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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순 데자뷔 … “지도자와 식사 땐 직접 운전, 음주 가능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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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순

김양건과 김용순. 두 사람은 각각 김정일 국방위원장(2011년 사망)과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의 최측근이다. 대남담당 업무를 총괄한 노동당 비서도 앞뒤로 지냈다. 김양건은 김용순의 자리를 물려받았다. 김용순은 2003년 6월 교통사고를 당한 뒤 장기 입원치료를 받다가 그해 10월 사망했다. 공교롭게도 12년 간격으로 북한의 대남담당 비서가 연이어 교통사고로 숨을 거뒀다.

김양건 교통사고냐 피살이냐
김용순 대남업무 뒤이어 같은 운명
이제강 등 실세들도 교통사고 사망

국정원 “김양건, 김정은 행사 위해
신의주서 복귀 중 화물차 추돌 소문”
일각 “권력 암투 차원 살해일 수도”

 일단 국가정보원은 단순 교통사고에 무게를 뒀다. 국정원은 30일 “김양건이 김정은 위원장과 반목했다는 징후는 전혀 없었다”며 “현재로선 교통사고 이외의 가능성을 보고 있지 않다”고 국회 국방위원들에게 전화로 보고했다. 북한은 교통사고 경위는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국정원 관계자는 “신의주에 있는 측정기구공장 시찰을 마친 김양건이 김정은 최고사령관 추대일(2011년 12월 30일) 기념행사에 참석하러 복귀하던 중 추돌사고가 났다”며 “김양건이 탄 차가 신의주로 향하던 화물차량과 추돌해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는 소문이 있어 확인 중”이라고 말했다.

 북한에선 두 비서 외에도 2010년 이제강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을 비롯해 이종목 외교부 제1부부장, 김치구·이화영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등 실세들의 교통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음주운전을 원인으로 꼽는다. 익명을 원한 탈북자는 “북한에선 최고지도자가 주관하거나 고위층끼리 식사를 할 때 운전기사를 대동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며 “한국에 알려진 것보다 음주운전 사고가 많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2003년 사망한 김용순 역시 음주운전을 하다 사망했다고 한다. 경남대 김근식(정치외교) 교수는 “김용순 사망 후 김정일은 음주운전 금지령을 내리기도 했다”며 “2005년 장성택이 실각했을 때 조직지도부 부부장 자녀의 결혼식에서 당 간부 운전기사들이 음주 사고를 냈던 게 단초가 됐다”고 말했다. 북한 곳곳에 교통단속원들이 있지만 ‘216’(김정일 생일인 2월 16일 상징)으로 시작하는 당 고위 간부들의 차량은 단속 대상에서 제외된다. 그렇다 보니 음주운전은 물론이고 과속과 신호위반도 일쑤라고 한다. 특히 평양 시내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파인 도로가 많고 가로등도 제대로 없어 사고가 발생하기 쉽다는 견해도 있다.

 안병민 교통연구원 동북아연구센터장은 “고위 간부들끼리의 모임은 대부분 교외의 특각(별장)에서 진행되고 늦은 시간까지 업무를 하고 귀가하더라도 열악한 도로 환경에서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양건의 경우 사고가 난 29일 새벽 음주운전을 했거나 다음달 1일 김정은의 신년사와 관련한 업무를 한 뒤 차 없고 불 꺼진 평양의 거리를 달리다 사고가 났을 수 있다는 뜻이다.

 국정원의 단순 교통사고라는 분석에도 불구하고 김양건의 사망은 여전히 미스터리다. 때마침 최용해 전 노동당 비서가 복권됐고 내년 5월 7차 당대회를 앞두고 권력 정리작업이 진행되고 있어 김정은의 최측근으로 부상한 그를 곱지 않게 보는 시선들이 있다는 얘기도 있다. 실제 대북 소식통들 사이에선 “김양건(73)이 조만간 87세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자리로 옮길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한 대북 정보 소식통은 “김양건은 자기를 드러내지 않는 스타일이어서 권력의 부침이 덜했지만 오히려 파벌도 없고 통일전선부의 위상도 높지 않아 제거하기 좋은 대상”이라며 “권력 내부의 암투 차원에서 교통사고를 가장한 살해일 가능성도 있다”고 주장했다. 통상 비서급이면 4일 이상 장례를 치르는데 3일장에 부고를 발표한 바로 다음날 발인하는 것도 이상하다고 했다. 평양에서도 이번 사고가 의도적인 암살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고 한다.

정용수 기자 nky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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