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 손목 빨간밴드 낙인, 석달 만에 철회한 영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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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카디프에서 난민들이 식량 배급을 받기 위해 빨간 손목밴드를 차고 있다. [웨일스온라인 캡처]

영국에서 난민 차별 논란이 잇따르고 있다. 난민 신청자들을 빨간 대문 건물에 거주하도록 한 데 이어 빨간 손목밴드 착용을 강제한 일이 발생하면서다.

안 차면 식량배급 못 받아 굴욕감
빨간 대문에 이어 인종 차별 논란

 24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영국 웨일스의 주도(主都) 카디프에서 난민 신청자들은 지난 3개월 간 빨간 손목밴드를 차야 음식을 제공받을 수 있었다.

영국 내무부가 위탁 계약한 민간업체 ‘클리어스프링스 레디 홈스’가 지난해 난민 급증에 따른 식량 배급 관리를 위해 시행한 조치였다.

난민 신청자들이 굴욕감을 호소했지만 업체는 외면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놀이공원 입장 밴드와 비슷한 이 손목밴드를 풀려면 가위 등으로 잘라야 하는데 그러면 재사용할 수 없다.

 지난해 11월 난민 지위를 얻기 위해 한 달간 카디프에 살았던 에릭 응갈레(36)는 “손목밴드를 차지 않으면 끼니를 주지 않았다. 업체에 항의했더니 오히려 내무부에 신고하겠다고 윽박질렀다”고 했다.

눈에 잘 띄는 손목밴드는 주변에 자신이 난민임을 알리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는 “손목밴드를 찬 나를 보며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거나 끔찍한 말을 퍼붓는 영국인들도 있었다”고 회상했다.

 수단 출신의 인권 운동가로 역시 세 달간 카디프에서 지냈던 모그다드 아브딘(24)은 “손목밴드는 명백한 인종차별”이라며 “늘 2등 시민 취급을 당하는 기분이었다”고 했다.

난민 차별 논란이 일며 비판 여론이 커지자 해당 업체가 손목밴드 착용 조치 철회 방침을 발표했다고 영국 BBC방송이 25일 보도했다.

 앞서 이달 영국 중동부 미들즈브러에선 난민 신청자들을 살게 한 거주지의 대문이 모두 빨간색이어서 차별 논란이 일었다.

내부무가 난민 임시 거처 제공을 위해 부동산업체와 계약을 맺었는데 이 업체가 소유한 건물 대문이 빨간 색이어서 벌어진 일이었다. 하지만 ‘난민 거주지’로 낙인 찍히며 비판 여론이 일었다. 이에 해당 업체는 최근 대문 색깔을 주변 건물에 맞춰 바꾸기로 결정했다.

백민정 기자 baek.mi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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