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교수들 때문에 학과 유지하는 무책임에서 벗어나야”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461호 3 면

지난해 12월 21일 전경련회관 컨퍼런스센터에서 열린 ‘2016년 상반기 채용대비 취업 특강’에 참석한 학생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강의를 듣고 있다. [뉴시스]

빈농의 막내아들로 태어난 김모(39)씨는 2003년 지방 사립대 법대를 졸업했지만 전공과 무관한 컴퓨터 부속품점을 운영하고 있다. 김씨는 졸업 후 취업 경쟁에 나섰으나 번번이 좌절해야 했다. 그는 “회사가 전공을 따지고 온갖 스펙을 요구하니 실업자로 지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결국 7년의 백수생활 끝에 창업을 마음먹고 컴퓨터 수리를 배웠다.


인문계 고교를 다니며 소설가의 꿈을 키우던 이모(35)씨는 가정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전문대 진학을 선택했다.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이씨는 2000년 졸업하고 바로 취업했다. 2년간 등록금 등으로 1500만원의 빚이 생겼지만 취업 후 3년 만에 모두 갚을 수 있었다. 이씨는 “그때 4년제 대학 국문학과를 선택했다면 취업을 못해 좌절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학의 인력 공급과 사회의 노동 수요가 불일치(미스매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청년들은 취업을 못해 고통을 겪고 있는데 기업들은 필요한 사람을 구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인문사회·예체능계는 투자수익 더 하락2012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25~34세 청년층이 전문대학 이상의 고등교육을 받는 비율은 평균 37.7%였다. 한국은 65%로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특히 국내 대학진학률은 1995년 50% 수준이었으나 2008년에는 83.8%까지 수직 상승했다. 대학 등록금 인상 등으로 대학교육에 대한 부담이 증가하면서 지난해 70.9%로 하락했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많은 고학력자를 배출하고 있으나 대학교육의 투자수익은 높지 않다. 대학교육 투자수익률을 분석한 한국고용정보원 고용조사분석센터 최기성 부연구위원의 최근 논문에 따르면 인문사회계열 대졸자의 연평균 투자수익률은 6.28%에 머물고 있다. “대학교육을 돈으로만 따질 수 있느냐”는 일부 반론도 있겠지만 투자수익률은 개인의 진로 선택에 참고 자료가 된다. 또 정부나 대학에서는 구조조정을 위한 기초 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


최기성 부연구위원은 “전공계열별 대학교육의 개인적 투자수익률에 큰 차이가 존재한다는 점을 고려해 대학 구조조정이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수익률이 낮은 계열의 정원을 줄이고, 대신 수익률이 높은 공학계열 등의 정원을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10년, 20년 전만 해도 대학을 가기만 하면 높은 임금을 보장받았지만 앞으로는 어렵다”며 “어느 나라든 대졸자 채용 비율이 10~20%를 넘어가는 경우는 없기 때문에 대졸자 열 명 중 한두 명만 학력에 맞는 일을 찾아 가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오호영·채창균 선임연구원은 2014년 고용패널 학술대회에서 발표한 논문을 통해 “현재 전문대 졸업자 취업률은 79%로 4년제 대학 졸업자 취업률 68.7%를 10.3%포인트나 앞서고 있다”며 “전문대도 전공을 잘 선택해 진학하면 4년제 대학에 비해 더 좋은 취업 성과를 거둘 수 있다”고 밝혔다.


사회 수요와 무관한 대학의 정원고용노동부가 2013년에 실시한 ‘직종별 사업체 노동력 조사’에 따르면 300인 이상 사업체의 23.5%는 필요한 학력·자격을 갖춘 지원자가 부족하기 때문에 사람을 뽑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교육부에 따르면 90년 107곳(교대 제외)이었던 전국 4년제 대학의 숫자는 2014년 189곳으로 늘어났다. 학과 수도 4009개에서 1만1018개로 늘었다. 학교당 평균 학과 수가 37.5곳에서 58.3곳으로 늘어났다. 과거에 비해 대학 진학자 숫자도 늘고 학과는 다양해졌지만 정작 산업현장의 인력 수요는 맞추지 못하고 있다.


특히 2014년 전체 대학 입학자 중에서 인문계열 입학자 비율은 12%, 사회계열 입학자 비율은 26%로 나타났다. 99년 이후 15년째 거의 변함이 없는 상태다. 이 때문에 인문사회계열 투자수익률은 2005년 9.4%(서강대 경제학과 김홍균 교수 분석)였지만 2008년 6.5% 수준(한국교육개발원 이정미 연구위원 분석), 현재는 6.28%로 떨어졌다.


사회 수요와 무관한 대학 계열별 정원은 앞으로도 문제가 될 전망이다. 고용부의 2014~2023년 전문대 이상 졸업자의 전공별 신규 인력 수급 전망을 보면 인문사회계열 졸업자는 6만1000명이 남아돌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공학계열은 27만7000명이 부족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에는 학령 인구가 줄면서 정원 2만 명 정도 되는 대학 30개 정도는 없어져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대학이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구조조정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경기도 K대 경제학과의 한 교수는 “대학 구조조정이 말처럼 쉽지 않다. 교수들 밥그릇 문제가 달려 있어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저항한다”며 “하지만 대책도 없이 과를 유지하고 학생들을 끼고 있으려는 무책임에서 탈피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국회 입법조사처 교육과학팀 정환규(교육학 박사) 입법조사관은 “대학 진학률이 수직 상승하면서 전문적인 고급 교양을 배우고 전문 연구자로 간다는 대학의 본질을 벗어나 버렸다”고 지적했다.


잘나가는 공대도 구조조정 필요취업률이 높고 투자수익률이 높은 공학계열이라고 해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기업들이 요구하는 인력을 배출하지 못하고 있다. 이른바 질적인 인력 미스매치다. 연구에 집중하는 교수가 많다 보니 실무를 배워야 할 공대생이 이론만 배우다 졸업하고, 현장에 나가도 당장 일할 수 없다. 산업체들의 불만도 커지고 있다. 업무와 관련된 전공자를 뽑고도 2~3년간 다시 회사 돈을 들여 훈련시켜야 하는 실정이다.


산업통상자원부도 산업계의 요구에 따라 공대의 교육과정을 바꿔보려 했으나 필수 전공 과목 등을 규정한 교육법 탓에 ‘얇고 넓은 교육’을 지향하는 공대 커리큘럼을 바꾸긴 어려웠다. 결국 산업부는 지난해 1월 공대 28곳과 기업 51개를 참여시킨 실무교육 중심의 엔지니어링개발연구센터(EDRC)를 서울대에 설치했다. EDRC는 플랜트 설계 엔지니어를 키우기 위해 산업부의 지원으로 대학과 기업이 함께 만든 ‘산·관·학’ 교육센터다. 이론 중심이 아니라 실무 교육으로 기업에서 요구하는 현장 역량을 키운다.


EDRC는 대학과 관련 기업이 참여해 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재를 만드는 곳이다. EDRC는 실무에 맞는 26개 과목을 별도 개설해 강의하고, 강의를 듣는 학생들을 참여 기업에 인턴으로 파견해 현장에서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는 성과를 내고 있다. 현장 실무와 이론 교육이 함께 이뤄지자 지난해 1월 1차 교육과 7월 2차 교육에서 1000여 명이던 수강생은 11일 시작되는 3차 교육에서 1500여 명으로 늘었다.


한종훈(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교수) EDRC 소장은 “공대는 시장의 변화가 빠르기 때문에 더 유연하게 움직여야 하지만 우리나라 대학의 공대들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며 “전공 교육과 취업을 한자리에서 이뤄낸 EDRC를 만든 것처럼 공대도 수요자에 맞는 빠른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강찬수·오이석 기자?kang.chansu@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