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가쟁명:유주열]시(習)주석의 중동순방과 실크로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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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연초부터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및 이란 등 중동 3국을 순방하였다. 보통 3월 초 양회(兩會 전국인민대표대회 및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가 끝난 뒤 외국을 순방하는 관례를 깬 것은 중동을 경유하는 21세기 실크로드 일대일로(一帶一路)가 그 만큼 중요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실크의 어원은 ‘스(si 絲)’에서 유래된다. ‘스’는 생사를 묶어 놓은 모습이다. 중국의 갑골문에서 ‘스’와 함께 누에(蠶) 뽕나무(桑) 등의 글자가 보여 양잠의 역사가 갑골문이 만들어진 은(殷)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원전 3천 년 전 쯤 된다고 한다. 중국의 전설적 요순시대에도 지금의 산서성 황토고원이 뽕나무가 잘 자라는 토양으로 양잠이 성했다. 뽕나무는 중국 북부지방이 원산지이다.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말처럼 뽕나무 밭이 흔했던 것 같다.

실크 즉 ‘스’를 통해서 중국이라는 나라가 서양에 알려졌다고 한다. 기원전 5세기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가 ‘역사’라는 책에서 처음으로 중국을 소개했다. 그는 중국을 실크로 이해하여 ‘세레스(seres 실크를 만드는 나라)’라고 불렀다. 세레스가 라틴어에서 세리카(serica)로 바뀌고 영어의 실크(silk)는 세리카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일부에서는 그리스에서 실크가 세레스와 함께 ‘시나(cina 또는 sina)‘로도 불리어서 지금의 차이나(China)가 ‘시나’에서 유래되었다는 설도 있다. 차이나가 중국을 처음으로 통일한 진(秦)에서 유래되었다고 하지만 서양에서는 이 보다 훨씬 이전에 ‘시나’라는 말이 통용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고대 중국의 최대 발명품이자 기반산업인 실크가 유럽으로 건너가 로마의 귀족들이 즐겨 입는 최고급 옷감이 되었다. 실크는 프로테인(蛋白質)이 주성분인 생사로 만들어져 윤기가 흐르고 따뜻하다. 몸에 걸쳤을 때 가벼우면서 그 흐름이 몸의 곡선을 감추지 않아서 사치에 빠진 로마 귀족이 앞 다투어 수입하여 국고가 바닥이 날 지경이었다. 아우구스티누스 황제는 황금의 가치와 막 먹는 중국의 실크 착용을 금하는 칙령을 발표하였다.

유럽에서 인기가 높은 실크는 밀무역으로 조달되어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르자 자국 생산 노력이 시작되었다. 7세기 동로마시대 중국에 진출해 있던 기독교 일파인 네스토리우스파(景敎)의 선교사가 중국 관헌의 눈을 피해 대나무관 속에 누에알을 숨겨 반출하였다. 비교적 따뜻한 시칠리아 왕국에서 누에알을 부화시켜 양잠에 성공하자 양잠은 베니스 등을 통해 이태리 전역에 보급되었다.

이탈리아와 가까운 프랑스 리용에서는 이탈리아 기술자를 불러 실크를 만들기 시작하였다. 영국에서는 실크의 국산화가 기후 문제로 잘 되지 않자 중국으로부터 직수입 하였다. 영국의 실크 수입은 국부(銀)의 유출을 가져 왔고 국부 회수를 위해 인도 산 아편을 중국에 팔게 됨에 따라 아편 전쟁이 일어났다. 아편전쟁은 사실 실크가 원인을 제공한 실크전쟁이기도 하다.

중국과 가까우며 기후가 유사한 우리나라에서는 일찍이 양잠의 기술이 도입되어 귀족들 중심으로 비단(緋緞) 또는 명주(明綢 명나라 견직물)라는 실크 옷을 해 입었다. 조선조에서는 한강이남 모래밭에 대대적으로 뽕밭을 만들어 국가가 직접 양잠을 운영한 것 같다. 서울 강남에 잠실 잠원 등 지명이 그대로 남아 있다. 그러나 양질의 실크는 역시 중국에서 직수입해야 하였다. 조선의 조공 사신단을 통해 중국인이 좋아하는 인삼과 실크가 물물교환 되고 중강 개시, 책문 후시 등 공식 비공식 국경 무역을 통해 중국산 비단이 수입되었다. 조선 후기 비단이 일반화 되면서 인천을 통해 산동성 비단이 들어오고 항저우(杭州)를 중심으로 하는 절강성 비단은 부산을 통해서 팔렸다. 중국의 비단 장사가 직접 비단을 가지고 와서 팔기도 했던 것 같다. 우리가 어릴 때 자주 들었던 ‘비단이 장사 왕 서방’이라는 노래가 말해 준다.

‘비단이 장사 왕 서방, 명월이 한테 반해서
비단이 팔아 모은 돈 통통 털어 다 주었소
띵호와 띵호와 돈이 없어서도 팅호와‘

실크가 거래된 옛 무역로(貿易路)를 ‘실크로드’라고 하지만 실크로드라는 말이 나온 지는 그리 오래지 않다. 독일의 지리학자 탐험가 리히트 호펜(1833-1905)이 중국을 여행하고 돌아와서 저술한 ‘중국’이라는 책에서 처음으로 실크로드를 언급하였다. 그 후 독일 베를린 대학에서 리히트 호펜의 제자였던 스웨덴 탐험가 스벤 헤딘(1865-1952)이 중앙아시아를 여행한 후 ‘실크로드’라는 책을 저술하여 비록 실크로드가 정착되었다.
중국 경제가 아주 어렵다고 한다. 21세기 실크로드(一帶一路)를 통해 중국이 내다 팔 새로운 실크는 무엇일까. 시진핑 주석의 연초부터 중동국가 순방의 의미를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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