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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에서] 반환 6주년 '갈라진 민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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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홍콩에서 1일 1989년 천안문(天安門) 사태 이후 최대 규모의 시위가 발생했다.

홍콩 정부가 '홍콩판 국가보안법'으로 일컬어지는 국가안전 조례(일명 23조 입법)를 이달 안에 입법화하겠다는 뜻을 밝히자 홍콩인들이 들고 일어선 것이다. 홍콩 섬의 빅토리아 공원에서는 주최측 추산으로는 50만명(경찰측 집계 35만명)이나 되는 시위 인파가 모였다.

시위대는 섭씨 32도가 넘는 뙤약볕 아래에서 '반대 23조'라고 적힌 검은색 티셔츠를 입고 "홍콩의 자유와 자치를 위협 말라"고 경고했다. 이날 시위는 반정부 세력의 총결집이나 다름없었다.

홍콩의 민간.언론단체는 물론 중국에서 탄압을 받는 파룬궁(法輪功) 수련생, 천안문 사태 피해자 가족까지 나섰다. 천주교 홍콩 교구의 천르쥔(陳日君)주교 등 종교 지도자들 역시 시위 지지 의사를 밝혔다.

이들은 빅토리아 공원에서부터 정부 청사까지 4㎞에 이르는 가두 시위를 벌이면서 둥젠화(董建華) 행정수반의 퇴진을 요구했다. "우리는 지쳤다. 분노했다. 물러나라"는 구호가 잇따랐다. 행인들은 손을 흔들거나 박수로 동조했다.

홍콩의 장기 불황과 사상 최고의 실업률, 중증 급성 호흡기증후군(SARS.사스) 등으로 황폐해진 민심을 드러낸 것이다. 30대 초반의 우(吳)모씨는 "홍콩보다 중국 대륙의 민주화를 촉구한다는 뜻에서 시위에 참가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홍콩 정부는 2박3일간 홍콩을 방문한 원자바오(溫家寶)총리의 격려에 힘입었는지 시위대의 요구엔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溫총리는 이날 낮 공항에서 "23조 입법은 법에 보장된 홍콩인들의 권리와 자유에 절대로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홍콩=이양수 특파원
사진=홍콩 로이터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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