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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월의 폭탄’ 피하려면 간소화서비스만 의지해선 안 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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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3호 8 면

맞벌이 아내와 초등·중학교에 다니는 아이가 둘인 평범한 중산층 직장인 서모(46)씨는 지난해부터 1월이 우울하다. 2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맘때면 ‘13월의 월급’을 챙기느라 행복했지만 이제는 거꾸로 ‘13월의 폭탄’이 얼마나 떨어질까 가슴 졸여야 할 신세로 전락했다. 연말 모의정산 결과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100만원이 넘는 돈을 토해내야 하는 것으로 나왔기 때문이다. 남들 다 다닌다는 아이들 영어·수학 등 사교육비에 허리가 끊어질 지경인데도 학원비는 공제 대상도 아니다.


매년 1월이면 서씨처럼 고민에 빠진 사람들을 위해 눈썹이 휘날리도록 바쁜 사람이 있다. 한국납세자연맹의 김선택(56·사진) 회장이다. 지난 21일 오후 서울 세종문화회관 뒤편 당주동 연맹 사무실을 찾았다. 전국 각지에서 걸려온 문의전화에 일일이 응대하느라 바쁠 것이라고 지레 짐작하고 들어선 사무실은 독서실처럼 조용했다. 김 회장은 “상담 요구가 너무 많아 직원 10명이 전화 문의에 답하기는 불가능하다”며 “모든 문의는 홈페이지나 e메일을 통해 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연맹 홈페이지(www.koreatax.org) 어디에도 전화번호를 찾을 수 없었다.


김 회장은 “지난해부터 연말정산 방식이 소득공제에서 세액공제로 바뀌었기 때문에 예전보다 환급액이 줄어든 직장인이 많을 것”이라며 “연말정산 관련 정보를 뒤져보고 꼼꼼히 따져 챙기는 만큼 환급액도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직장인이 연말정산을 잘못하는 대표적인 사례가 국세청 연말정산 간소화서비스에 전적으로 의지하는 경우다. 간소화서비스가 여러모로 편리하긴 하지만 여기에 명시된 금액 외에도 공제될 수 있는 대상이 적지 않다는 게 김 회장의 조언이다.

암 등 중증환자도 소득공제 대상연말정산 간소화서비스에서 부모가 지출한 공제내역을 확인해 연말정산 때 반영하려면 먼저 부모의 정보 동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문제는 부모와 따로 살 경우 팩스나 세무서 방문 신청만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정보제공 동의 절차를 아예 모르거나, 바빠서 또는 신청절차가 번거로워 간소화서비스를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는 직장인이 많다. 또 부모가 부양가족 공제를 받을 수 없는 60세 미만이라서 정보제공 동의를 신청하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부양가족 공제는 안 되더라도 신용카드나 의료비는 공제받을 수 있다는 점을 놓치는 경우도 꽤 많다. 자녀의 경우도 만 18세까지는 자녀 동의 없이 연말정산 간소화서비스에서 조회되지만 만 19세 이상은 자료제공 동의신청을 해야 조회된다. 올해 만 19세가 되는 자녀의 자료는 지난해 조회가 됐더라도 올해 다시 동의신청을 해야 조회가 된다.

김 회장은 “2011~2014년 연말정산 때 놓친 공제를 지금이라도 신청하면 환급이 가능하다”며 “정보제공 동의신청 때 2011년 이후 연도의 모든 자료에 대해 동의신청을 하면 그 이후 의료비 등 모든 명세가 조회돼 당시에 놓친 공제를 받아 세금을 환급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표 참조>


장애인 소득공제도 흔히 놓칠 수 있는 부분이다. 흔히 장애인이라고 하면 장애인등록을 하고 카드가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세법상 장애인의 폭은 더 넓다. 부양가족 중 암환자 등 중증질환자가 있을 경우 평소 다니던 병원에 가면 연말정산용 장애인증명서를 받을 수 있다.


맞벌이 부부는 연말정산 작전을 좀 더 치밀하게 짜야 한다. 김 회장은 “맞벌이 부부가 각자 쓴 내용을 각자가 공제받는 식으로 연말정산을 한다면 둘 다 손해 보는 ‘하수(下手)의 연말정산’, 부부 중 연봉 높은 한 사람에게 무조건 공제를 몰아주는 연말정산은 둘이 낼 세금을 한 명이 몰아서 내는 중수(中手)의 연말정산”이라고 꼬집었다. 자녀와 부모의 신용카드·의료비 등 수많은 공제를 누가 받는 것이 유리한지 시뮬레이션해 보고 최적의 결과를 얻어야 한다. 납세자연맹 홈페이지의 맞벌이 부부용 절세계산기 코너를 이용하면 어렵지 않게 모의정산을 해볼 수 있다. 실제로 각각 연봉 5000만원가량을 받는 맞벌이 부부의 경우 절세계산기를 통해 세금을 절반으로 줄일 수 있었다.


김 회장은 “연맹 창립 이후 지금까지 세무 상담을 처리한 누적 건수가 9만 건을 넘었다”며 “연맹의 연말정산 정보에는 지난 16년간 연말정산 환급운동을 펼쳐온 수많은 노하우가 담겨 있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납세자연맹을 대표하는 세법 전문가지만 세무사도 회계사도 아니다. 세무와 관련한 어떤 자격증도 없다. 학부 시절 경영학을 전공하고 결국은 합격하지도 못한 세무사 공부를 4년 동안 한 것이 전부다. 하지만 첫 직장으로 들어간 ㈜한양의 경리부에 배치되면서 실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94년 회사가 국세청으로부터 세무조사를 받고 추징금 480억원을 부과당했다. 당시 대리에 불과했던 그는 6개월 동안 뛰어다니며 추징세액 480억원 전부를 취소시켰다. 국세청의 무리한 세정 때문이기도 하지만 허점을 파고든 집요함과 실력을 갖춘 덕분이기도 했다. 그는 당시 경험을 바탕으로 세법 전문서 『지방세법상 비업무용토지와 조세법 실무』(1998), 『판례법인 세법』(1999)을 연이어 펴냈다. 국내 최대 회계법인인 삼일회계법인은 2000년 실무경력은 물론 전문지식도 뛰어난 그를 스카우트해 ‘삼일총서’ 집필위원으로 활동하게 했다.


세무를 정치에 비유하자면 그는 운명적 ‘재야인사’다. ‘가방끈’이 길지 못한 것도, 세무사가 되지 못한 것도, 첫 직장에서 국세청에 ‘저항’한 것도 그런 면에서 일맥상통(一脈相通)한다. 2001년 2월에는 아예 한국납세자연맹을 만들어 세무 관련 시민운동가로 나섰다. 99년 말 KBS에서 방영해 화제가 됐던 ‘독일납세자연맹 탐방’ 기획 프로그램이 계기가 됐다. 그는 “방송을 본 주위 지인들이 독일납세자연맹과 같은 단체가 한국에도 있으면 좋겠다고 해서 힘을 모아 99년 발기인대회를 열고 준비과정을 거쳐 1년여 뒤 연맹을 창립하게 됐다”고 말했다. 회사를 지키기 위해 국세청에 저항했던 그가, 이제는 납세자를 위해 세무 당국에 눈을 부릅뜨고 견제하는 역할을 하게 된 셈이다. 연맹은 ‘과도한 세금과 세금의 비효율적 사용에 대한 감시’를 설립 이유로 천명하고, 세금 관련 지식이 부족한 일반 납세자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세제 개선을 위한 운동 등 다양한 활동을 해오고 있다. 일반인이 흔히 아는 활동이 ‘연말정산 환급운동’이지만 이 외에도 ‘부당한 자동차세 불복운동’(2001), ‘근로소득세 환급운동’(2001~), ‘중증환자 소득세 환급운동’(2002~), ‘자영업자 소득세 환급운동’(2003), ‘국세청 개혁운동’(2007~) 등 많은 성과를 냈다. 연말정산 소득공제 환급도우미 서비스만 해도 최근까지 3만5000여 명이 300억원가량의 환급혜택을 받았다.


세무 시민활동가의 대가(代價)는 만만찮았다. 그간 고소·고발로 검찰과 경찰에 불려가 조사를 받은 것만 10여 차례다. 2005년에는 이례적인 세무조사까지 받았다. 하지만 털어도 날 먼지가 별로 없었다. 세무조사 추징금이 28만원에 불과했다는 게 그 증거다. 그는 “구체적으로 나열하긴 어렵지만 그간 여기저기서 상상을 초월하는 압박을 받아왔다”며 “그래도 거리낄 것이 없으니 여태껏 무탈하게 살고 있다”고 말했다.


100만 명 회원 보유한 세무분야 ‘재야인사’역설적으로 들리지만 김 회장은 가진 게 없기 때문에 한국납세자연맹의 회장을 잘해올 수 있었다고 말한다. 세무사 자격증이 있었다면 세무사의 이익에 반하는 일을 하기 어려웠을 테고, 재산이 많았다면 어떻게든 세금을 줄이려 애쓰다 탈루를 할 수도 있었을 거다. 그는 최근에서야 3억여원짜리 아파트 한 채를 소유하게 됐지만 대출금과 전세금 등 부채를 제하면 실제 재산은 1억여원에 불과하다. 그는 “안타깝게도(?) 친척 중에도 돈 잘 버는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그간의 활동을 인정받아 2010년부터 세계납세자연맹(WTA) 부회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


납세자연맹은 정부지원금을 한 푼도 안 받는다. 정부로부터 재정지원을 받게 되면 독립적인 활동을 하는 데 제약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대신 6000명가량의 정기후원자와 세금환급서비스 코너를 이용한 사람들의 기부, 100만 명에 이르는 인터넷 회원 덕분에 생기는 홈페이지 광고수입 등으로 넉넉하진 않지만 연맹을 꾸려오고 있다.


김 회장은 세정 전문가답게 세금의 눈으로 역사와 정치를 해석했다. 세금은 민주주의의 근간이며, 저항을 통한 재산권 보호가 바로 민주주의 역사라고 풀이했다. 대표적 사례로 영국의 대헌장(마그나카르타)을 꼽았다. 그는 “한 국가의 민주주의 성숙도를 판별하는 대표적 방법이 세무공무원에 대한 스트레스 정도”며 “스웨덴의 경우 국민에게 가장 존경받는 직업이 세무공무원”이라고 말했다. 민주시민의 성숙도 또한 세금에 대한 권리의식 수준으로 판별할 수 있다고 한다. 그는 “미국 등 서구 선진국에서는 세금낭비에 대한 시민의식이 매서울 정도로 투철하다”면서 “연말정산 때가 돼서야 세금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는 우리나라 사람들과 비교되는 점”이라고 말했다.


최준호 기자 joo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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