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찾아서 데려온 난민, 미얀마 4가족 22명 첫 입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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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투(왼쪽) 가족 8명이 메라 캠프에서 법무부 난민 심사팀 직원 등과 찍은 사진. [사진 법무부]

미얀마 난민 쿠투(43)는 1993년 미얀마 정부군을 피해 태국 접경지대에 있는 메라 캠프에 터를 잡았다. 쿠데타로 집권한 미얀마 군부의 소수민족 탄압정책을 피해서였다. 미얀마 정부군은 카렌족 마을에 침입해 주민들의 손과 발을 자르는 등 갖은 만행을 저질렀다. 특히 군부는 젊은 남성들을 데려가 강제노역을 시켰다. 쿠투도 친구들이 힘없이 끌려가는 것을 본 뒤 조국을 등졌다. 2003년 두고 온 부모가 그리워 미얀마에 돌아갔으나 다시 국경을 넘었다.

군부 탄압 피해 20년 캠프생활
강남스타일 춤 즐기던 쿠투도
한국서 목공 되고 싶은 텐소도
유엔난민기구 추천한 후보 중
법무부 현지 심사, 해당자 선정

 군부의 탄압을 피해 카렌족 수십만 명은 태국에 있는 9개 난민캠프로 탈출했다. 현재 메라 캠프에 있는 4만여 명의 거주민 중 90% 이상이 카렌족이다. 쿠투는 처음 정착할 땐 아내(43)와 단둘이 이곳에 왔지만 지금은 여섯 살 된 아들까지 가족이 8명으로 늘었다.

 2006년 벌목작업 중에 사고로 오른쪽 발목을 잃고도 큰딸(23)을 대학까지 보낼 정도로 그는 성실히 살았다. 난민캠프 생활은 고달프다. 화장실·전기는 물론 식수까지 모자란 열악한 환경 속에서 20여 년을 지냈다. 그러나 절망에 빠져 있지만은 않았다. 쿠투의 가족은 한국 드라마에 관심이 많고 ‘강남스타일’ 춤을 추는 것을 즐긴다.

 텐소(34)는 메라 캠프에서 2004년부터 농장 근로자로 일하며 어렵게 생활하고 있다. 여섯 살 때 사고로 오른쪽 눈을 실명한 상태지만 건축과 농사일에 재능을 보였다. 한국에서 목공이나 건축 관련 일을 배워 성공하고 싶은 게 그의 꿈이다.

 쿠투와 텐소는 23일 꿈에 그리던 한국생활을 시작한다. 법무부는 쿠투를 비롯해 미얀마 난민 22명이 23일 오전 인천공항으로 입국한다고 밝혔다.

 총 네 가족(성인 11명, 아동 11명)으로 이 중엔 한 살짜리 아들을 둔 신혼부부도 포함돼 있다. 이들은 태국의 미얀마 접경 지역에 있는 메라·움피엠 난민캠프에서 생활했다.

 정부가 2013년 7월 ‘재정착 희망난민제도’를 도입한 이후 난민들이 입국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부는 지금까지 스스로 국내에 들어온 난민에게만 난민 지위를 부여하는 소극적인 태도에 그쳤다. 하지만 올해부터 시범 시행하게 된 재정착 희망난민제도는 훨씬 적극적인 난민 수용제도다. 정부가 유엔난민기구(UNHCR)의 추천을 받은 제3국에 체류 중인 난민을 ‘찾아서 데려오는’ 것이다.

 이로써 한국은 미국·영국·호주 등에 이어 세계에서 29번째로 재정착 난민제도를 시행하는 나라가 됐다. 아시아에서는 일본에 이어 두 번째다.

 법무부는 지난 8월부터 서류심사·신원조회 등 엄격한 심사 절차를 거쳤다. 첫 재정착 국가로 미얀마를 선택한 데 대해 법무부는 “같은 아시아인이라는 문화적 배경이 우리와 비교적 비슷해 상대적으로 국내 정착이 유리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법무부는 2017년까지 최대 60명의 미얀마 난민을 더 데려올 계획이다. 김영준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은 “재정착 난민이 한국에서 ‘코리안드림’을 실현할 수 있도록 따뜻한 관심과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장혁진 기자 analo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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