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대만 대선에 따른 양안 관계 변화에 주목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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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슬퍼할지라도 포기하지는 말자. 우리는 다시 돌아올 것이다.” 4년 전 대만 대선에서 패배한 직후 차이잉원(蔡英文) 민진당 후보가 지지자들에게 외친 말이다. 그런 그가 약속을 지키기라도 하듯 16일 치러진 대만 총통 선거에서 압승을 거두며 대만 역사상 첫 여성 지도자가 됐다.

 차이잉원은 ‘대만의 딸’로 불린다. 대만의 자랑스러운 여성이란 의미가 있지만 대만 독립을 당의 강령으로 삼고 있는 민진당 출신이라는 점에서 대만의 정체성을 강조하는 뜻도 깔려 있다. 우리가 이번 대만 대선의 결과를 주목하는 이유다. 대만의 지도자 선출은 대만 국내 문제로 그치지 않는다. 중국과의 미묘한 양안(兩岸) 문제가 되기도 하고 또 미·중 사이의 가장 민감한 이슈로서 미·중 관계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차이잉원의 당선 배경엔 대만 경제의 침체와 경쟁 상대인 국민당의 내분이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못지않게 지난 8년간 집권한 국민당 출신 마잉주(馬英九) 총통의 친(親)중국화 정책에 대한 경계심이 깔려 있다.

 중국으로 공장을 이전하면서 대만 내 산업 공동화(空洞化) 현상이 생겼고, 대륙으로 기회를 찾아 떠나는 인재 유출 현상도 심각하다. 대만 경제가 중국에 종속되고 있다는 우려와 함께 마잉주가 추구한 중국과의 경제협력 과실은 일부 사람만 향유하고 있다는 비판도 많았다.

 대만인의 정체성 변화도 눈길을 끈다. 2008년 자신을 대만인이라고만 생각하는 사람이 48.4%에서 2014년엔 60.4%로 뛰었다. 반면 대만인이자 중국인이라고 응답한이는 43.1%에서 32.3%로, 중국인이라고만 생각하는 사람은 4.5%에서 3.3%로 줄었다.

 차이잉원은 양안 정책과 관련해 ‘현상 유지’ 정책을 추구하겠다고 말한다. 과거 민진당의 천수이볜(陳水扁)처럼 대만 독립을 서두르지도 않을 것이고 또 마잉주처럼 중국에 가까이 다가서지도 않을 것이란 이야기다.

 중국은 차이잉원의 당선에 대해 ‘대만 독립의 분열 행동을 반대한다’는 성명을 내고 경계심을 나타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양안 문제를 매번 다음 세대에게 미룰 수 없다며 돌파구 찾기에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양안 관계가 마잉주 때와 같이 순탄치만은 않을 전망이다. 최근 한국의 걸그룹 멤버인 대만의 쯔위(周子瑜)가 한국 방송에서 대만기를 흔든 게 양안 네티즌 사이의 격렬한 감정 싸움을 유발하듯이 앞으로 양안 간 긴장은 고조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연말 미국 대선에서 대중 강경파가 당선될 경우 양안 간 파고는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미·중 갈등은 한반도 안정에 불안 요소다. 북핵과 더불어 동북아의 불안정 요인 하나가 추가된 셈이다.

 양안 관계는 남북 문제와도 긴밀하게 연동된다. 대만과 북한은 서로를 대(對)중국 정책의 지렛대로 활용한 적이 있다. 대만이 90년대 후반 핵 폐기물을 북한에 수출하려 했던 것이 좋은 예다. 대만 지도자 변화에 따른 양안 관계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며 우리의 외교 및 안보 전략을 새롭게 가다듬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