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신성식의 요람에서 무덤까지

메르스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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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식 기자 중앙일보 복지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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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식
논설위원 겸 복지전문기자

2010년 작고한 최선정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2000년 8월 ‘의약분업 파동 소방수’로 전격 투입됐다. 의약분업(2000년 7월 시행)에 대한 의사들의 반발이 걷잡을 수 없게 번지면서다. 최 장관은 그해 11월 의사 파업을 종식시켰으나, 이듬해 3월 건강보험 재정 파탄의 책임을 지고 자진 사퇴했다. 그는 이임식에서 “책임을 지고 사임하지만 더 이상 (의료체계 모순에) 땜질 처방을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임식장 여기저기서 흐느끼는 소리가 났고, 일부는 펑펑 울었다. 최 장관은 2001년 5월 감사원의 ‘의약분업 특감’ 때 “열심히 일한 사람을 보호해야 한다”며 “(담당자 문책은) 있을 수 없다”며 화살받이를 자처했다.

 올해 5월 발생한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은 의약분업 못지않게 나라와 국민에게 큰 상처를 안겼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감사원이 100여 명의 인력을 투입해 다섯 달째 감사를 벌이고 있다. 연내에 끝날 걸로 알려졌으나 ‘혐의 인정’ 여부를 두고 의견이 엇갈려 내년 1월로 넘어갔다. 대규모 징계가 불가피해 보인다. 책임질 일을 했으면 응분의 대가를 치르는 게 마땅하다. 어쨌거나 관련 공무원들의 연말은 ‘우울 모드’일 수밖에 없다. 어떤 과장은 공직생활을 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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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와중에 메르스 방역 실패로 경질된 문형표 전 복지부 장관이 곧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이 된다는 소식이 우울함을 더한다. 장관에서 물러나자마자 산하기관의 장에 앉는 게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전례도 흔치 않다. 메르스 고통은 진행형이다. 한 달여 전 세상을 떠난 마지막 메르스 환자(80번·35)의 부인(36)은 카톡창에 ‘그곳에선 카톡이 안 되는 거지…?’라는 망부가(亡夫歌)를 올렸다. 세 살배기 아들과 찍은 가족사진과 함께. 두 명의 환자(74·165번)도 후유증 때문에 아직 병상 신세를 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사장이 된다면? 연금공단 직원들이 몸을 던져 일을 하려 들까. 문 전 장관이 평소 소신대로 국민연금기금의 독립성을 주장하며 연금공단에서 기금운용본부를 떼어내 공사로 만들려고 할 경우 진실성을 의심받지 않을까. 박근혜 정부 인사에 감동이 없다는 말, 이번에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다. 조선 선조 때 서애 유성룡이 추앙받는 이유는 자신이 천거한 이순신 장군이 역모 모함을 받았을 때 끝까지 옹호하며 책임진 모습 때문이다. 메르스로 경질된 지 넉 달 만에 다시 공직에 나서는 것, 이는 책임과는 한참 거리가 멀다.

신성식 논설위원 겸 복지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