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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학기 ‘사교육학기’ 될라, 학원 권력에 호소한 교육 수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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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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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식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오른쪽 둘째)이 지난달 28일 학원총연합회 관계자들을 만나 자유학기제 안착을 위해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사진 교육부]

이준식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지난달 2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박경실 학원총연합회 회장을 만났다. 이 부총리가 “자유학기제의 취지가 현장에서 살아나려면 학원의 협조가 필요하다”며 학원 관계자들과 만남을 요청했다.

전국 중1 ‘시험 줄여 꿈·끼 찾기’
국정과제 불구 학원 마케팅 기승
학부모들 자유학기 불안감 커져
이 부총리 “자유학기 안착 협조를”
학원총연합회 “자율 규제 힘쓸 것”

학원총연합회 관계자 8명과 만난 자리에서 이 부총리는 “학원이 지난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 때도 감염 확산을 막는 데 도움을 줘 고맙게 생각한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자유학기제가 성공적으로 안착하려면 학원이 학부모 불안감을 조장해서는 안 된다. 협조를 부탁한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자유학기제에 공감하고 적극 협력하겠다”고 화답했다. 대화는 20여 분간 진행됐다. 현장에 동석한 교육부 관계자는 “교육의 동반자로서 자유학기제 안착을 도와달라는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교육부 장관이 취임 보름 만에 학원 관계자들을 만난 건 이례적이다. 역대 정권에서 학원은 줄곧 교육 당국의 단속 대상이었지 도움을 요청하는 곳은 아니었다. 교육부의 한 관계자는 “일부 학원의 자유학기제 마케팅 때문”이라고 털어놨다.

자유학기제는 학교가 한 학기 동안 지필고사를 치르지 않고 진로체험과 토론교육을 하면서 학생의 꿈과 끼를 찾아주는 제도다. 박근혜 정부의 주요 국정과제다. 올해부터 모든 중학교에서 전면 시행된다.

그런데 일부 학원이 자유학기제 시행을 앞두고 “자유학기제, 정말 자유로워도 될까” “명문대 진학의 첫 단추 기간”이란 문구를 내세워 홍보하고 있다.

이런 학원은 ‘선행학습’이란 홍보 문구를 쓰지 않고 있어 선행교육규제특별법에 의해 처벌받거나 단속 대상이 되지 않는다.

교육부의 다른 관계자도 “자유학기제 마케팅을 법으로 제재할 수 있는 마땅한 방법이 없어 학원에 협조를 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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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계동 한 학원의 자유학기제 마케팅 광고.

실제로 지난달 29일 서울 대치동의 학원가에선 자유학기제 마케팅이 한창이었다. 학원 외벽에는 ‘2015 개정 교육과정 자유학기제 활용 방안 학부모 설명회’란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붙어 있다.

이미 한 대형학원은 서울의 한 고교 대강당에서 학부모와 예비 중학생 1200여 명을 상대로 자유학기제 설명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강사는 “다음 학기 진도와 학습 실력을 위해 챙겨야 하는 시점이 바로 자유학기”라고 강조했다.

정부의 자유학기제가 일부 학원의 학원 마케팅으로 ‘진도 나가는 학기제’로 변색되면서 학부모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중학교 1학년 아들을 둔 김모(41·여·서울 양천구)씨는 “학원에 상담을 하러 갔더니 ‘자유학기 때 선행학습 없이 2학년에 올라가면 혼자 뒤처진다. 학교에서 공부를 안 시키는 만큼 학원에서 공부하고 주말반을 등록하라’고 권유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중학교 1학년 학부모(송파구)는 “자유학기제가 우민화 정책이라는 말까지 돌고 있다. 학원에 보내 선행학습에 전념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안상진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부소장은 “자유학기제는 반대 없이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는 정책”이라며 “교육부가 자유학기 정책이 사교육으로 왜곡돼 흔들리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표진 학원총연합회 사무총장은 “공교육과 사교육이 함께 맞물려 돌아간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정부 협조 요청에 따라 자율 규제하는 데 힘쓸 것”이라고 말했다.

노진호·백민경 기자 yesn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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