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스토리] 외국인 경제특구法 시행은 되는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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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우리나라를 동북아의 경제중심으로 만들려는 정부 구상이 흔들리고 있다. 1일부터 경제자유구역법이 시행되지만, 정작 경제자유구역에 입주하는 외국기업에 세제.의료.교육 혜택을 주기 위한 관련 법령은 아직 만들어지지도 않았다. 하드웨어는 번듯한데, 소프트웨어는 빠진 셈이다.

정부는 겉으론 '동북아경제중심 국가'건설을 핵심 국정과제로 선정할 정도로 열의를 보였지만, 정작 필요한 제도 정비는 소홀해 출범 후 4개월을 허송했다는 질책이 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외국인 투자자에 대한 각종 혜택을 내걸며 외자유치를 추진하고 있는 지방자치단체는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경제특구 늦어진다=정부는 하반기 중 인천.부산.광양 등을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할 계획이다. 법에 따르면 경제자유구역에 들어오는 외국인 투자자들은 특별대우를 받는다. 다른 지역에 비해 노동관련 규제가 훨씬 덜하다.

월차.유급생리휴가가 없고, 파견근로자도 더 많이 고용할 수 있다. 당초 정부는 훨씬 방대한 약속을 했다. 1천만달러 이상 투자 기업에 소득세.법인세 등 세금을 3년간 면제하고 2년간 절반을 깎아주는 세제 혜택을 주기로 했다.

외국인의 생활여건 개선도 약속했다. 외국병원이나 약국을 세울 수 있고, 외국인 자녀들을 교육하기 위한 외국인학교도 설립하기로 했다. 이 약속들이 지켜지려면 조세특례제한법과 외국교육기관 설립 특별법 등을 고치거나 새로 만들어야 했다.

그러나 경제자유구역법이 시행에 들어가는 데도 이 같은 법령은 아직 처리되지 못했다. 외국교육기관 설립 법안은 주무부처인 교육부가 올 상반기 내내 NEIS문제로 허덕이느라 국회에 제출조차 못했다.

재정경제부가 6월 임시국회에 조특법 개정안을 내봤지만, 여야 간 정쟁으로 제대로 심의조차 못한 채 7월 국회로 넘어갔다. 각종 개발 부담금을 깎아주기 위한 관련 법률 개정도 진척이 없다.

구상만 하는 동북아 전략=DJ정부는 지난해 연초부터 동북아 구상에 사활을 걸고 매달렸다. 성장활력을 잃고 있는 한국 경제의 재도약을 위한 자구책이었다.

정부는 지난해 11월 반대하는 정치권을 간신히 설득해 법안을 처리했지만, 대통령 선거 이후 진전된 게 거의 없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DJ정부의 동북아 구상을 사실상 원점에서 재검토했고, 동북아 구상의 핵심산업에 정보기술(IT)산업 등을 넣어야 한다며 제동을 걸었다.

결국 경제자유구역 제도는 원안대로 추진하되, 정부는 대통령 직속 위원회를 만들어 장기 구상을 가다듬는 쪽으로 역할 분담이 이뤄졌다. 현재 대통령이 주재하는 회의가 두차례 열렸으나, 아직 세부적인 전략이 나오지 않았다. 추진위 관계자는 "아직도 동북아 구상의 밑그림을 그리지 못해 실천방안이 나오려면 시간이 걸릴 것 같다"고 말했다. 경제자유구역법 폐기를 요구하는 노동계의 반발도 문제다.

지자체 비상=각종 입법이 지연되고, 정부의 구상이 오락가락하자 경제특구에 잔뜩 기대를 걸었던 지자체들은 애가 탄다. 경제특구에 가장 적극적인 인천시의 경우 지난해 법 제정이 늦어지면서 이미 톡톡히 비용을 치렀다. 1백27억달러 투자를 약속한 미국의 게일사가 선결조건으로 내건 경제특구법 제정이 당초 일정보다 지연된 영향으로 아직까지 돈이 들어오지 않고 있다.

인천시 관계자는 "돈이 늦게 들어오는 바람에 관련 인프라 조성도 6개월 정도 미뤄졌다"고 말했다. 정부는 현재 DHL.AMEC 등 20여개 다국적기업과 유치를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지자체들은 조특법.교육특별법 처리가 늦어지는 것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 인천시 관계자는 "경제특구에 진출 의사가 있는 외국인들은 교육.병원 등 생활여건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데 관련 법들이 처리되지 않아 큰 걱정"이라고 말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중앙정부와 정치권만 느긋해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실제 외국기업들이 입주하기까지는 1~2년의 여유가 있는 만큼 그렇게 비관적인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종합물류의 거점지역으로 키우겠다며 경제특구 후보지로 정한 부산과 광양은 이제서야 초보적인 외국인 투자유치에 나서고 있다.

송상훈.이상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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