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미디어 포커스' 과거사 자아비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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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지난달 28일 KBS의 매체비평 프로그램인 '미디어 포커스'가 첫 전파를 탔다. 주말 황금시간대에 포진한 '미디어 포커스'는 정연주 사장 취임 이후 KBS가 내세우고 있는 대표적인 개혁 프로그램 중 하나다.

첫 방송은 예고했던 대로 '자아 비판'으로 채워졌다. 정권 편들기에 급급했던 역사가 스스로의 입으로 폭로됐다. 방송이 나가자 인터넷 홈페이지는 긍정론과 부정론이 엇갈리며 달아올랐다.


KBS는 또 친(親)권력적인 KBS 인사들이 대거 정치권으로 들어갔다며 앵커 출신의 이윤성 현 한나라당 의원.박성범 전 의원 등의 얼굴을 비추기도 했다.

과거사 자아비판=KBS는 역대 정권을 거치는 동안 권력의 나팔수 역할을 했음을 자인했다. 알아서 '해바라기'가 되기도 했다. 청와대로 상징되는 외압에 의해 편성권이 제약받아 왔음도 인정했다. 권력을 쳐다보느라 소수의 목소리에 충분히 귀를 기울이지 못했다고 털어 놓았다.

이런 상황은 군사정권 시절은 물론 국민의 정부에서도 여전했다고 한다. KBS는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98년 "과거를 깊이 반성하고 공영방송의 본분을 지키겠다"고 사과한 바 있다. 미디어 포커스는 "그러나 이 약속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고 잘라 말했다.

특히 KBS는 권력에 추종하던 고위 간부들이 정권이 바뀌어도 양지에 섰다며, 정치인으로 변신한 박성범.이윤성 전 매인뉴스 앵커들의 얼굴을 비추고 현 KBS 이사까지 거론했다.

엇갈리는 시청자 반응="KBS의 놀라운 변신에 박수를 보낸다""현 체제를 정당화하기 위해 5년마다 일회성 쇼를 하고 있다."

많은 언론학자와 시청자는 KBS가 지난 과오를 반성하고 새 출발을 다짐한 것에 큰 기대를 보냈다.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은 지난달 30일 "용기 있는 보도 태도를 높이 평가하며 초심을 잃지 않기를 바란다"는 논평을 냈다.

그러나 홈페이지에는 비판과 우려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게 올라왔다. 한 시청자는 첫 방송이 정연주 체제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데 치중하느라 이미 회사를 떠났거나 요직에서 밀려난 사람들에게만 화살을 돌렸다고 지적했다.

논란이 일기는 KBS 내부에서도 마찬가지다. "진정한 변화가 시작됐다"는 평가가 있는 반면 "꿋꿋이 자기 일만 해온 KBS인들을 매도했다"고 반발하는 이도 많다. 권력에 아부해 출세한 것처럼 묘사된 정치권의 한 인사는 "현재 제기된 문제는 언급도 안한 채 자기들만 '우린 과거와 다르다'고 외치는 건 비겁하다"고 말했다.

특정 신문 비판 위한 포석?='자기 반성'이란 존중되는 가치임에도 불구하고 논란이 일고 있는 건 KBS의 자기 반성이 요란하고 일사불란하며 목적지향적으로 비춰지기 때문이다.

우선 KBS가 향후 특정 신문의 과거사를 집중 거론하기 위해서는 "우린 반성했다"는 '절차'가 꼭 필요했을 것"이라는 추론이 나온다. 여기에 많은 시청자는 KBS가 누구나 다 아는 과거를 단죄하기보다 현 정권에서 독립적인 태도를 견지하기를 희망한다. 죽은 권력이 아니라 '살아 있는'권력에 메스를 들이대기를 바라는 것이다.

KBS의 한 중견 간부는 "정연주 사장의 개혁에 박수를 보낼 부분이 많지만, 동시에 KBS의 개혁이 지나치게 대통령과 코드를 맞춰 간다는 목소리에도 귀 기울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울의 한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KBS가 농어민.장애인 프로그램을 없애고 대통령의 주례연설을 방송키로 한 것은, 권력 대신 소수에 관심을 쏟겠다는 약속과 다른 것 아닌가"라고 물은 뒤 "처음의 반성이 일회성에 그치지 않도록 권력과 끊임없이 거리를 두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택환 미디어 전문기자, 이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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