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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계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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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플루타르크 영웅전에 나오는 이야기다. 로마의 장군 아에밀리우스가 집정관의 딸 파피리아와 살다 이혼했다. 소식을 듣고 친구가 물었다. "부인이 정숙하고, 아름답지 않은가. 자식도 잘 낳지 않았는가." 그런 부인과 헤어지는 걸 이해할 수 없다는 투였다. 아에밀리우스는 신발을 보여 주며 말했다. "이것은 아름답지 않은가. 새것이 아닌가. 그러나 이게 내 발의 어디를 깨무는지, 그대는 아는가." 그러면서 "어떤 사람은 아내의 큰 허물 때문에 이혼하기도 하지만 성질과 습성이 맞지 않아 마음 상하고, 그게 심해져 수습하기 어려운 불화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네"라고 했다.

그렇다. 부부의 일은 남이 잘 알 수가 없다. 다른 사람이 신고 있는 신발이 어떤지 알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내외의 싸움은 칼로 물베기"란 속담이 있지만 그건 연분이 맞는 부부에게 합당한 얘기일 게다. 반면 "배필을 잘못 만나면 당대의 원수가 된다"는 말도 있다. 19세기 염세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가 독신으로 산 건 원수를 만날까 두려워한 때문인지도 모른다. 쇼펜하우어는 "결혼은 자기 권리를 절반으로 깎고, 의무는 배로 걸머지는 일"이라고 했다. 그만큼 결혼생활이 어렵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용감하게 혼인을 한다. 하지만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해로동혈(偕老同穴.함께 늙고, 한 무덤에 묻힌다)하는 부부의 숫자는 자꾸 줄어드는 형국이다. 대신 후회하며 갈라서는 이들이 늘어나는 건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 추세다.

최근 아랍에미리트의 7개 토후국 중 하나인 두바이 정부가 '부부 49계명'을 만들었다. 이혼율 증가로 가정 해체 등의 문제가 심각해지자 캠페인을 시작한 것이다. 영국의 더 타임스(www.timesonline.co.uk)가 소개한 49계명엔 새길 게 많다. '남편의 부정은 아내에게 가장 가혹한 일이다''아내의 여성다움을 충족시켜 줘라''언어폭력은 금물이다'(이상 남편에게), '남자는 수다를 싫어한다. 바가지를 긁지 말라''남편을 도발하지 말라. 남자는 흥분하면 자제력을 잃는다'(이상 부인에게) 등등.

이걸 한국의 부부들도 실천해 보면 좋지 않을까. 그런 노력을 한다면 아에밀리우스가 겪었던 문제도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작고한 국어학자 이희승 선생은 이렇게 말했다. "부부가 되면 개성의 반은 죽이고, 반은 살려라. 반을 죽인다는 건 희생이고, 반을 살린다는 건 사랑이다."

이상일 국제뉴스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