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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코리안 메이저리거 20년, 투수에서 타자시대로 파워시프트!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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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홈런 예상… 신인왕 진검승부

2015년 한국프로야구 타자 출신 1호 강정호에 이어 올해는 박병호·김현수 가세… WBC·올림픽 거치면서 기량 성장, 기술·파워·체격 등 메이저리거로서 손색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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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중앙포토]

1994년 박찬호가 한국인 최초로 길을 닦은 미국프로야구(MLB). 이후 박찬호를 롤모델 삼아 미국에 진출한 김병현·서재응·김선우 등 투수들이 2000년대 초반 MLB 마운드를 호령하며 투수 전성시대를 열었다. 한국인 메이저리거 ‘1호’인 박찬호 이후 20년이 지난 2015년, 강정호(29·피츠버그)가 한국프로야구 타자 출신 최초로 MLB 유니폼을 입더니 올해는 박병호(30·미네소타)와 김현수(28·볼티모어)가 잇달아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여기에 고교 졸업 후 미국으로 직행한 추신수까지, 2016년 MLB에서 한국인 ‘타자시대’가 활짝 열렸다.

서설(瑞雪)이다. 박병호가 꿈을 이룬 날, 아메리카 대륙의 중부 미니애폴리스에는 눈이 내렸다. 미네소타 트윈스의 홈구장인 타깃 필드는 흰 눈에 덮여 있었다. 외야의 대형 전광판엔 ‘WELCOME BYUNG HO PARK. 환영합니다 박병호’라는 영문과 한글을 함께 쓴 문구가 선명했다.
2015년 12월 3일. 박병호는 빅리거가 됐다. ‘꿈의 무대’ 타깃 필드에서 마이크 래드클리프 부사장, 테리 라이언 단장과 나란히 앉아 입단 기자회견을 가졌다. 박병호는 “야구는 똑같은 야구다. 메이저리그는 가장 뛰어난 선수들이 모이는 곳이다. 잘 준비하겠다”며 메이저리거가 된 소감을 밝혔다. 그리고 영어로 “I want to win a championship(나는 챔피언이 되고 싶다)”이라는 각오를 확실하게 다졌다. 한국프로 야구 타자 출신으로서 지난해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에 입단한 강정호에 이어 두 번째 메이저리거가 탄생했다.
20여일 후, 또 한 명의 빅리거가 야구팬들을 즐겁게 했다. 김현수의 볼티모어 오리올스 입단 소식이 전해졌다. 2015년 한국시리즈 챔피언으로 등극한 두산의 간판타자 김현수는 12월 23일 오리올 파크에서 댄 듀켓 단장과 입단 계약서에 사인하고 등번호 25번이 새겨진 유니폼을 입었다. 크리스마스 휴가가 겹친 까닭에 따로 기자회견을 갖지 않고 차분하게 겨울비가 내리는 그라운드와 클럽하우스를 둘러봤다. 김현수는 환한 표정으로 그라운드를 바라본 뒤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면서 빅리거로서의 성공을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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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중앙포토]

한국인 메이저리거는 주로 투수였다. 그러나 이제는 ‘타자 시대’다. 추신수와 강정호에 이어 박병호와 김현수까지 타자가 4명으로 늘었다. 한국 야구의 위상이 달라졌다. 스카우팅 리포트가 변했다. 10대 유망주를 헐값에 데려가 키우는 것이 아니라 스타들에게 관심을 쏟고 있다.

미국에선 통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평가했던 타자들을 주목하고 있다. 기량은 물론 체격, 인성까지 한국 타자들의 경쟁력을 인정하고 있다. ESPN은 최근 한국의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과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의 선전이 타자들의 빅리그 진출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또 1980년 이후 태어난 선수들의 평균신장과 체격·체력 등이 메이저리거로서 손색이 없기 때문이라고 소개했다.
한국 선수들의 메이저리그 도전은 박찬호 이전에도 시도됐다. 1968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했던 이원국, 1980년 밀워키 브루어스의 트리플 A를 경험한 박철순, 1981년 토론토 블루제이스와 접촉했지만 병역문제 등으로 입단이 무산됐던 최동원이 주인공이었다. 모두 빠른 공을 던질 수 있는 투수였다. 그리고 1994년 마침내 박찬호가 첫 한국인 메이저리거로서 꿈의 구장에 선 지 20년이 지났다.
올해는 LA 다저스의 왼손투수 류현진까지 모두 5명의 코리안 빅리거가 무한도전에 나선다. 특히 넥센과 두산의 간판선수로서, 한국 국가대표팀의 중심으로서 최고의 힘과 기술을 발휘하다 새로운 도전에 나서는 박병호와 김현수의 활약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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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호 관련 뉴스가 미네소타의 홈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 관심이 뜨겁다. 과연 얼마나 해낼지, 어떤 것이 필요한지, 어떻게 적응해야 할지 등 다양하게 분석과 기사와 인터뷰를 싣고 있다.
박병호는 입단 기자회견에서 자신감을 보였다. 야구 외적인 환경은 다르지만 야구는 똑같다는 말로 굳은 의지를 대신했다. 모든 구단 관계자들이 잘해주고 분위기가 좋아 적응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을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박병호는 구단의 승인이 필요한 조건부 자유계약선수(FA)이기 때문에 포스팅 시스템에 의해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다. 한국 야구위원회(KBO)와 메이저리그 사무국을 통해 미국 진출 의사를 공시한 뒤 최고 응찰액을 써낸 구단과 협상하는 방식을 취했다.
미네소타 트윈스는 총 3085만 달러를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소유권을 갖고 있는 넥센에 1285만 달러를 이적료로 지급하고, 박병호에겐 총 5년 동안 최대 1800만 달러를 주기로 합의했다. 박병호는 올해와 내년에는 연봉 275만 달러를 받고, 2018년과 2019년에는 300만 달러를 받는다. 2020년은 옵션에 따라 총 650만 달러까지 받을 수 있다.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다. 박병호에 대한 기대치를 고스란히 반영한 공격적인 투자였다.

미네소타 트윈스는 박병호의 파워에 높은 점수를 줬다. 2012년부터 2015년까지 4년 연속 홈런 1위를 기록했다. 2014년 52개와 2015년 53개 등 2년 연속 50홈런 이상을 터뜨리며 힘 자랑을 했다. 넥센의 4번 타자로서 한국프로야구를 대표하는 파워히터로 자리매김했다.
박병호는 준비된 빅리거라는 평가다. 연착륙을 낙관하고 있다. 방망이를 돌릴 때 엄청난 허리 회전과 강한 손목 힘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20∼80으로 매기는 메이저리그 스카우팅 평가에서 박병호의 파워는 최정상급인 60∼70을 얻었다. 미네소타 구단은 박병호에게 해마다 1∼2승 정도의 WAR(대체선수 대비 승리 기여도)을 기대하고 있다.
메이저리그의 예측 시스템 ‘ZiPS(SZymborski Projection System)’를 고안한 댄 짐보스키는 박병호가 올 시즌 홈런 27개 타율 0.266, 출루율 0.333, 장타율 0.463, 84타점을 기록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했다. WAR는 2.3을 예상했다. 27개의 홈런은 지난해 메이저리그 전체 25위, 아메리칸리그 15위에 해당되는 수치다.

박병호에게 메이저리그 20홈런은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아시아 출신 타자로서 새로운 역사를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아직 아시안 빅리거 중 데뷔 첫해에 20홈런 이상을 기록한 선수는 없다. 역대 최다 홈런은 2006년 시애틀 매리너스 유니폼을 입고 조지마 겐지가 기록한 18개다. 2위인 마쓰이 히데키는 2003년 뉴욕 양키스에서 16개의 홈런을 쳤다. 3위는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의 강정호다. 강정호는 지난해 15개의 홈런으로 2005년 시카고 화이트삭스에서 뛰던 이구치 다다 히토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박병호의 첫해 20홈런은 아시아 출신 최고의 홈런 타자로 평가받는 마쓰이를 넘어설 수 있는 발판이기도 하다. 마쓰이는 2004년 31개의 홈런을 기록해 아시아 출신 한 시즌 최다 홈런을 기록하는 등 2005년 23개, 2007년 25개, 2009년 28개, 2010년 21개 등 모두 5차례나 20홈런 이상을 터뜨렸다.
박병호는 한국 출신 메이저리그 한 시즌 최다 홈런에도 도전할 수 있다. 텍사스 레인저스의 추신수는 2010년과 지난해 22개의 홈런으로 최다를 기록했다. 박병호는 한국 최고를 넘어 아시아까지 뛰어넘기 위해 빅리그에 진출했다.

빅리그도 인정한 김현수의 테크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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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단식도 해보지 못한 선수였는데….”

김현수는 신고선수(연습생) 출신이다. 2006년 신일고를 졸업할 때 프로팀으로부터 정식 입단제의를 받지 못해 계약금도 없이 두산 유니폼을 입었다. 그러나 2008년 최우수선수(MVP) 후보에 오르는 두산의 간판선수로 성장했고, 10년 후 메이저리거가 됐다. FA로서 2년 동안 700만 달러를 받는 조건으로 볼티모어에 입단했다.
볼티모어 오리올스 댄 듀켓 단장은 계약을 마무리한 뒤 “김현수가 출루율과 파워에서 팀에 좋은 효과를 가져올 것이며, 경기장 모든 곳으로 안타를 때려낼 수 있는 선수”라고 말했다. 또 “김현수는 한국에서 전체 경기의 98%에 나서는 등 ‘철인(아이언 맨, Iron Man)’이란 별명을 갖고 있다”며 칼 립켄 주니어와 비교하면서 꾸준함을 칭찬했다.
볼티모어는 팀 공격력을 높이기 위해 김현수에게 관심을 보였다. 스카우팅 리포트에 ‘출루율이 높고 삼진보다 볼넷이 더 많다. 스윙 궤적이 짧고 파워도 괜찮다. 빠른 공에도 강하다.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한국 타자 중 타율이 가장 높다’도 썼다. 좌중간으로 안타를 쳐낼 수도 있을 뿐 아니라 오른쪽 거리가 짧은 홈구장의 특성에 맞춰 잡아당기는 능력도 보여줄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해 28개의 홈런을 보여준 파워 역시 통할 것으로 보고 있다.

볼티모어는 김현수를 영입한 뒤 홈페이지에다 2009년 제 2회 WBC에 국가대표로 출전했을 때의 동영상을 올려놓았다. 네덜란드전에서 좌익수로서 다이빙 캐치를 하는 모습과 정확한 홈 송구로 앤드류 존스를 아웃시키는 장면을 부각했다. 김현수가 공격력뿐 아니라 수비력까지 뛰어나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ESPN은 김현수가 “빅리그에서 먼저 한국인으로 이름을 날린 투수 봉중근의 신일고 후배”라고 소개하면서 “타석에서 잡아당겨 치는 타자들의 엉덩이와 발 모양을 하고도 구장의 전 방향으로 직선타구를 날릴 수 있다”며 ‘부챗살 타법’에 높은 점수를 줬다. 특히 스윙이 자연스럽고, 볼이 타격 존에 들어올 때까지 참았다가 스윙을 한다고 평가했다. 구종이나 코스에 따라 몸을 움직여 스윙하는 것과 달리 최대한 몸 가까이 볼이 올 때까지 자세를 유지하면서 최단 거리에서 방망이를 맞힌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스윙을 끝낸 뒤 1루로 빨리 뛰어 나가려고 하는 경향과 임팩트하는 과정에서 엉덩이가 일찍 열리는 탓에 바깥 쪽 공과 느린 변화구에 약할 수 있다고 냉정하게 꼬집었다.

짐 보르스키가 예상한 김현수의 2016시즌 기록은 타율 0.269와 20홈런, 64타점이다. 출루율은 0.336, 장타율은 0.428, 모두 수준급이다. 지난해 메이저리그 좌익수의 평균 장타율은 0.411였다. 한국에서 지난해 장타율 0.541을 기록했던 감각과 기량을 유지하면 충분히 기대치에 부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

‘중고신인’들의 무한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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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수는 좋은 선구안을 갖고 있다. 미국 언론과 볼티모어 구단은 통산 볼넷(597개)이 삼진(501개)보다 많은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2008년 주전으로 자리 잡은 뒤 2012, 2013년 2시즌을 제외하고 모두 삼진보다 볼넷이 많았다. 김현수는 “삼진을 당하지 않으려고 초구부터 공격적인 성향을 보인 결과”라고 말한다. 헛스윙을 많이 하지 않는다. 커트가 많다. 쉽게 물러서지 않고 끈질긴 승부를 한다는 의미다.
댄 듀켓 단장은 새해 들어 지역 언론인 <볼티모어 선>과의 인터뷰에서 “김현수는 국제무대에서 검증된 엘리트 선수”라며 다시 한 번 기대감을 나타냈다.
박병호와 김현수는 관심과 기대를 한몸에 받고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다. 함께 했던 동료들에겐 한없는 부러움을 남겨 두고 떠난다. 한국에서는 10년 가까이 활약한 중고참이지만 빅리그에선 이제 새내기다. 모든 것이 낯설고, 새롭다. 스프링 캠프부터 하루빨리 적응하는 것이 급선무다. 새내기에겐 새내기의 꿈이 있다. 신인왕 도전이 연착륙을 위한 좋은 동기 부여가 될 수 있다.

올 시즌 메이저리그에서 함께 뛰게 될 LA 다저스 류현진은 2013년 내셔널리그 신인왕 투표 4위, 피츠버그 파이어리츠 강정호는 지난해 내셔널리그 신인왕 투표 3위에 각각 올랐다. 류현진은 당시 14승과 평균자책점 3.00을 기록했다. 그 해 내셔널리그 신인왕은 마이애미 말린스 호세 페르난데스였다. 승수에선 류현진보다 뒤진 12승이었지만 평균자책점이 2.19로 비교우위에 있었다.
아직 한국 출신으로서 메이저리그에서 신인왕을 거머쥔 선수는 단 한 명도 없다. 미네소타 트윈스 박병호와 볼티모어 오리올스 김현수의 아메리칸리그 신인왕 도전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일본 선수로는 3명이 신인왕의 영광을 누렸다. 1994년 노모 히데오가 LA 다저스 유니폼을 입고, 2000년과 2001년에는 마무리 전문투수 사사키 가즈히로, ‘야구 천재’ 스즈키 이치로가 시애틀 매리너스 소속으로 2년 연속 신인왕을 차지했다. 특히 이치로는 메이저리그 데뷔 첫 시즌 무려 242 안타를 기록하며 아메리칸리그 최우수선수(MVP)까지 차지했다.

지난해 강정호와 함께 경쟁을 펼친 끝에 내셔널리그 신인 왕에 오른 시카고 컵스의 크리스 브라이언트는 151경기에 나가 타율 0.275와 홈런 26개, 99타점을 기록했다. 강정호가 부상으로 시즌을 모두 마무리하지 못했지만 126경기에서 타율 0.287와 홈런 15개, 58타점으로 선전했던 것과 비교하면 박병호나 김현수가 예상 기대치만 채워도 충분히 넘볼 수 있는 상황이다.
메이저리그 투수들의 정면승부가 두 선수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박병호와 김현수가 공격적인 타자이기 때문에 스트라이크 존에 적응한 뒤 제 스윙을 하면 뛰어난 경쟁력을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인왕 후보로는 박병호가 더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모든 관계자나 팬들에게 첫선을 보이는 입장에선 홈런이란 무기가 강한 인상을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아메리칸리그 신인왕은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유격수 카를로스 코레아가 차지했다. 99경기에 나가 타율 0.279와 홈런 22개, 68타점을 올리면서 팀의 포스트시즌 진출을 이끌어낸 점을 평가받았다.
그러나 박병호와 김현수가 ‘중고신인’인 까닭에 기록과 관계없이 현실적인 평가에서 밀릴 수 있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마쓰이처럼 후보에 오르더라도 막상 투표할 때는 기록이 월등하지 않다면 많은 표를 얻기 어렵다는 것이다.
메이저리그 관계자들은 최소 100경기 이상 출전하면서 타율 0.290대와 두 자릿수 홈런을 기록한다면 신인왕에 도전해볼 수 있다고 점치고 있다. 한국 무대에서 충분하게 경험을 쌓고, 기량을 연마한 박병호와 김현수에게 메이저리그는 여전히 극복해야 할 것이 많지만 도전을 멈출 이유도 없는 곳이다.

다른 듯 닮은 야구 인생, 활짝 꽃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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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호와 김현수는 다른 듯 닮은 야구 인생을 걸어왔다. 두 사람 모두 청소년 대표를 거쳐 프로에 입단했지만, 국가대표를 거치는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숱한 좌절과 고민의 시간을 보낸 끝에 알찬 결실을 맺었다.
박병호는 성남고 시절 4연타석 홈런을 기록하면서 초대형 타자로 주목받았다. LG에서 박병호의 파워와 장래성을 보고 2005년 계약금 3억3천만원에 영입했다. 그러나 LG에서는 늘 기대주에 머물렀다. 1군과 2군을 오가면서 제대로 힘을 쓰지 못했다. 결국 2011년 넥센으로 트레이드되고 나서야 뒤늦게 최고의 홈런 타자로서 자리매김했다.
LG 시절 박병호는 자신감이 없었다. 1군에 있어도 2군으로 쫓겨날 걱정을 해야 했다. 당시 LG 2군 감독으로 부임한 김기태 KIA 감독이 냉정하게 조련했다. 풀이 죽어 있는 모습을 보면 호되게 꾸짖었고, 힘겨워 하면 따뜻하게 감쌌다. 개인훈련도 빼놓지 않았다. 하체를 최대한 이용하는 타법을 지도하면서 타구의 방향이나 질이 좋아졌다. 자신감을 갖기 시작했다. 그런 와중에 전격적인 트레이드가 이뤄졌다. 박병호에겐 분위기를 바꿔 새롭게 태어날 수 있는 기회였다.

당시 넥센 사령탑이었던 김시진 감독은 “마음대로 해라”며 ‘무한신뢰’를 보냈다. 삼진을 두려워하지 말고 4번 타자답게 상대 투수를 주눅들게 할 수 있는 힘찬 스윙을 하도록 독려했다. 넥센에서의 적응기를 거친 박병호는 2012년부터 당당하게 4번으로 자리 잡았다. 타율 0.290와 홈런 31개, 105 타점, 장타율 0.561을 기록하면서 홈런타자 반열에 올라섰다. 대기만성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면서 넥센과 한국의 간판타자로서 우뚝 섰다.
2012년 넥센에서 개막전 4번 타자를 맡자 “지금은 가장 약한 4번이지만 3년 안에 맨 앞에서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싶다”고 말했고, 이를 노력과 기록으로 실천했다. 중도에 포기하지 않는 성실함과 늘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정신으로 메이저리그 진출을 준비했다.
김현수는 류현진·강정호·한기주(KIA)·이재원(SK)·차우찬(삼성)·민병헌(두산) 등과 함께 2006년 고교 졸업 예정자 중 유망주로 꼽혔다. 그러나 어느 팀에서도 지명하지 않았다. 발이 늦다는 둥, 딱히 공수에서 장점이 없다는 둥 평가가 제각각이었다. 결국 ‘이영민 타격상’까지 수상한 청소년대표 출신이지만 신고선수로 프로에 입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2007년부터 뛰어난 타격 재능을 보이면서 두각을 나타냈고, 2008년부터는 두산의 간판타자로 자리매김했다.

김현수는 ‘연습생 신화’을 만들었던 홈런왕 장종훈과 비교되곤 한다. 성실한 자세로 자신의 장점을 극대화함으로써 무명에서 스타로 성장한 노력파라는 공통점을 지녔다는 평가다. 김현수는 메이저리그 진출과 함께 가정을 꾸린다. 보다 안정적인 환경에서 적응력을 높이면서 연착륙하기 위해서다.
박병호와 김현수는 빅리그 진출은 강정호의 활약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강정호는 지난해 데뷔 첫 해였음에도 126경기에서 나가 타율 0.287와 홈런 15개, 58타점 OPS 0,816를 기록하며 한국 출신 타자들에 대한 편견을 불식시켰다. 메이저리그 관계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강정호가 한국 출신 타자들에게 빅리그의 문을 열어줬고, 이젠 박병호와 김현수가 간다. 박병호는 미네소타 트윈스의 입단을 확정한 뒤 “강정호의 활약을 보면서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며 “그만큼 좋은 모습을 보였기에 나도 이런 도전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좋은 친구이자, 한국 야구를 대표하는 선수로서 길을 만들어준 거 같다”고 말했다. 김현수 역시 똑같은 생각이었다. “처음에 계약할 때 (강)정호 생각이 나더라. 정호가 잘해줬기에 내가 계약할 수 있었다. 정호가 잘 다져놓은 기반을 망가뜨리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정호가 열고 병호와 현수는 달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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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일간스포츠]

과연 두 명의 새로운 메이저리거가 연착륙할 수 있을까. 메이저리그 투수들은 국내 투수들보다 빠른 공을 던진다. 스트라이크 존도 다르다. 문화적인 환경 역시 동서양의 차이가 분명하다. 그래도 충분히 통할 수 있다는 지배적인 의견이다.
박병호는 “강정호가 한국과는 다른 빠른 공이나 공의 움직임에 대해 얘기를 많이 해줬다”며 “초반에는 적응하기 어렵다고 했지만, 경기를 나가다 보니 적응할 수 있었다며 자신감을 줬다”고 말했다.
김현수는 뛰어난 선구안을 가졌다. 오히려 박병호보다 빠른 적응이 가능하다는 평가다. “낮은 공은 걱정하지 않는다. 바깥쪽이 후하다고 들었는데 그만큼 몸쪽이 후하지 않다는 의미로 받아들인다”며 “스트라이크존은 심판 고유의 권한인 만큼 적응하면 된다. 초반부터 말리기 시작하면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할 거라 생각한다. 콜하면 콜하는 대로 비슷한 공을 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메이저리그를 경험한 선수들은 예상 타율이나 홈런 등 기록보다 경기 외적인 부분에서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언어 장벽을 뛰어넘어 동료들과 자연스럽게 팀 분위기에 녹아 들여야 어려움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또 두 선수 모두 외국인 선수이고 첫 시즌인 만큼 스프링캠프 때부터 자신들의 강점을 감독과 관계자, 동료들에게 최대한 각인시키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박병호는 대표적인 스타 출신 사령탑인 폴 몰리터 감독과 함께한다. 밀워키, 토론토, 미네소타를 거치면서 21시즌 동안 통산 3319안타, 타율 0.306를 기록한 뒤 2004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몰리터 감독은 박병호에게 충분한 배려를 아끼지 않을 전망이다.
김현수는 김병현·박찬호를 경험했던 벅 쇼월터 감독과 호흡을 맞춰야 한다. 그는 뉴욕 양키스, 애리조나, 텍사스, 볼티모어를 거치는 동안 통산 1340승 1242패를 기록한 원칙주의자로 알려져 있다. 야구에만 전념하는 스타일인 김현수와 궁합이 잘 맞을 스타일이다. 류현진이나 강정호가 연착륙할 수 있었던 것은 친화력 덕이다. 언어 소통에 다소 문제가 있더라도 먼저 다가가는 자세로 동료애를 이끌어냈다.

박병호와 김현수는 처음부터 주전으로 뛸 가능성이 높다. 스프링캠프와 시범경기, 그리고 시즌 초반에 확실한 인상과 기록을 남겨야 한다. 박병호가 ‘야구는 똑같다’고 얘기한 것처럼 야구를 즐기면 된다.

이젠 ‘타자시대’다. 아시아 최고의 힘과 기량을 보여줄 때다.

- 이창호 스포츠평론가, 야구전문기자 river20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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