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인권위 이번엔 인신보호법 엇박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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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에 제출된 인신보호법 제정안을 놓고 법무부와 국가인권위가 정반대 의견을 내놓았다. 최근 비정규직 법안을 둘러싼 인권위와 노동부의 갈등에 이어 인권위와 정부 부처와의 대립이 거듭되고 있는 양상이다. 법무부는 지난 15일 인신보호법의 제정을 사실상 반대하는 내용의 의견서를 국회 법사위에 공식 제출했다. 인권위가 '적극 찬성' 입장을 밝힌 지 1주일여 만이다.

인신보호법안은 법원에 적부(適否)의 심사를 청구할 수 있는 '체포 또는 구속'의 개념을 현행 형사 절차뿐 아니라 행정처분 등 모든 형태의 공권력과 개인 및 민간시설에 의한 구금까지 확대하고 있다. 예를 들어 부랑인을 정신의료기관에 수용하거나 개인이 지체장애인들을 불법으로 구금해 구걸행위를 시키는 경우에도 법원에 구제를 신청할 수 있도록 했다.

법안은 한나라당 나경원 의원 등 여야 의원 49명이 제안해 현재 법사위에 회부된 상태다. 인권위는 법안에 대해 "헌법정신에 부합해 적극 찬성한다"는 의견을 법사위에 냈다. 세계인권선언 등 국내외 관련법을 참조해 구제 청구대상을 더욱 확대하고 재판 소요 비용도 최소한으로 하자는 의견도 덧붙였다.

그러나 법무부는 "모든 부당한 억류 및 구금에 대해 사법적 구제가 필요하다는 취지에는 공감한다"면서도 현실적인 법 적용의 어려움을 들어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현행 형사소송법.아동복지법.장애인복지법 등 관계 법령에 구제절차가 이미 규정돼 있어 법 제정의 실효성이 극히 미약하고 구제 절차가 중복될 경우 운영과정에서 혼란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주장했다. 법무부는 "개인 또는 민간단체가 당사자의 동의 없이 구금할 경우 그 자체가 범죄행위가 될 가능성이 매우 커 사법 심사보다는 경찰 등 초동 수사기관의 즉시 구제조치가 더 필요하다"며 "일본에서도 1948년 이 법이 제정됐지만 적용사례가 거의 없어 사문화된 상태"라고 밝혔다.

법무부와 인권위는 이에 앞서 국가보안법과 사형제 폐지를 놓고도 다른 견해를 밝힌 바 있다. 인권위는 모두 폐지를 주장했고 법무부는 신중 또는 반대 입장이었다. 국회 관계자는 "법무부는 현실적인 법 적용 여부에, 인권위는 명분과 취지에 보다 중점을 두는 것 같다"고 평했다. 법사위는 이번주 중 인신보호법을 정식으로 상정한 뒤 법안심사소위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를 시작할 예정이다.

김정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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