에 체계적으로 나서고 있어 전 세계적으로 일본 관광의 매력을 발산하고 있다. 한국은 지난 1월 중국에서 한국 방문의 해를 선포했지만 연예인 얼굴을 내세운 것 외에 새로운 관광상품을 소개하지 못했다.

 유커가 춘절(음력 설) 연휴 기간 중 선호 도시 1위로 서울을 꼽았지만 아전인수는 금물이다. 일본의 경우 도쿄ㆍ오사카ㆍ홋카이도ㆍ오키나와처럼 일본 각지를 찾아가기 때문에 전체로 보면 일본에서의 유커 방문 증가율이 훨씬 높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은 관광청을 즉각 신설해 신속한 대응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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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면세점 정책에서도 실패 후유증 나타나
  면세점 정책에서도 한국은 일본에 밀리고 있다. 한국은 대기업 중심으로 경제가 성장하면서 면세점도 신용이 높은 대기업 중심으로 운영돼 왔다. 롯데ㆍ신라면세점은 대표적인 대기업 사업이다. 이외에 신세계ㆍ한화 등 대형 면세점 사업자는 대부분 재벌 계열 사업자다. 한국의 면세점은 사전면세점 방식이어서 세금을 미리 면세받고 물건을 구입할 수 있어 편의성이 높다. 그러나 갈수록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관광객이 시내뿐 아니라 전국 각지로 가는 수요가 늘어나면서 더 많은 곳에서 면세품을 사려는 수요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일본의 사후면세점의 위력이 커지고 있다. 일본은 아베노믹스 이후 사후면세점을 대폭 허용해 1만9000곳에 이르는 개인사업자가 사후면세점을 운영하고 있다. 사후면세점은 출국할 때 공항이나 항만에서 세금을 환급받는 방식이어서 불편했다. 하지만 아베노믹스에 따라 과감하게 즉시환급을 허용함으로써 사실상 사전면세점과 다를 바 없게 됐다. 한국 정부도 올 1월 1일부터 부랴부랴 이 제도를 도입했으나 현재 60곳에 불과하다. 이 정도로 폭발적인 외국인 관광객의 면세품 구매 수요를 충족할 수는 없다.

 더구나 일본은 더 나아가 한국식 대형 시내면세점을 허용했다. 일본의 주요 백화점에서 도쿄의 번화가 긴자와 오사카 시내에 대형 시내면세점을 오픈하고 있다. 한국 관광의 강점으로 꼽혔던 대형 시내면세점이 일본에서 본격적으로 확산되면 한국의 특색은 하나도 남지 않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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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View & Another
 면세점 운영 형태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사업자 면허를 당초 10년에서 5년으로 단축하자 면허 갱신에 실패한 면세사업자 종사자들이 고용 불안에 직면하면서다. 수입 면세 물품을 공급해주는 글로벌 공급업자들도 상품관리의 어려움을 호소하면서 불만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런 논란은 대기업 중심 면세사업이 타당하느냐는 논란도 낳고 있다. 대기업에게만 특혜를 주는 것 아니냐는 문제 제기다. 하지만 대기업 중심 면세점은 지금까지 단점보다 강점이 많았다. 한국의 시내면세점에선 품질이 뛰어난 명품을 살 수 있다는 신뢰가 대표적인 강점이다. 주로 수입물품을 팔고 있어 소비세는 물론 관세까지 면세받는 것도 장점이다. 최근까지 대형 시내면세점이 없던 일본에서도 대기업이 한국형 시내면세점 사업에 잇따라 뛰어들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일본의 경우를 보면 즉시환급형 사후면세점의 확대 필요성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본에선 개인사업자와 중소형 법인 위주의 상점에서 물건을 팔면 공항이나 항만에서 세금을 면제받는 사후면세점이 주류였다. 이 방식은 사후에 따로 환급을 받아야 해 불편이 따른다. 이에 따라 일본은 관광객 편의를 위해 즉시환급제도를 확대해 이들 사후면세점을 사실상 사전면세점으로 바꿔놓고 있다. 즉시환급형 사후면세점은 1인당 5400엔 어치 이상의 물건을 구입하면 즉석에서 소비세(부가가치세)를 면제하고 물건을 판매한다. 이렇게 됨으로써 일본에선 전국 어디에서나 면세 물건을 구입할 수 있다. 관광객이 찾아오면 일본의 구석구석까지 돈이 도는 이유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지난해 외국인이 일본 여행에서 쓴 돈은 3조4771억 엔(약 36조원)에 달한다. 아베의 면세점 확대 정책으로 나타난 바쿠가이(爆買いㆍ중국인의 싹쓸이 쇼핑)의 결과다. 이는 현대ㆍ기아차가 지난해 235만대의 차를 수출해 벌어들인 돈과 맞먹는다. 올 1월에서야 이 제도를 도입한 한국은 체류기간 동안 건당 20만원에 전체 한도 100만원까지 즉시환급을 해주고 있다. 더 두고 볼일이지만 한ㆍ일 양국, 어느 쪽의 면세 정책이 더 위력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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