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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셴바흐 지휘 서울시향 공연리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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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립교향악단의 브루크너 교향곡 9번 마지막 3악장은 장엄하고 아련했다.

암보(전곡을 외위는 것)로 지휘한 독일 거장 크리스토프 에셴바흐는 연주를 마치고도 지휘봉을 내리지 않았다. 2천여 청중의 시선과 침묵이 일제히 그의 손을 향했다. 서서히 팔을 내리자 감동어린 박수가 쏟아졌다. 적지 않은 청중들이 기립했다.

대체지휘자 에셴바흐 카드가 적중했다. 9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에셴바흐의 서울시향 데뷔 무대는 탈 아시아급이었다. 2011년 같은 장소에서 같은 곡을 연주한 사이먼 래틀 지휘 베를린 필 공연에 버금갔다.

크고 넓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의 음향은 섬세한 클래식 음악에 적합하지 못하다. 예술의전당과 세종문화회관에서 번갈아 열린 베를린 필 공연 때는 홀의 아쉬움이 크게 다가왔다. 이번 서울시향의 연주는 홀 사정을 미리 각오하고 몰입해서인지 비교적 잘 들렸다. 2317석의 티켓이 팔려나갈 정도로 관심이 뜨거웠다.

지난달 말 정명훈 전 예술감독이 서울시향을 떠나며 올해 지휘하기로 했던 9차례 정기공연 지휘자 물색에 비상이 걸렸다. 에셴바흐의 지휘가 결정된 것은 3일 밤. 단원들은 5일과 6일 최수열 부지휘자와 준비기간을 가졌다. 7일 오후 도착한 에셴바흐는 공항 도착 후 이례적으로 휴식도 없이 연습실로 직행, 밤 10시까지 리허설했다. 에셴바흐와 서울시향 단원들이 호흡을 맞춘 것은 무대연습 포함 총 3일간이었다.

공연날 무대 위에 악장 스베틀린 루세브는 보이지 않았다. 루세브의 3년 임기는 작년 말에 끝났는데, 이달 초 재계약을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시향 측에서는 시간을 두고 루세브를 설득할 예정이라 한다. 루세브를 대신해 웨인 린이 악장을 맡았다.

팀파니 수석 아드리앙 페뤼숑도 없었다. 그는 지휘자이기도 하다. 1~2월 필립 조르당을 대신해 빈 심포니를 지휘하느라 라디오프랑스필 공연도 쉬고 있다. 이번에는 라디오프랑스필의 장 클로드 젠젬브리가 그를 대신해 팀파니를 연주했다. 트럼펫은 제프리 홀브룩 부수석이 연주했다. 트럼펫 수석 알렉상드르 바티는 2월 ‘영웅의 생애’ 때 볼 수 있다. 앙투안 드레퓌스 라디오프랑스필 수석이 이번 공연의 호른 객원수석을 맡았다. 이처럼 몇몇 연주자가 교체됐지만 항간에 알려진 것처럼 단원들의 대대적인 이탈로 볼 정도는 아니었다.

1악장에서 서먹서먹했던 에셴바흐와 서울시향의 앙상블은 시간이 지날수록 단단하게 조여졌다. 다이내믹 레인지는 대극장 이상으로 넓었다. 목관악기 소리가 잘 전달 안 된 것은 홀의 음향 탓도 있다. 총주에서 금관은 놀랄 만큼 당당했다. 지구의 자전소리 같았던 2악장 스케르초를 지나 3악장의 먹먹한 감성에 이르는 길은 국내 오케스트라의 브루크너 연주사(史)에 기록될 만했다. 뭉근한 바그너튜바의 울림에 청중은 물속에 잠기듯 소리에 잠겼다.

이날 1부에서는 바이올리니스트 최예은이 멘델스존 협주곡을 협연했다. 에셴바흐와 서울시향은 그녀의 절도 있는 연주를 뒷받침하며 관현악적인 묘미도 아울러 선사했다. 최예은은 앙코르로 윤이상 작곡 ‘작은 새’를 연주했다.

에센바흐는 7월 8일 말러 교향곡 1번으로 서울시향과 다시 만난다.

이달 16일과 17일 예정된 서울시향 말러 교향곡 6번 공연의 대체 지휘자는 11일 결정된다. 호른과 트럼펫에 모두 능한 다비드 게리에가 트럼펫 수석으로 참가할 예정이다.

류태형 음악칼럼니스트·객원기자 mozar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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