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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의 양다리 걸치기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터키는 수년 동안 남부 국경에서 중요한 지역의 경계를 느슨히 방치했다. 미국은 수니파 급진 무장단체 이슬람 국가(IS)와의 전쟁에서 동맹국인 터키가 그처럼 비협조적으로 나가는데 갈수록 크게 실망했다. 막후에서 미국 관리들은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에게 외국인 지하디(성전주의자)가 터키 이스탄불에 도착한 다음 남부 국경을 넘어 시리아로 건너가 IS에 합류하는 루트를 막아달라고 촉구했다. 아울러 탄약과 폭탄을 실은 트럭이 국경을 넘어가는 것을 차단하고 IS의 석유 밀수출[IS는 그 사업으로 하루 약 150만 달러(약 18억원)를 벌어들인다]에 연루된 터키 중개상들을 단속하라고 압박했다. 전부 헛수고였다.

나토의 중요한 중동 전초 기지이면서 뒤로는 미국과 싸우는 IS를 지원한다는 의심 받아

그러나 지난 11월 13일 IS의 파리 테러(용의자 중 1명은 시리아에서 터키를 경유해 유럽으로 들어갔다) 후 미국은 그런 우려를 노골적으로 표명하며 에르도안 대통령의 표리부동함을 은근히 지적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지난 12월 1일 프랑스 파리에서 “터키와 시리아 사이의 국경 차단 필요성과 관련해 에르도안 대통령과 여러 차례 대화를 가졌다”며 “시리아에서 싸우던 외국인 지하디가 자기 나라로 돌아가면 파리 테러 같은 공격을 감행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미국과 터키의 관계는 오래 전부터 삐걱거렸다. 그 계기는 2003년 이라크전 개시 당시 터키가 미군의 터키 기지 사용을 거부했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시리아 내전과 IS의 부상으로 양국 관계는 더 나빠졌다. 터키 관리들은 IS 지원을 거듭 부인했다. 그러나 약 6개월 전 미국은 시리아의 IS 급습에서 터키와 IS 사이의 긴밀한 관계를 시사하는 문건을 입수했다고 알려졌다.

아무튼 분석가들에 따르면 터키는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과 시리아의 쿠르드족 민병대를 주적으로 삼으며 그들을 격파하려는 전쟁에서 시리아 반군단체들과 IS를 ‘유용한 적’으로 활용한다. 그런데도 터키가 중동과 가까운 지리적 위치 덕분에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로선 매우 중요한 동맹국이라는 사실 때문에 미국 정부는 에르도안 대통령을 심하게 밀어붙일 수 없었다. 미국 외교협회(CFR)의 중동문제 전문가 스티븐 쿡 연구원은 “터키가 시리아와 국경 800㎞를 공유하며 시리아 내전에서 가장 가까운 나토 전초기지라는 사실이 미국의 압력을 피할 수 있는 유용한 수단”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제 오바마 대통령은 터키를 압박할 수 있는 지렛대를 확보했다. 지난 11월 말 터키-시리아 국경 부근에서 터키의 지원을 받는 반군을 폭격하던 러시아 전폭기가 터키 공군의 공격으로 격추됐다(터키는 러시아 전폭기가 자국 영공을 침범했고 여러 차례의 경고에도 불응해 공격했다고 발표했다). 격분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그 보복으로 터키산 농산물 수입을 금지하고, 터키를 통과하는 파이프라인을 통해 유럽으로 러시아 천연가스를 수출하려는 100억 달러 규모의 파이프라인 ‘터키 스트림’ 건설 프로젝트에 관한 협상을 중단했으며, 터키 정부의 공식 사과를 요구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러시아 전폭기 격추가 정당했다며 나토 긴급회의 소집을 요청했다. 그 회의에서 그는 러시아와의 대치가 격화될 경우 조약에 따라 나토가 터키를 보호할 의무가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공식적으로 미국의 터키 지지를 재확인했지만 미국의 한 관리는 그 사건으로 터키 정부가 러시아의 추가적 보복을 우려한다고 뉴스위크에 말했다. “그래서 터키는 미국이 나서서 화해를 중재해주기 바란다.”

그러나 쉬운 일이 아니다. 러시아와 터키의 군사적 충돌이 발생할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터프 가이’로 알려진 푸틴 대통령은 터키와 화해할 기분이 아닌 듯하다. 그는 지난 12월 3일 크렘린의 국정연설에서 “그들(터키)은 앞으로 여러 번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일부 분석가는 푸틴 대통령이 시리아에서 에르도안 대통령에게 보복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터키는 시리아에서 아사드 정권을 무너뜨리려고 싸우는 투르크멘족 반군단체를 지원한다. 아사드 정권이 무너지면 터키는 시리아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푸틴 대통령이 아사드 정권을 군사적으로 지지하는 한 아사드 대통령이 권좌에서 완전히 밀려나지는 않을 것이라고 분석가들은 내다본다. 따라서 에르도안 대통령이 시리아의 미래에 개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협상 테이블에서 한자리를 확보하는 것이다.

워싱턴 근동정책연구소의 터키문제 전문가 소너 카갑타이는 트루크멘족 반군이 시리아 서북부의 영토를 계속 장악해야만 터키가 협상 테이블에서 한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러시아는 전폭기가 격추된 이래 투르크멘족 반군을 표적으로 공습을 강화했다. 카갑타이 연구원은 국가안보 이슈를 다루는 한 웹사이트에 ‘푸틴 대통령의 목표는 투르크멘족 반군을 시리아에서 쫓아내는 것’이라며 ‘그건 터키의 시리아 정책이 완전히 실패하는 시나리오’라고 지적했다. 그는 러시아의 공습이 강화될수록 또 다른 시리아 난민 물결이 터키로 밀려들 가능성이 커진다고 덧붙였다.

분석가들에 따르면 러시아와 터키의 불화가 지속되면 푸틴 대통령은 시리아의 쿠르드족 민병대에 무기를 제공할 수도 있다. 그럴 경우 오바마 대통령이 불만을 표한 터키 남부 국경을 따라 펼쳐진 100㎞의 땅을 쿠르드족이 점령할 가능성이 있다. 그에 따라 시리아의 쿠르드족은 터키와의 국경 전체를 장악할 수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으로선 악몽의 시나리오다. 그는 터키의 쿠르드족이 시리아의 동포와 합류해 독립국을 세우지 못하게 하려고 안간힘이다.

에르도안 대통령에게도 선택의 여지가 있다. 유럽과 아시아를 분리하며 러시아 흑해함대에 유일한 지중해 접근권을 제공하는 좁은 보스포루스 해협을 차단할 수 있다. 또 터키의 체첸인과 북캅카스인 무슬림 전사들을 동원해 시리아로 건너가 러시아와 싸우도록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만약 러시아-터키의 불화가 불확실한 방향으로 지속된다면 오바마 대통령은 터키에 시리아와의 국경을 더 철저히 단속하도록 압력을 가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 미국 관리들은 터키가 시리아와 맞댄 국경 지역에 병력 3만 명을 배치해 지하디와 석유의 흐름을 완전히 차단하기 원한다고 말했다.

터키도 귀를 기울이는 듯하다. 지난 12월 3일 아메트 다부토울루 터키 총리는 ‘물리적인 장벽’ 설치를 포함해 시리아와의 국경 관리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그는 신속한 결과를 기대하긴 어렵다고 덧붙였다. 시리아 난민의 이동을 허용해야 하며, 또 IS가 국경을 허물려고 시도할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정치적 권위가 없는 시리아와 맞댄 국경을 보호하기보다 더 어려운 일은 없다.”

최근 터키 정부는 미국을 달래려는 듯이 이라크 북부 지역의 쿠르드족 병사를 훈련하기 위해 병력 수백 명을 파견했다. 지난해 6월 IS가 점령한 이라크의 주요 도시 모술을 탈환하기 위해서다. 터키의 한 고위 관리는 로이터 통신에 “그런 파병은 IS 격퇴 전술의 일환”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IS와의 전쟁에서 터키의 기여를 환영하지만 오바마 행정부는 여전히 터키가 약속대로 후속 조치를 취하지 않을지 모른다고 우려한다. 저번에도 터키는 약속을 이행하지 않았다. 지난 7월 오바마와 에르도안 대통령은 몇 개월에 걸친 협상 끝에 미국이 지원하는 시리아 반군이 국경 지대를 장악할 수 있도록 미군과 터키군이 힘을 합쳐 IS를 공격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에르도안 대통령이 생각을 고쳐먹은 듯했다. 그는 IS를 제거하면 터키의 주적인 아사드 정권과 시리아의 쿠르드족만 이득을 본다고 우려했다. 며칠 뒤 터키 정보당국이 공격 사실을 IS에 흘렸다는 보도가 나왔다. 미군이 훈련한 시리아 반군이 시리아에 들어가자마자 IS에 잡혔다. 물론 터키 정부는 정보 유출을 부인했다. 그러나 아무튼 터키의 표리부동적 행동은 계속됐다고 미국 관리들은 말했다. 이제 미국은 터키의 그런 양다리 걸치기 게임이 끝났기를 기대한다.

글 = 뉴스위크 조나단 브로더 기자  번역 = 이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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