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촐한 겨울여행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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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3호 27면

언젠가 책을 읽다 이런 구절을 발견했다. ‘매력을 느낀다는 것은 이유 없이 끌리는 것이다.’


모처럼 시간을 내 서울에 올라갔다. 그간 한 번은 가야지 했던 강남 한복판의 봉은사. 추사 김정희가 돌아가시던 해인 1856년 마지막 붓을 잡아 썼다는 판전(板殿)의 현판을 보기 위해서였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겨울 오후 지하철을 내려, 봉은사에 들어가는 입구에서 몇몇 불자님들에게 판전이 있는 곳이 어디냐고 물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람들이 고개만 가로저었다. 그럴 리가 했는데 젊은 사람에게 물으니 그는 손사래를 치며 한국 사람이 아니라 모른다 했다. 중국인 관광객들이 한국의 절집까지 몰려든 것이리라. 그렇거니 하며 더듬더듬 한참을 헤맨 후에 ‘板殿’(판전)이라 쓴 현판이 걸려있는 절집 앞에 섰다.


역사의 시간이 흐른 자취, 한 사람의 마지막 필력이 멈춘 곳에 서 있으니 순간 경건함을 넘어 뜻 모를 전율이 느껴졌다. 조선 후기에 선비로서 또는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국가 대사에 바른 말을 하다 밀리고 쫓겨 유배를 당했던 그였다. 현판 속 글씨는 나이 듦에 글 자랑 또는 인생 자랑도 할 것 없음을 그대로 보여주는 필체였다. 불교의 초의선사와 친구를 맺어 그에게 글을 보낸 한 편의 글은 “차나 잘 마시고 있게나(一爐香室)”하는 여유였다.


호사스런 서평가들은 판전의 추사 글씨를 담백하다거나. 또는 마지막 대미를 장식한 서체 미학의 감흥이 고스란히 배어있다는 등, 향기로운 말들을 하지만, 난 ‘그냥 그렇구나’ 하는 정직함과 고뇌하는 인간적 겸양을 느꼈다. 삶의 가장 멋진 맛은 떠날 때의 멋과 자랑하지 않음이 몸에 밴 ‘여백’이라 생각된다. 어찌 보면 우리 삶의 여백은 적당히 비어있는 마음의 충만함이기 때문이다.


판전 문을 열어보고 싶어 문고리를 만지작거리니 ‘일정시간 아니면 문을 열 수 없다’는 글귀가 내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사찰을 나오며 서점에 들러 주인에게 물었다. “판전에는 뭐가 있습니까”. “그곳은 화엄경 경판이 가득 들어 있는 곳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목판에 찍어 스님이고 신도이고 간에 널리 부처의 법을 전하고자 했던 300년 전의 일들이 상상이 되었다.


문득 한 구절이 떠올랐다. 일락서산 월출동(日落西山 月出東)이라. 해가 서산에 지지만 영원히 지는 것이 아니며, 지는 해 안타깝지만 어느새 달은 동쪽 산언덕에 맑게 비추고 있네. 산행 길에 하나의 산을 넘으면 반드시 또 하나의 산이 있듯, 또 어둠이 깊어지면 새벽이 밝아오듯, 끝 간 데에서 새 희망이 보이는 것은 우리가 살아온 인생이라는 스케치나 연극 대본의 그림자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요즘 내가 ‘절처봉생(絶處逢生, 절대 절명의 판국에서 요행히 살 길이 생긴다는 뜻)’이라는 화두를 가슴에 간직하고 있는 이유는 흔해 빠진 희망이란 말보다는 끝이 보이는 곳에서 시작되는 새로움 때문이다. 앞서간 사람들이나 그 뒤로 따라가는 자신이나 그리고 뒤로 따라오는 사람들에게도 삶은 정직한 길로 정해진 고속도로가 아니라 다만, 현재의 모습에서 경험하며 사는 진실함과 마주선 나날들이다.


정은광 교무dmsehf443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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