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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핵실험 도발, 이제라도 합리적으로 대응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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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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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현익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북한의 핵실험이라는 기습 공격을 받은 우리는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최선일까.

 우선 평화를 위협하는 반민족적인 도발을 자행한 북한을 규탄하는 것은 평론가나 언론에 맡기고 정부는 자성부터 하는 것이 순리다. 북한이 지속적으로 핵 능력을 고도화해 온 지난 7년간 어떤 이유에서건 정부와 국제사회는 협상 한 번 제대로 갖지 못했다. 문제 해결은 못하더라도 핵 개발을 동결이라도 시켰어야 했다. 그것도 안 되면 추가 핵실험이라도 예방하거나 억지했어야 했다. 북한의 핵 보유로 가장 큰 전략적 피해를 볼 것이 분명한 우리 정부의 협상 주도력 부족이 아쉽다. 더구나 핵실험 동향을 미리 파악하지 못한 것도 반성하고 반드시 시정돼야 한다. “핵미사일이 날아올 때는 과연 사전에 잘 파악하고 예방·억지할 수 있을까”하는 우려마저 들기 때문이다.

 국가 안보 차원에서 이제 북한의 핵 공격 가능성을 가정하고 만반의 대비태세를 갖춰야 한다. 이론적으로는 핵 개발이 해결책이지만 국제정치 현실과 한국 경제의 높은 대외 의존도, 국가 신뢰도 등을 감안할 때 실현이 불가능하다. 미국의 전술핵 재배치도 미국이 호응할 가능성이 작다. 사드 배치는 효과에 비해 비용이 과다하고 중국과의 관계를 훼손할 것이다. 미국이 배치·운용의 모든 비용을 부담하겠다면 검토해 볼 수는 있을 것이다. 따라서 구두로만 약속돼 온 미국의 핵우산(확장억제) 보장을 조약 형태로 강화하거나 핵미사일을 장착한 핵잠수함의 한반도 인근 배치 등이 현실적인 대안으로 검토돼야 한다. 물론 우리 독자적으로도 미사일방어(KAMD) 체계를 개발하고 북한 지도부를 확실히 제거할 수 있는 감시력, 정밀타격 능력, 대량파괴 능력, 특공 능력 등을 구비해 억지력을 키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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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교적으로는 유엔 안보리에서 효과적인 대북제재 결의를 도출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특히 효과가 큰 대북제재 도출은 중국의 동참 여부에 달렸다. 이런 맥락에서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가 만일 남북 간 총격전으로라도 이어진다면 자칫 안보리에서의 논의가 대북제재로 집중되기보다 한반도 평화 회복이라는 주제로 분산될 위험성이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북핵 문제를 해결하려면 정부가 이제라도 합리적인 정책을 펼쳐야 한다. 북한의 핵 실전 능력 보유를 반드시 막아야 한다는 의지와 소명의식을 가지고 창의적인 외교 주도력을 발휘해야 한다. 미국과 힘을 합쳐도 북한 무역의 90%를 차지하는 중국을 실질적인 대북 무역 제재에 동참시키지 못한다면 최대한 효과적인 대북제재를 가하면서 북한과 핵 협상을 재개해 우선 핵 개발을 동결시켜야 한다. 협상 성공의 관건은 미국뿐 아니라 중국도 동의하는 북한 핵 포기 보상안과 북한이 그 제안을 거절할 경우 중국과 함께 시행할 가혹한 대북 제재안도 만드는 데 있다. 이 두 안을 한·미·중 3국이 공동으로 북한에 건네주고 김정은의 선택을 압박해야 한다. 물론 북한이 이미 핵 능력을 보유했으므로 그 포기 대가에는 한반도에서의 재래식 군사력 균형과 북한 안보에 대한 국제적 보장이 포함돼야 할 것이다. 달리 말하면 북핵 문제 해결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 동시에 타결되고 시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번 협상이 실패하면 북한이 핵 실전 능력을 확보할 것이라는 절박한 위기의식을 가지고 임해야 할 것이다.

 정부는 현 남북관계가 정부 정책인 한반도 신뢰 구축과 통일 대박론에서 상당한 괴리를 보이고 있고, 미·일 대 중·러 간 대립적인 신냉전 질서가 구축되는 양상의 동북아 정세에서 자칫 남북한이 방휼지쟁(蚌鷸之爭)을 벌이는 형국이 될 수도 있다는 문제의식을 가져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정부가 임기 중에 남북 간 신뢰를 구축하고 평화통일의 기반을 구축하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남북 간 정면 대립하는 국면에 처하는 것은 피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현재 남한의 경제력이 북한의 40배지만 북한이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고 오히려 우리를 위협하고 있는 역설적인 현실에 직면해 있다. 따라서 북한의 도발을 사전에 예방·억지하고, 그래도 도발하면 즉응적으로 적절히 응징해 도발하면 자신만 손해라는 학습효과를 주어야 한다. 또한 우리가 먼저 북한을 자극해 북한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것은 지혜롭지 않다.

 끝으로 통일이 핵과 인권 등 북한 관련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있지만 급격한 통일은 실현 가능성이 크지 않고 수반되는 비용과 희생이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크다. 오히려 우선적으로 남북관계를 정상화하고,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하면서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호혜적인 남북 경협을 증진해 간다면 궁극적으로 대박이 되는 평화통일이 어렵지 않게 달성될 것이다. 통일을 앞세우면 평화마저 유지하기 어려운 반면 투철한 안보의식을 가지고 남북 공존과 공동 번영을 추구하면 평화통일은 중장기적으로 시대정신에 따라 큰 비용 부담 없이 이룩될 수 있다. 즉 현재 우리에게는 통일보다 평화 회복과 정착이 더 시급하다.

홍현익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