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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형경의 남자를 위하여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심리적 의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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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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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경
소설가

지난 2년간 이 지면에 연재한 글이 묶여 책으로 나왔고 독자와 만나는 자리가 마련됐다. 참석자 중에는 의외로 남성이 많았는데 그중 한 남성이 건넨 질문이 긴 여운을 남겼다. 그는 고통스러운 경험 앞에서 자기 파괴적 행동을 한 이후 처음으로 마음을 성찰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알고 보니 내가 분노와 불안이 많고, 시기심과 질투심이 가득한 사람이었는데 그것을 알지도 다스릴 줄도 모르고 있었더라”고 말했다. 나는 여운이 긴 감동을 받았다. 이전에는 남자가 자기 감정에 대해, 그것도 괜찮지 않다고 여길 법한 감정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들은 일이 없다. 마이크에 대고 그 말을 하는 남자가 있을 거라고도 상상하지 못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는 유가의 문장을 정신분석적 관점에서 소박하게 풀이해 보면 수신(修身)이란 자기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고 다스릴 줄 아는 상태를 말할 것이다. 자기 마음을 낱낱이 성찰해 본 사람은 절로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다. 그런 사람은 자기의 불편한 감정을 만만한 가족에게 쏟아내는 투사행위를 하지 않으며, 자기 불안을 억압하기 위해 가족의 행동을 통제하지 않는다. 거기서부터 진정한 제가(齊家)가 시작될 것이다. 보통 사람에게 치국(治國)이란 공동체의 평화와 안전을 도모하는 일이다. 공동체 내에서의 자기 역할을 이행하며 건강한 감시의 기능을 맡는 것이 포함된다. 그런 이들은 불안감 때문에 역할 수행에서 회피나 지연행위를 하지 않으며, 나르시시즘이나 시기심 때문에 공동체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이들을 향해 대안 없는 비난행위도 하지 않는다. 평천하(平天下)는 이후에 도래하는 상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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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서 언급한 남성의 의문은 “왜 변화가 빨리 느껴지지 않는가?”였다. 우리 사회가 방치해 뒀던 ‘마음’을 적극적으로 돌보기 시작한 지 15년쯤 됐다. 무슨 일이든 역동적으로 추진해 빨리 성취해 내려는 방식이 마음 돌보기에도 적용되는 모양이다. 내게는 질문한 남성이 자기 마음을 성찰적으로 말하던 장면이야말로 변화의 단면으로 보인다. 개인이 자기 성찰 작업을 통해 성격의 변화를 이루는 데는 5~6년쯤 소요된다.

 또 한 해를 보내며, 그동안 지면을 내어 준 매체와 글을 읽어 준 독자께 감사드린다. “이 여자는 남자를 비난하기 위해 궤변을 늘어놓는구먼”이라고 여기는 분께도, “자기가 뭘 안다고 그런 글을 쓰는 거지?”라고 생각하는 분께도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의미 있는 경계의 말씀이 되곤 했다.

김형경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