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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 바닥인데 원유 생산량은 왜 줄지 않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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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 수압파쇄기법 오른쪽 : 원유 재고분을 저장하기 위해 바다 위에 띄워놓은 이란의 원유 저장탱크 [사진출처=비즈니스인사이더,NH투자증권(왼), 이란데일리,NH투자증권(오른)]

가격이 바닥인데 왜 감산을 하지 않을까? 최근 원유 시장을 둘러싼 수수께끼다. 2008년에만 해도 배럴당 140달러선에 거래되던 원유는 최근 들어 20달러대로 추락했다.

중국의 경기 부진 등으로 수요는 줄어들고, 암반에서 원유를 뽑아내는 셰일 등 새로운 기술의 개발로 공급은 늘어났다. 2015년 전 세계에서 생산된 원유의 양은 하루 평균 9553만 배럴이었고, 소비된 양은 9382만 배럴이었다. 하루에 170만 배럴이 남아돌았다는 얘기다. 이란은 바다 위에 원유 저장탱크를 만들어 재고분을 저장해두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산유국들은 아직까지 감산에 나서지 않고 있다.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면 공급을 줄여 가격을 높이는 게 상식인데도 말이다. 구자원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네 가지 이유를 제시했다. 먼저 셰일오일 생산업체들의 기술혁신이다. 셰일 오일은 말 그대로 땅 속 셰일층(유기물암석층)에 존재하고 있는 원유를 말한다. 미국이 이 셰일 오일을 사업성 있는 가격으로 뽑아올릴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해 세계 원유 시장에 일대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다만 아무래도 기존 원유 생산비용보다는 비용이 더 많이 들어간다는 단점이 있었다.

산유국의 맹주 사우디아라비아는 지난해 원유 감산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생산량을 그대로 유지했다. 원유 가격을 낮춰 셰일오일 생산업체들을 고사시키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그런데 이 셰일 오일 업체들은 건재하다. 수압파쇄기법(화합물을 섞은 고압의 물로 지층에 균열을 일으키는 방법) 등 혁신적인 기술 개발을 통해 셰일 오일 생산단가를 낮췄기 때문이다.

구 연구원은 “셰일오일 생산업체들은 마치 페이스북이나 구글처럼 원유산업에 혁신과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빠르고 정교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가격 등락에 유연하게 대처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두번째 이유는 산유국의 화폐가치 하락이다. 러시아, 브라질, 베네주엘라 등 주요 산유국은 달러 대비 화폐 가치가 크게 하락한 상태다. 이는 원유 수출 대금으로 받은 달러를 자국 내에서 환전하면 과거보다 더 많은 자국 화폐로 교환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 때문에 달러 환산 유가의 하락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근근히 버틸만 하다는 얘기다.

세번째 이유는 녹색에너지의 대두다. 지난해 12월 프랑스 파리에서 195개 국가들이 모여 기후변화 협정을 체결했다. 이에 따라 1997년 교토의정서와는 달리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모두 온실가스 감축의 의무를 지게 됐다. 2023년부터 5년마다 참여국들이 탄소 감축의무를 지키는지 검토할 계획이다. 원유가 신재생에너지로 대체될 수 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이 때문에 원유생산업체들은 생산할 수 있을 때 최대한 빨리, 최대한 많이 생산해야 할 상황이 됐고 이것이 원유 감산을 저해하고 있는 상황이다.

네번째 이유는 생산설비 유지비용이다. 원유생산업체들은 투자비용이 한 번 잡힌 생산현장에서 생산설비의 가동을 멈추고 유지하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 가격이 생산단가에 가까워지는 손익분기점까지는 가능한 한 생산을 유지하는 게 더 낫다는 말이다.

구 연구원은 “원유시장에서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존재는 여전히 절대적이지만 원유의 생산과 수요, 가격 결정의 메커니즘에서 다른 변수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며 “가격 하락이 생산량의 감소를 가져올 것이라는 단순한 이치가 항상 참일 수 없는 상황을 맞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박진석기자 kaila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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