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기획 '2016 의식주 트렌드' ② 공유부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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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명시 하안동 공유부엌 마이키친을 찾은 주민들이 각자 만든 음식을 들어보이며 활짝 웃고 있다. 자신이 조리하고 싶은 메뉴를 주문하면 업체가 신선한 재료와 조리 공간을 제공한다. 오른쪽 사진은 주방에서 함께 요리하는 모습.

새해 초에는 주목해야 할 주요 트렌드에 많은 사람의 관심이 쏠린다. 그래야 유행에 뒤처지지 않고 좀 더 나은 삶을 누릴 수 있어서다. 중앙일보 라이프 트렌드는 올해 눈여겨봐야 할 의식주 트렌드를 3회에 걸쳐 연재한다. 두 번째는 식(食)과 관련된 관계 지향 식문화인 ‘공유부엌’이다.

이웃과 오순도순 집밥 요리, 정을 담은 밥상 이야기꽃

"만들고 싶은 음식 예약하면 필요한 식재료·조리시설 준비 함께 요리해 나눠 먹는 재미"

김현주(35·경기도 광명시 철산동)씨는 요즘 요리하는 재미에 푹 빠졌다. 조리시설이 잘 갖춰진 주방에서 지인과 음식을 함께 만들어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가족을 위해 저녁 메뉴를 구성해 직접 조리한 음식을 집으로 가져가기도 한다. 석용호(41·광명시 철산동)씨는 최근 아내의 생일을 위해 잡채와 버섯불고기찌개를 만들었다. 음식을 만들어 본 경험이 없어 고민했지만 함께 요리하는 주변 사람들이 도와줘 어려움 없이 맛있는 음식을 만들었다. 그는 “한 동네에 살면서 얼굴도 모르고 지내던 주민들이 한곳에 모여 음식을 만들고 나눠 먹는 모습에서 따뜻한 정을 느꼈다”고 말했다.

1인 가구, 맞벌이 증가 따른 새 식문화
이들은 인근에 이색적인 가게가 문을 열었기 때문에 이 같은 경험을 할 수 있게 됐다. 함께 요리하며 소통할 수 있는 공유부엌 ‘마이키친’이다. 재료비 등을 주면 주민들이 한 공간에서 음식을 만들어 이웃과 나눠 먹거나 집으로 가져갈 수 있다. 1인 가구와 맞벌이 가정이 늘면서 탄생한 신개념의 식문화 공간이다. 퇴근 후 집에 돌아와 요리해야 하는 1인 가구와 맞벌이들의 고달픈 삶을 덜어주기 위한 시대상이 반영됐다.
  이곳에서는 자신이 만들어 먹고 싶은 메뉴를 예약하면 시간에 맞춰 정갈하게 다듬어 놓은 식재료와 요리할 수 있는 조리시설을 제공한다. 음식 만들기가 서투른 이들을 위해 집밥 전문 도우미도 상주한다. 손수 장을 봐야하는 부담도 없다. 조리해야 할 시간이 없거나 어떤 것을 먹어야 할지 고민할 필요도 없다. 외로움을 달래며 혼자 밥을 먹어야 하는 ‘혼밥족’들도 이곳을 자주 찾는다. 이동근 마이 키친 대표이사는 “공유부엌이 단순히 음식을 만드는 개념을넘어 이웃, 세대가 소통하며 심리적 불안과 외로움을 달래는 문화로 자리잡는 것은 물론 집밥의 가치를 높이는 장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혼자 사는 나홀로족이 500만 명을 넘어섰다. 그만큼 혼자 밥을 먹는 일도 흔해졌다. 모바일 등에는 혼자 밥을 먹는 ‘혼밥족’들의 인증샷이 유행한다. 편의점과 대형마트에서 도시락과 소량 포장 음식은 인기 품목이 됐다. 외식업체는 1인 좌석을 마련하고 그에 맞는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하지만 풍요로워진 서비스에도 소비자들의 내적인 공허함은 채워주지 못한다. 모바일 시대에 타인과의 교류는 쉬워졌지만 마주 앉아 밥 한 끼 먹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아무리 좋은 음식이라도 정서·심리적 결핍까지는 해결할 수 없다. 이웃이나 세대 간 소통 단절 시대가 불러온 현상이다. 사람들은 음식 자체를 탐닉하는 과거와 달리 식사를 통해 정서적인 포만감을 채우기를 원한다. 관계 지향 식문화가 올해의 식문화 키워드로 떠오르는 이유다. 같은 공간에서 함께 음식을 만들며 정을 나누는 공유부엌이 집밥의 가치를 높이는 새로운 식문화로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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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이 요리한 불고기버섯찌개와 베이컨야채말이.

지자체 동참, SNS 통한 식사 공유 확산
한국트렌드연구소는 올해에 새로운 형태의 식문화 공간인 공유부엌과 기존의 소셜다이닝이 즐거움, 배움, 관계에 대한 기대를 채워주는 콘텐트와 혼합되는 방식으로 확산될 것으로 전망했다.
  공유부엌은 음식을 통해 마을 공동체를 형성하는 역할도 한다. 주변 아파트 단지 노인들이 수십 년간 터득한 집밥 노하우를 같은 동네 젊은이들에게 알려주며 세대 간 벽을 허무는 공간으로도 활용된다. 주민들이 오손도손 모여 함께 집밥을 먹으며 이웃 간 정을 나누는 등 따뜻한 식문화를 확산시키는 계기도 된다.
  서울시도 관계 지향 식문화 확산에 동참하고 있다. 서울 강동구는 지난해 6월부터 마을 기업 ‘청년아지트 강동팟’과 연계한 공유부엌을 운영하고 있다. 부엌을 함께 사용하며 건강한 식생활을 즐길 수 있다. 특히 인간관계를 이끌어낸다는 점에서 새로운 식문화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인터넷을 통해 회원으로 등록한 주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인근 재래 시장에서 장을 보고 반찬이나 음식을 만들며 동네 친구를 사귀는 생활밀착형 프로젝트다.
  동작구와 금천구에 있는 모바일을 활용한 소셜 다이닝 ‘무중력지대’도 같은 방식의 나눔부엌이 있다. 혼자 밥 먹기 싫은 이들이 식사를 통해 자연스럽게 이웃과 교류하며 관계의 따듯함을 경험하고 있다. 동작구 무중력지대 손슬기 매니저는 “부엌이라는 공간을 주민들이 공유하며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고 건강한 식생활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계기가 되고 있다”며 “함께 요리하고 음식을 나눠 먹으며 소통하는 공유부엌이 진정한 공식의 가치를 일깨워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모바일을 활용해 함께 식사하는 소셜다이닝도 있다. 최근 서울대 학생들이 스마트폰 앱 ‘두리두밥’을 개발했다. 학생들이 학교 근처 식당이나 교내에서 밥 먹을 때 약속을 잡을 수 있도록 연결한다. 점심이나 저녁 장소를 신청하면 무작위로 짝을 맺어주는 방식이다. 누구와 밥을 먹을지 알 수 없는 기대와 관계의 중요성을 동시에 충족시켜 준다.
  한국트렌드연구소 박성희 연구원은 “공유 부엌과 소셜다이닝이 자리잡기 위해서는 공간을 제공하거나 사람들을 모아주는 것에만 그칠 게 아니라 새로운 콘텐트와 흥미로운 스토리를 연결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런 방식을 통해 마음을 채우고 정신적 활력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글=강태우 기자 kang.taewoo@joongang.co.kr, 사진=프리랜서 김정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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