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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대생 중소기업 안 가니, 그곳 인재를 서울공대생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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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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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사과정이지만 졸업논문은 없다. 대신 교수와 함께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기업이 현장에서 겪는 문제를 연구해 대안을 내놓는 식이다. 학생에겐 살아 있는 공부가 되고 기업엔 직접적인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건우 학장 ‘공학 현장리더론’
회사경력 3년 이상 첫 신입생 모집
논문 대신 기업 과제 해결에 무게
학생 1명당 산학 연계 교수 3명
인문학 소양 갖춘 ‘선도자’ 양성

 내년 3월 개강하는 서울대 공학전문대학원에 대해 이건우(60) 서울대 공과대학장은 28일 이렇게 설명했다. 다음달 15일까지 첫 신입생을 모집하는 서울대 공학전문대학원은 산업체 경력 3년 이상인 재직자를 대상으로 하는 2년 과정의 대학원이다.

 이 학장은 “산업 현장에서 ‘맞춤형 융합 인재’ 수요가 늘고 있지만 대다수 대학원은 여전히 논문 연구 중심으로 가르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장의 복합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공학 현장리더’ 양성엔 적합하지 않다는 얘기다. 이 학장은 “몇몇 사립대 야간 과정을 제외하면 이 같은 본격적인 공학전문대학원은 국내 최초”라고 덧붙였다.

 - 전문대학원을 세운 이유는.

 “삼성·현대 같은 대기업 외엔 산업 현장에서 활동하는 서울대 공대 출신은 거의 없다. 서울대가 중견·중소기업으로부터 비판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졸업생에게 중소기업으로 가라고 권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차라리 중견기업의 유능한 직원에게 고급 공학을 배울 기회를 제공하고 이들을 ‘서울대 공대 출신’으로 키우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 구체적인 교육 과정은.

 “입학 때 근무하는 기업이 당면한 문제를 프로젝트 과제로 정한다. 1학년은 프로젝트 해결에 도움이 될 교과목 10개를 이수하고 2학년 때 본격적으로 프로젝트에 도전한다. 교수 세 명이 학생을 돕는데 한 명은 서울대 공대 교수고 다른 두 명은 재직 중인 기업의 상사와 기업 임원 출신의 산학협력 교수다.”

 - 국제화 감각과 경영학 지식도 필요할 것 같다.

 “학생들을 1년에 두 번 여름·겨울에 중국에 보내려 한다. 쑤저우(蘇州)엔 영국 리버풀대와 중국 시안자오퉁대가 공동 설립한 대학이 있는데 이곳에 위탁교육하려 한다. 100% 영어수업을 통해 경영학을 배울 수 있다. 체류 기간 중국에 대한 이해도 넓힐 수 있다.”

 2013년 취임 이후 이 학장은 현장성 높은 공학교육과 산학협력 강화 등을 추구해왔다. 지난해 초엔 중견·중소기업에 대한 기술지원을 전담하는 ‘SNU 공학컨설팅센터’도 세웠다. 이 학장의 요청으로 지난 7월 발간된 서울대 공대 백서에는 “서울대 공대는 야구로 비유하면 배트를 짧게 잡고 번트를 친 뒤 1루 진출(단기 성과)에 만족하는 타자였다. 하지만 학문의 세계에서는 만루홈런(탁월한 연구 성과)만 기억된다”는 자기 반성이 담겼다. 이 학장은 “공대 본연의 임무는 국가 산업 발전에 필요한 기술을 개발하고 우수 인력을 양성하는 것인데 우리는 한동안 이에 소홀했다”고 말했다.

 - 학교를 기업에 개방하는 계획도 세웠다.

 “구상 단계인데도 많은 기업이 문의해온다. 대학과 기업이 같은 공간에서 부대끼며 시너지를 내자는 아이디어인데, 아쉬운 게 규제 탓에 이미 지은 학교 건물엔 기업이 들어오기 힘들다. 정부에 규제 완화를 요청하려 한다.”

 - 공대생이 인문학을 배울 기회를 늘리는 내용도 들어 있다.

 “한국이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에 머물던 시절엔 딴생각 안 하고 한 방향만 보고 가면 됐다. 하지만 ‘선도자(first mover)’로 나서려면 남이 안 가는 길을 가야 하고 다양한 경험도 필요하다. 선도자가 되려는 공대생에겐 인문·예술적 소양이 필수다.”

 - 이준식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도 같은 학과(기계공학과) 교수다.

 “공대의 연구·교육 풍토가 달라져야 한다는 데 공감대를 이뤘다. 아이디어가 많은 분이니 대학 개혁이 한층 힘을 받을 것으로 기대한다.”

천인성 기자 guch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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