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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형경의 남자를 위하여

지지와 격려를 넘어 성찰과 직면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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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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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경
소설가

사십대 초반 여성이 들려준 이야기. 그녀는 어린 아들을 엄하게 훈육했다. 위험한 장난, 음식 투정, 버릇없는 행동을 보일 때마다 즉각 야단쳤다. 교육은 잘못을 바로잡는 것이라 믿었다. 다섯 살 무렵, 아이의 심리 치료가 필요해진 후에야 자기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아차렸다. “아기는 서투른 게 당연하다는 걸 그제야 알았어요.” 그녀는 눈물을 보였다. 이십대 초반 청년에게서 들은 이야기. 그는 기성세대가 쏟아내는 무책임한 위로의 말, 자기계발서의 지침에 거부감을 느꼈다. 어떤 사람은 좋아하는 일을 하라고 하고, 다른 사람은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을 하라고 하고, 또 다른 사람은 가슴 뛰는 일을 하라고 말했다. “하지만 내가 어떤 일을 좋아하는지, 언제 가슴 뛰는지 알아볼 기회도 없었어요.” 그것을 모른다는 이유로 잘못된 사람 취급하는 어른들에게 다시 좌절감을 느꼈다.

  마음을 치료하는 일에는 크게 두 과정이 있다. 인정과 지지를 보여주면서 내담자의 언어와 행동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하고 공감해 주는 단계다. 아기가 길에서 넘어졌을 때 땅바닥을 “떼지!” 하는 것과 같은 일이다. 넘어진 아기를 달래고 보살피는 일이 먼저이지, 아기에게 왜 넘어졌느냐고 추궁하지 않는다. 오히려 아기의 손을 잡고 걸음에 익숙해지도록 돕는 역할이 필요하다. 인정과 지지 단계를 거치는 동안 내담자의 내면에서 불안감이 걷히면서 서서히 자아가 강화되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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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담자의 마음이 충분히 강해졌다 싶으면 성찰과 직면의 단계로 넘어간다. 길에서 넘어졌을 때 무릎의 흙을 털며 넘어진 이유를 생각해보는 것과 같은 일이다. 조심성이 없었는지, 신체적으로 무리했는지, 방해물이 있었는지 등등. 땅바닥을 “떼지!” 하는 게 아니라 자신을 성찰하면서 내면에서 잘못된 점을 알아차린다. 삶의 모든 과오가 전적으로 자신에게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낱낱이 인식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변화가 따라온다. 하지만 직면은 나르시시즘의 살갗이 벗겨지듯 아프기 때문에 많은 이가 ‘드롭’되는 지점이라고 한다. 특히 남성 내담자가 넘어서기 어려운 고비다.

 이십대에 품었던 의문. “빈말이라도 따뜻하게 건네는 게 인생인가, 아프겠지만 참말을 해주는 게 사랑인가.” 훗날 그것이 지지와 직면의 차이 같은 것임을 이해하게 되었다. 앞서 언급한 아기나 청년처럼 우리 사회도 공감과 격려가 필요한 단계에 오래 머무르는 듯 보인다. 언젠가 엄혹한 직면이 필요할 때 퇴보하지 않기를 소망하는 새해 아침이다.

김형경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