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시평] 100년후 한반도를 생각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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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날이 확산하고 있는 각종 파업, 북핵 위기로 냉각되어 있는 남북관계, 그리고 희망을 잃어버린 정당정치 등의 상황들을 지켜보면서 미래를 위한 준비를 한다는 것 자체가 여간 난감한 일이 아니다.

1백년 전의 조선왕조 역시 혼란스러운 국내외 정세 속에서 미래설계를 한다는 것이 많은 측면에서 무리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내려진 결정들로 인하여 한민족의 운명이 바뀐 바 있고 21세기 초에 진입하면서 또 한번 한민족의 운명이 바뀔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점이 역사적 사실이다.

*** 한민족 운명이 바뀔 가능성은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는 산업화.민주화. 자주국방화.정보화, 그리고 세계화라는 큰 물줄기 속에서 발전을 거듭해 왔으며 남은 과제는 한민족 모두가 자유를 누릴 수 있는 토양과 개방적 민족주의를 구축하는 것이다. 그렇다. 핵심적인 코드는 바로 자유정책이며 특히 5천년 역사상 최초로 한민족 모두가 자유.민주주의를 근간으로 한 새로운 '한국의 집'을 설계하는 과업이 남아 있다.

돌이켜보면 조선왕조는 부국강병(富國强兵)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달성하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다시 말해 조선왕조는 산업발전, 현대화된 군사력, 냉정한 외교력을 바탕으로 한 하드 파워(hard power)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했다.

1백년 후 현재 우리는 21세기 국제질서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 인류 보편적인 가치의 확산, 유전자 및 정보혁명을 통한 삶의 질 향상, 그리고 고도의 상상력을 촉진시키는 교육제도 등을 골자로 한 소프트 파워(soft power) 향상을 위한 필사적인 경쟁에 이미 돌입해 있다.

따라서 21세기에 필요한 힘은 기존의 하드 파워와 소프트 파워를 겸비한 복합적인 파워 (hybrid power)라고 볼 때 21세기 한반도의 위상은 이러한 새로운 유형의 힘을 얼마만큼 성공적으로 축적하고 활용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본다.

이러한 점에서 보았을 때 1백년 후의 한반도, 더 나아가서 2백~3백년 후의 한반도의 위상 정립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결정적인 변수는 뿌리 깊은 자유주의와 열린 민족주의의 조화라고 본다.

그러나 평화통일과 민족통일이라는 절대명제의 구조 속에서 진행되어온 통일논의에서 자유라는 개념이 등한시되어 왔던 것이 사실이다. 한 예로 북한의 전체주의적 체제 자체를 객관적으로 비판한다는 것이 민족정서 혹은 남북화해에 어긋난다는 견해가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물론 지식인 사이에서도 북한의 유례없는 일인지배 체제, 인권유린, 그리고 북한 주민들의 끊임없는 고통 등의 문제들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다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 따라서 인류 보편적인 가치 위에서 통일문제를 다루어야 할 역사적 의무가 우리에게 던져진 것이다.

2200~2300년대에는 남과 북을 상징하는 이른바 '이국시대(二國時代)'드라마들이 사극의 단골 메뉴로 자리잡지 않을까 생각된다. 21세기 PD들이 조선왕조와 고려시대를 다양한 각도에서 관찰하고 있듯이 23~24세기 PD들도 '二國時代'를 재조명할 것이며 학계에서도 새로운 논쟁이 일어날 것이다.

*** '二國時代'재조명 미래의 PD들

그러나 '二國時代'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남한이 궁극적으로 승리할 수 있었던 원천적인 힘으로서 총부리와 독재권력보다 자유.민주주의와 인류 보편적인 가치를 수호하고 이러한 가치들을 한반도 전역으로 확산했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있을 것으로 상상하고 기대해 본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1백년 이후의 한반도를 생각하고 설계하는 첫 수순은 한반도 전역에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극히 평범하면서도 소중한 희망을 구체화하는 것이라고 본다.

◇약력=1960년 2월 28일 출생. 연세대학교 국제학대학원 교수. 미국 랜드연구소 정책 분석관, 일본 방위연구소 객원 연구위원,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역임

◇주요 저서:'한반도 통일 시나리오''동북아의 전략적 환경' 외 다수 논문
李正民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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