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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B·YB팀 ‘같은 대본 다른 무대’ “초연 배우들도 함께해 행복”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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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4호 6 면

지금 연극판에선 ‘특별한 사건’이 진행 중이다. 영구 미제사건으로 남은 화성 연쇄살인사건을 다룬 연극 ‘날 보러와요’(1월 22일~2월 21일 명동예술극장)가 초연 20주년을 맞아 한 무대에서 두 가지 버전을 선보이고 있다.


영화 ‘살인의 추억(2003)’의 원작으로 유명한 이 연극은 1996년 극단 연우무대에서 초연한 이래 20년간 총 15차례 공연된 스테디셀러다. 초연부터 10년간 연출을 맡았던 원작자 김광림(64)과 권해효·김뢰하·유연수·류태호·이대연 등 20년 전 초연 배우들이 OB팀을, 2006년부터 연출을 맡은 변정주 연출가와 손종학·김준원·이현철·김대종·우미화 등 최근 10년간 무대에 섰던 배우들이 YB팀을 꾸려 ‘같은 대본 다른 무대’를 만들고 있다.


10년 만에 다시 연출로 돌아온 김광림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27일 기자 간담회에서 “20년 전 참여했던 배우들까지 한마음으로 참여해줘서 참 행복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초연 배우들 참여가 의미가 큰 것은 공동창작을 기반으로 한 연우무대 특유의 극작술 때문이다. 95년 어느 날 우연히 작품 아이디어를 얻은 김 연출은 ‘억울하게 생긴’ 이대연 배우에게서 용의자 캐릭터를 떠올렸고, 1년간의 현장답사와 사전조사에 그를 동행시켜 작품에 생생한 리얼리티를 더했다. 김뢰하, 유연수 등 다른 배우들도 창작 과정에 의견을 보태며 함께 작품을 완성했다. 96년 문예회관 소극장에서 첫 선을 보인 무대는 그해 백상예술대상, 서울연극제, 동아연극제를 휩쓸며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초연 첫 공연을 아직 기억해요. 공연 후 극장에 감돌던 뜨거운 열기를 잊을 수 없죠. 그 후 버전이 10개 정도 되는데, 공연하면서 배우들이 대본의 허점을 계속 찾아내면서 업그레이드해 나갔죠. 그간 배우들 연기력도 훨씬 향상되고 대본의 빈 구석도 채워져서 초연보다 훨씬 원숙해졌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공연이 더 이상 허점 없는 최종본이 됐으면 해요.”


그는 그리스 철학자 고르기아스의 말대로 ‘진실은 찾기 어렵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면서도 진실을 찾기 어렵게 만드는 무능한 국가 시스템의 문제를 지적했다. “취재하고 현장 조사할 때 늘 억울한 희생자들과 주변 피해자들이 안타까웠죠. 결국 형사도 피해자인 셈인데, 억울한 죽음과 희생이 어떻게 하면 개선될까 늘 생각해 왔지만 20년이 지난 지금도 답을 내릴 수 없어요. 이런 희생에 과연 누가 책임을 져야 하나요. 기본적인 책임을 져야 할 국가 시스템이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아 가슴이 아픕니다.”


20주년 기념 무대는 최고의 무대미술가 박동우와 함께 꾸몄다. 극중 살인사건이 일어나는 비 내리는 밤을 실감나게 구현하고, 수사본부 전체를 갈대밭으로 둘러싼 초현실적인 이미지로 미궁에 빠진 사건과 미로를 헤매는 수사팀의 상황을 은유적으로 표현했다.


OB팀과 YB팀은 무대 디자인을 제외한 조명·선곡·음향 등을 서로 논의하지 않았다. 배우만 다른 것이 아니라 두 명의 연출가가 완전히 별개의 프로그램을 가동하는 것이다. 여기에 평균연령 52세의 OB팀 배우들의 개성 넘치는 관록의 연기와 상대적으로 젊은 YB팀 배우들의 혈기왕성한 에너지의 차이까지 더해져 두 버전은 같은 작품이라고 인식하기 힘들 정도로 다른 아우라를 뿜어낸다.


“처음 김광림 선생의 전화를 받고 당황했다”는 권해효는 “외국 공연계를 보면서 작품과 같이 늙어가는 배우들이 늘 부러웠는데 내가 그렇게 됐다. 서른셋에 했던 역을 쉰둘에 하게 됐는데, 대학로에서 오랫동안 같이 지내온 동료들이라 용기 낼 수 있었다”고 했다. 작품의 모티브가 된 이대연은 “초연 때 용의자 친구 역으로 출연했는데 20년 만에 형사반장이 됐다. 20년 만에 하는 동창회 느낌인데 동지들이 같이 잘 나이 먹어가는 것 같아 기쁘다”고 했다. YB팀의 김준원은 “연극을 모를 때 접하고 크게 충격받았던 작품”이라며 “동경의 대상이었던 선배들과 함께 공연하게 되니 그라운드에서 메시나 호날두를 직접 보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한 무대 두 버전’ 아이디어를 처음 낸 변정주 연출은 두 버전의 차별점을 묻는 질문에 “억지로 다르게 만들려고 하지 않았다. 선배들 컨닝도 해 가면서 본질에 가까운 공연으로 만들었다”면서도 “하나의 공연을 한 무대에서 두 버전으로 보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다. 두 공연을 다 보러 와 달라”고 당부했다. ●


글 유주현 객원기자 yjjoo@joongang.co.kr, 사진 프로스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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