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사회] "미국 영국 유명대학 박사" 스펙 내세워 국가보조금 21억원 가로 챈 벤처기업인들 적발

중앙일보

입력

"첨단 기술을 개발하겠다"며 국가보조금을 챙긴 벤처기업 임원들이 검찰에 적발됐다. 이들은 미국과 영국의 '해외 유명대학의 박사학위 소지자'라는 스펙 등을 내세워 수 억원의 국가보조금을 받았지만 실제 개발로는 이어지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인천지검 외사부(최용훈 외사부장)는 20일 사기 및 보조금 관리법 위반 등 혐의로 인천시와 경기도 수원·부천지역 업체 3곳의 임직원 8명을 적발해 이 중에서 A씨(57) 등 4명을 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또 B씨(60) 등 나머지 4명도 같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A씨 등은 2011년 10월부터 올해 9월까지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등 7개 기관에서 국가보조금 21억4000만원 가량을 지원받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 중 A씨 등 5명은 미국과 영국의 유명 공과대학의 공학박사 학위 소유자였다. 나머지 2명도 국내 유명 대학의 공학 석사 출신이었다.

A씨 등은 이런 스펙을 내세워 벤처기업을 세운 뒤 한국기술벤처재단,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등에 연구·개발(R&D) 분야의 첨단기술을 개발하는 국책 과제를 신청한 뒤 수 억원의 보조금을 받았다. 비슷한 국책 연구 과제의 경우 과제명이나 내용의 일부만 바꿔 여러 기관에서 보조금을 타내기도 했다고 검찰은 전했다.

하지만 보조금은 정작 연구에 쓰이지 않았다. 이들은 '페이퍼 컴퍼니'를 만들어 거래를 한 것처럼 용역 계약 서류를 꾸며 차명계좌로 연구지원비를 돌려받았다. 또 소액거래를 고가의 거래로 속인 세금계산서를 만들어 지원금을 빼돌리기도 했다.

친인척 등을 허위 연구인력으로 채용한 것처럼 속이기도 했다. 연구와 상관없는 회사 부채를 과제에 필요한 장비를 구입하는 것처럼 속여 보조금으로 해결하기도 했다. 일부는 보조금 운용기관의 갑작스러운 현장 실사에 대비해 회사에 저가 장비를 마련하거나 소액의 세금계산서를 여러 장 작성하는 등의 치밀함도 보였다.

A씨 회사는 사들인 특허를 이용해 여러 건의 추가 특허를 등록한 뒤 차세대 초전도 기술을 자체 개발한 것처럼 홍보해 개인투자자들을 모집하기도 했다. 이렇게 하면 '투자연계 국책과제'까지 수주해 추가 연구지원금을 지급받을 수 있다.

검찰 관계자는 "이들은 한번 국책연구과제 수행 업체로 선정되면 신뢰도를 인정받아 다른 국책과제에도 쉽게 선정되는 점을 노려 범행을 저질렀다"며 "A씨는 거래업체 등에서 '보조금 멘토'로 활동하면서 허위보조금 신청을 부추기기도 했다"고 말했다. 검찰은 국가 보조금 집행 시스템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관계 기관과 협의할 예정이다.

인천=최모란 기자 mora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