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타 재미에 푹 '한국의 이치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1면

이승엽(삼성)의 홈런 레이스에 관심이 쏠려 있는 사이 SK의 고졸 5년차 이진영(사진)이 타격왕을 향해 한발 한발 다가서고 있다. 지난달 30일 현재 이진영은 타율 0.350으로 김동주(두산·0.344), 양준혁(삼성·0.340)보다 앞서 있다.

이진영은 이승엽과 비슷한 과정을 겪었다. 투수로 프로에 입단한 후 타자로 전향, 성공한 좌타자다.

군산상고를 졸업한 1999년 이진영은 당시 쌍방울로부터 계약금 1억원을 받았다. 비록 일시불이 아니라 할부이긴 했지만 심각한 경영난으로 선수들을 팔아 연명하던 쌍방울로서는 파격적인 투자였다. 왼손 투수 이진영에 대한 기대가 그만큼 컸다.

그러나 당시 쌍방울 김성근 감독은 이진영을 야수로 기용했다. 투수를 소중히 여기는 투수 출신 김감독으로서는 의외의 일이었다. 김성근 감독은 "왼손 투수가 아깝긴 했으나 투수보다 타자로서의 성장 가능성이 더 커 보였다"고 기억했다.

이진영은 99년 주로 2군에서 방망이를 다듬은 후 2000년 타율 0.247, 이듬해 타율 0.280으로 올라서더니 지난해에는 대망의 3할(0.308) 문을 열었다. 올시즌에는 더욱 성장해 어느새 타격 1위의 매서운 방망이를 자랑하고 있다.

이승엽과 비슷한 길을 걸었지만 이진영은 이승엽처럼 방망이를 크게 휘두르지 않는다. 짧게 잡고 맞히는데 주력한다. 주위에서는 "좀 시원시원하게 홈런도 때리라"고 주문하지만 이진영은 안타 외에는 관심이 없다. 특히 내야안타를 때리는 재미가 그만이다. "내야안타를 때리면 자신감이 불끈불끈 솟는다"고 한다.

왼손타석에서 땅볼을 치고 나서 1백m를 12초에 끊는 발로 내야안타를 노리거나 내야수가 전진하면 타구를 머리위로 살짝 넘기는 모습이 꼭 이치로(시애틀 매리너스)스타일이다. 이진영도 "이치로를 모델로 삼아 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성근 감독은 "지난해보다 볼을 오래 보고, 볼을 몸쪽으로 잡아 놓고 때린다. 계속 좋아지고 있으나 아직 변화구에 약점이 있고 자기 스윙폼이 완전히 만들어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진영이 '한국의 이치로'가 되기 위해선 아직 과제가 많이 남아 있다는 얘기다.

사실 스윙폼이 엉성해 보이는 면도 있다. 그래도 맞히는 재주는 타고 났다. 미완성으로 수위타자 자리에 오른 이진영이 한 단계 더 도약할 가능성이 그래서 남아 있다.

성호준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