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에서 활약한 '화성인'의 메시지···"좀 이상해도 괜찮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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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램록의 대부 데이비드 보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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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9월 14일 미국 하트포드에서 가진 콘서트에서 열창하는 데이비드 보위. [AP 뉴시스]

어린 시절 내게 데이비드 보위는 그냥 ‘이상하기만 한’ 사람이었다. 그 시절 누구나 한번쯤 들었던 퀸의 앨범에서 들은 ‘언더 프레셔’는 충격적일 만큼 매력적이었고 학창시절 빌보드 차트의 ‘유행가’로 접한 ‘렛츠 댄스’나 ‘차이나 걸’ 역시 한 번 들으면 잊기 힘든 강렬한 곡이었다. 그러나 나는 모범생이 삶이 목표였고 그저 튀지 않게 살도록 어렸을 때부터 프로그래밍 된 뇌를 가진 교복 세대였다. 화려한 분장으로 여자인지 남자인지 분간하기 힘든 기묘한 패션을 한 이 서양 가수는 너무 ‘이상해서’ 도저히 같은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으로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실제로 그는 스스로를 ‘지기 스타더스트(Ziggy Stardust)’라고 부르며 화성에서 온 외계인을 자처하던 사람이었다.

글램록의 대부 데이비드 보위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이 사람의 음악을 하나씩 둘씩 듣게 되면서 점점 빠져들게 됐다.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 ‘스페이스 오딧세이’에 영감을 받아 아폴로호가 달착륙을 하던 그 이듬해에 내놓은 ‘스페이스 오디티’(1969)를 비롯, 베를린 장벽의 아픔을 담은 ‘히어로스’나 ‘레벨 레벨’ ‘라이프 온 마스’ 같은 과거 히트작과 최신 음반까지 들으면서, 정교하진 않지만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보컬과 온갖 장르를 아우르는 환상적인 멜로디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뿐만 아니라 ‘나쁜 피’ ‘벨벳 골드마인드’에서 최근작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마션’에 이르는 수많은 영화 그리고 패션 등 예술계에 끼친 거대한 영향, 콜라보레이션 무대에 섰던 플라시보 같은 뮤지션들이 비디오에서 보여주는 그에 대한 진심어린 존경, 깊은 지성을 느끼게 하는 독서 리스트, 그리고 무엇보다 멋지게 나이 들어가는 외모에까지 반하면서, 급기야는 ‘세상에서 가장 섹시하고 멋진 남자’ 중 하나로 꼽을 만큼이 됐다.

그런데 그를 진정 좋아하게 된 건 예술가로서의, 위대함 남자로서의 섹시함 이상의 알 수 없는 끌림이었다. 멋지고 위대한 사람은 많으니까. 왜 나는 ‘이상했던’ 이 사람을 좋아하게 된 걸까. 그가 떠나고 난 뒤 그의 인생과 음악, 그리고 그를 사랑했던 사람들이 남긴 말들을 보며 어렴풋이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화성인을 자처하기까지의 그의 삶은 결코 평범하거나 쉽지 않았을 것이다. 어렸을 때 눈을 다쳐 양쪽 눈동자 색깔이 다른 ‘오드 아이’, 중성적인 체격와 외모, 양성애자 의혹 같은 것들을 1960~70년대에 견뎌내야 했던 걸 생각하면 그렇다. 지구인들 속에서는 버티기 힘든 그가 화성에서야 비로소 찾을 수 밖에 없었던 자신의 정체성(지기 스타더스트), 지구와의 교신이 끊겨버려 ‘아내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끝내 전할 수 없었던 우주인의 혼잣말(스페이스 오디티) 등에서 그의 마음속 상처와 외로움을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그러니 살수록 모범적인 삶이 점점 힘들어지고 지구인의 규율에서 일탈하고 방황하던 내 마음이 그의 노래에 끌려들어 갔던 일도 비로소 이해가 되는 것이다. “부모님은 안돼! 라고 하고 집에서 나가라 하고 친구도 없고 깊은 꿈 속으로 걸어들어가는” ‘화성에서의 삶’의 느낌을, 누구와도 교신할 수 없는 무한한 우주에 무한히 버려진 느낌을 나뿐 아니라 그의 팬들 역시 살아오면서 겪어왔기 때문이었다. 역사적으로는 2차 대전 이후 혹은 68혁명 이후의 힘들고 공허한 세대들에게 삶의 고단함과 외로움 같은 것들은, 자신 안에 있는 외계인 같은 ‘이상함’을 혁신적 예술로 꽃 피워내는 걸로 바꿔놓을 수 있음을 보여준 그였다.

영원히 죽지 않을 것 같은 화성인이자 흡혈귀였던 그가 죽기 직전 내놓은 노래 ‘블랙 스타’ ‘라자러스’ 등의 뮤직비디오에서 보여준 죽음의 암시를 뒤늦게 깨닫는 일은 팬들로서는 몹시 괴로운 일이다. 그는 눈을 가리고 침대에 누워 “난 지금 천국에 있어. 위험 속에 있어”라며 괴로워하고, 꿈인 듯한 영상 속에는 결국 교신에 실패한 우주인이 해골로 변해 어느 별인가에 버려져 있다. 평생을 혁신해가며, 지구인의 한계를 벗어나며 살아온 그였지만, 당신과 나처럼 그 또한 유한한 존재였음을 쓸쓸히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그가 떠나고 나서야 내 이끌림의 이유를 확연히 깨닫는다. 나는, 우리는, 그처럼 모두 얼마씩은 다 ‘이상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이었다. 현실의 압박으로 꾹꾹 눌러왔던 내 속의 ‘이상함’을 긍정하고 거기에 영감을 불어넣기만 한다면 내 속에 존재하는 거대한 우주의 문을 열 수 있다는 것. 그래야 진정한 내가 누구인지, 또 온전한 나 자신으로 나만의 몸짓으로 이 세상을 버티며 살 수 있음을 알게 된다는 것. 내가 좀 이상해도 된다고, 이상한 것이 힘이 될 거라고 믿으라는 것. 이것이야말로 화성으로 영원히 돌아간 그를 그리며 우리 지구인이 간직할 메시지일 것이다.

글 이윤정 대중문화칼럼니스트 filmpool@gmail.com
[사진 =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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