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모 줄이고 기간 미뤄지고 해 넘기는 공약, 또 공약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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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속초를 잇는 고속화철도사업은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강원지역 제1 공약이다. 당시 박 대통령은 “접근성을 높이고 만성적인 교통난을 해소하기 위해 동서고속화철도를 조기에 착공하겠다”고 약속했다. 3년이 지난 지금 동서고속철도는 착공조차 못하고 있다. 지난해 5월 시작된 예비타당성조사(예타)는 20개월째 제자리다. 이 사업은 1987년 12월 대선 때 당시 민정당 노태우 대선 후보의 공약이었다. 이후 30여 년가량 6명의 대통령이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착공조차 못하면서 대표적인 ‘공(空)약’이 됐다.

박 대통령 약속 ‘서울~속초 고속철’
20개월째 예비타당성 조사 중
장항선 복선전철 첫 삽도 못 떠
대선·총선 후 제자리 사업 수두룩

 대통령·정치권·정부가 지역 주민에게 약속했던 상당수 국책사업이 첫 삽을 뜨지 못하고 또 해를 넘긴다. 주민들의 불만은 높다. 지방자치단체들은 “선거 때는 돈을 찍어서라도 해줄 것처럼 공약을 쏟아낸다”며 “지역 주민들이 더 이상 속을 수 없다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충남 서북부지역 최대 현안인 대산-당진간 고속도로 건설은 지난해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때 각 당의 공약이었다. 당시 후보들은 “당선시켜주면 고속도로를 만들어주겠다”며 표를 호소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약속을 반드시 이행하도록 하겠다. 착공이 더 빨라질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8개월째 예타만 진행 중이다. 이 사업은 서해안고속도로 남당진 분기점에서 서산시 대산읍 화곡리까지 24.3㎞(왕복 4차선)를 연결하는 것으로 6793억원의 예산이 필요하다.

 장항선복선전철 사업은 예타가 지연되면서 올해 실시 설계비로 배정됐던 50억원의 사업비가 사라질 처지에 놓였다. 장항선 복선전철은 충남 아산 신창에서 전북 익산 대야까지 121.6㎞ 구간을 전철·복선화하는 공사다. 사업 지연에 따라 기존 호남·전라선, 2020년 개통 예정인 서해선과의 연계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울산에서는 국립산재모병원·국립산업기술박물관 사업 등 국책사업이 지지부진하다.

 경기도 평택과 강원도 삼척을 잇는 동서고속도로(총 길이 250.4㎞)는 충북 제천까지만 연결돼 있다. 남은 제천~삼척(123㎞) 구간은 기본계획조차 수립되지 않았다. 전북 정읍~남원간 동부내륙국도 54㎞ 구간도 연내 착공이 불가능하다. 8000억원의 예산이 투입되는 이 사업은 내년부터 2022년 준공 예정이지만 2년째 예비타당성 조사만 진행 중이다. 동부내륙국도 건설은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사업이다. 정읍시 관계자는 “미개통 구간이 이어져야 새만금과 전북 동부지역을 연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공약사업이 추진되지 않는 것은 무엇보다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이유에서다. 동서고속화 철도사업이 대표적이다. 이 사업은 2001년, 2010년, 2012년 세 차례 예비타당성 조사에서 경제성이 낮다는 평가를 받았다. 속초시민들은 지난 7월, 9월 정부세종청사 앞에서 공사 착공을 촉구하는 시위를 했다. 충북·강원지역 12개 시·군으로 구성된 동서고속도로 추진협의회는 지난 6월 주민 15만432명의 조기착공 서명부를 국토교통부에 전달했다. 청와대에도 전달할 계획이다. 동서고속도로 추진협의회장인 김연식 태백시장은 “경제성만 따지지 말고 낙후성이나 균형개발 차원에서 정부의 배려가 필요하다”고 했다. 노승만 강원발전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지역 공약 사업은 주민생활과 지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약속한 것은 지켜야 하고, 지키지 못할 것이라면 분명한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진호·박진호·유명한 기자 shin.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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