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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국정연설에서 북한이 빠진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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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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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터 차
미국 조지타운대 교수

북한은 핵실험을 네 번 했다. 그중 세 번을 오바마 대통령 임기에 실시했다. 또 그중에서도 두 번은 오바마 대통령의 국정연설 직전에 감행했다. 2013년 평양은 국정연설 전날 밤에 핵장치(nuclear device)를 터뜨렸다. 오바마 대통령은 다음날 국정연설에서 북한의 도발에 대해 거론했다. 하지만 올해에는 북한 핵실험은커녕 아예 북한을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무슨 의미일까.

 우선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 정책과 부합된다는 해석이 있다. 이 전략은 북한의 도발에 이은 협상이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깨려고 한다. 미국의 관심을 끌겠다는 시도에 일일이 반응하지 않는다. 그래서 오바마는 의도적으로 북한을 무시했다는 것이다. 그는 주목받고 싶어하는 평양의 갈망을 외면했다.

 두 번째 주장에 따르면 전략적 인내가 아니라 국정연설의 성격 때문에 북한이 빠졌다. 즉 전통적으로 국정연설은 외교정책보다는 국내정책을 주요 내용으로 삼는다. 연설의 대상은 세계인이 아니라 미국 국민이다. 화요일 밤 오바마의 임기 마지막 국정연설에서 외교정책이 등장했지만 그 목적은 그가 겪은 어려움이 아니라 그가 성취한 것들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역사가들이 오바마의 정치적 유산을 기억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이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미얀마 등이 언급됐다. 대북(對北) 정책은 오바마에게 승리하고는 거리가 멀기 때문에 빠졌다.

 세 번째 이론에 따르면 미국 어젠다의 우선 순위에서 북한은 뒤로 밀린다. 오바마 행정부는 이슬람국가(IS), 건강보험 개혁, 우크라이나, 남중국해 등의 주요 문제에 신경 쓰느라 북한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할 겨를이 없다. 북한의 네 번째 핵실험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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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이 세 가지 이론에는 각기 일리가 있다. 네 번째 이론을 제시하겠다. 오바마 행정부는 북핵 문제를 지극히 중시한다. 하지만 7년에 걸친 노력 끝에 오바마는 임기 마지막 해에 북한 문제의 돌파구를 찾을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됐다. 북한이 빠진 이유는 희망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막판에라도 이란·쿠바·미얀마에서 성취한 외교적인 돌파구를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을 결국 버린 것이다. 그래서 언급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믿기지 않는가. 오바마 대통령의 2013년 국정연설을 살펴보자. 오바마는 북한의 세 번째 핵실험을 상당한 정도로 중시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북한 정권은 오직 그들의 국제적인 의무를 이행함으로써 안보와 번영을 달성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지난 밤 우리가 목격한 것과 같은 도발로는 북한의 고립이 심화될 뿐이다. 우리는 우리 동맹국들을 변함없이 지지하고, 미사일방어 체제를 강화할 것이며, 이런 위협에 대응해 우리는 세계가 강경한 행동을 취하도록 지도력을 발휘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말에 대한 세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첫째, 국정연설의 90%가 국내정책, 10%가 외교정책에 대한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오바마는 북한 문제를 높은 비중으로 언급했다. 분량으로 따지면 이스라엘보다는 많고 아프가니스탄보다는 약간 덜한 정도였다.

 둘째, 오바마의 북한 관련 발언이 강경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북한과 협상하겠다는 의지를 미묘하지만 명백하게 밝히고 있다. 오바마에게 가장 중요한 연설의 전날 밤에 핵실험을 함으로써 김정은은 오바마를 난처하게 만들려고 시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바마는 북한이 국제 규범을 준수한다면 북한이 “안보와 번영”의 길에 들어설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렇게 해석하는 것이 맞는다는 것은 미국-이란 외교의 가능성에 대한 국정연설의 다음 문장을 보면 알 수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마찬가지로 이란 지도자들은 지금이 외교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할 때라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여기서 핵심 단어는 ‘마찬가지로(likewise)’와 ‘지금(now)’이다. 오바마는 북한과 이란을 같은 틀에서 보고 있었다. 핵실험에도 불구하고 외교적인 타결의 기회를 열어놓았던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2016년 국정연설에서 북핵이 빠진 것은 미 행정부의 분노가 아니라 슬픔이 반영된 것이다. 임기 마지막 해에서 외교적인 타결이 가능할지 모른다는 희망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데서 오는 슬픔이다. 과거의 전례에 따른다면 북핵 실험에 대한 비난에 이어 평양이 만약 올바른 선택을 한다면 평화와 외교의 길이 열려 있다는 대목이 나왔을 것이다. 내가 보기에는 오바마가 그렇게 하지 않기로 선택한 이유는 그가 북한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나와 로버트 갈루치 전 미국 북핵특사가 지난 금요일자 뉴욕타임스 기고문에서 주장한 것처럼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북핵 문제가 오바마 행정부에서 다음 행정부로 넘어간다는 점이다. 올해에 북한의 핵·미사일 프로그램을 중단시키거나 동결시키는 합의를 이루지 못한다면 말이다. 2017년 이맘때쯤 북한이 얼마나 더 많은 핵무기를 갖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북핵은 차기 미국 대통령의 첫 번째 주요 위기가 될 수도 있다.

빅터 차 미국 조지타운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