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대구 키다리 아저씨' 올해도 1억2000만원 전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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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다리 아저씨 메모

23일 오후 4시쯤 대구시 동구 신천동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무실에 전화가 걸려왔다. 그는 대뜸 “잠깐 근처 OO식당으로 와서 돈 받아 가이소”라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전화를 받은 김미정(38) 모금사업팀장은 곧바로 ‘키다리 아저씨’를 떠올렸다. 지난해 연말 익명으로 거액을 기부한 60대 초반 남성의 목소리였기 때문이다.

식당에 들어서자 그는 검은색 셔츠 차림으로 식사를 하고 있었다. 김 팀장을 보자 목례를 한 뒤 벗어 두었던 외투 안주머니에서 흰색 편지봉투를 꺼내 내밀었다. 봉투 안에는 1억2200만원이 찍힌 수표와 ‘꼭 필요한 곳에 도움이 되도록 사용해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적힌 쪽지가 들어있었다.

그는 감사의 인사를 하는 김 팀장에게 “내가 부유해서 하는 것은 아니다. 정부의 지원이 미치지 못하는 소외된 이웃에게 써달라”고 당부했다.

‘대구 키다리 아저씨’의 기부는 4년째 이어지고 있다. 2012년 1월 30일 공동모금회 사무실을 찾아 1억원짜리 수표를 건넸고 그해 12월 26일에도 1억2300만원을 전달했다. 당시 직원이 “고액기부자 모임인 아너소사이어티에 가입하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했으나 “남몰래 돕고 싶다”며 거절했다. 이후 매년 연말이면 1억2000여만원씩 기부했다. 이번까지 합치면 전체 금액이 5억9600만원에 이른다.

그는 직원들이 인적 사항을 물을 때마다 입을 굳게 다물었다. 감사의 선물을 보내겠다고 했지만 손사래를 쳤다. 그러곤 “이 돈은 내가 저축한 것이다. 어려운 사람에게 도움이 되도록 해달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박용훈(45)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무처장은 “기부자의 선행이 많은 이들의 가슴을 따뜻하게 하고 있다”며 “성금은 저소득층의 생계와 의료 지원금으로 사용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대구=홍권삼 기자 hongg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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