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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돼지구이집에 토마토짬뽕 전수해주니 매출 40배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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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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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신라호텔 박영준 셰프(왼쪽)가 행복맛집 오복자 사장에게 요리법을 전수하고 있다. [사진 호텔신라]

제주도 제주여상 정문 앞이 지난 9일 오전 갑자기 시끌벅적해졌다. 오래된 분식집이 리모델링 후 이날 새로 문을 열었기 때문이다. 26㎡ 면적의 작은 매장 맨 꼭대기에는 ‘청춘테이블’이란 간판이 걸렸다. 메뉴가 색다르다. 특히 토마토를 갈아 넣어 빨간 빛깔이 도는 ‘토마게티’, 그리고 레몬과 우유로 맛을 낸 크림맛 ‘수제떡볶이’는 처음 선보이는 메뉴다. 학생들이 주 고객인 만큼 안전한 먹거리인 수제 단무지를 넣은 김밥도 추가했다.

[세상 속으로] 동네식당 돕는 호텔

‘맛있는 제주 만들기’ 프로젝트
호텔 레시피·비법 식당에 알려주고
주민 선호도 조사해 새 메뉴 개발

김치찌개 등 기존 메뉴 모두 없애고
보말칼국수·매운등갈비 내놔 성공

 이곳은 얼마 전까지 ‘타스티’라는 이름의 낡은 분식점이었다. 여고 근처라 등하교 때 특수를 누릴 만한 자리였지만 그동안은 하루 매출 3만원, 평균 고객도 10명 안팎에 그쳤다. 1995년부터 분식점을 운영해온 김애숙(54·여)씨는 전문 요리 기술을 배우지 못했다. 주메뉴였던 떡볶이와 김밥 맛은 고객들의 외면을 받기 일쑤였다. 김씨는 “10여 년 전 남편이 실직한 뒤 돈을 벌기 위해 무작정 장사를 시작했다”며 “최근 가게 문을 닫을까 고민할 정도였는데 따로 전수받은 토마게티와 수제떡볶이가 정말 맛있어 장사가 기대된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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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성도뚜리의 토마토짬뽕, 진미네식당의 정식, 보말이야기의 보말칼국수(위로부터). [사진 호텔신라]

 지난해 2월부터 제주도와 호텔신라가 공동으로 진행하는 ‘맛있는 제주 만들기’ 프로젝트의 결과다. 이렇게 변신한 제주 음식점이 벌써 12곳이다. 대상 식당은 제주도가 구성한 선정위원회 심의를 거쳐 뽑힌다. 호텔신라는 선정된 식당에 호텔이 보유한 조리법, 서비스 교육뿐 아니라 식당 시설, 실내와 외부 환경 개선을 지원한다. 기업이 영세 식당의 자립을 도와주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제주신라호텔은 요리사 1명을 전담 투입했다. 한식은 물론 중식과 양식에까지 능통한 11년 차 박영준(35) 셰프다. 박 셰프는 1호점부터 12호점까지 메뉴 개발과 맛 전수에 모두 기여했다. 사근사근한 말투로 특급 호텔의 레시피와 자신만의 비법까지 아낌없이 전수해줬다. 그가 평소와 다르게 눈빛이 변할 때가 있다. 요리인의 기본적인 마음가짐을 설명할 때다. 칼 잡는 법은 물론 조리대를 정리하는 법까지 기본의 중요성에 대해 열변을 토한다. 박 셰프는 “음식을 만드는 사람은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하다”며 “솜씨와 재료는 그 다음”이라고 역설했다.

 맛집으로 거듭난 식당 12곳은 하루 매출이 적게는 3배, 많게는 10배 이상 뛰었다. 매출 상승의 비결은 다른 게 아니었다. 맛이 좋아졌기 때문이다. 특히 9호점인 해성도뚜리는 지난 3월 개장 이후 하루 평균 200여만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여름 성수기 땐 하루 480만원까지 올렸다. 재개장 전 적게 팔 땐 하루 매출이 5만원 안팎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천지개벽 수준이다. 이 식당은 올레 16코스가 지나는 제주시 애월읍 해안도로에 있다. 관광객이 많이 찾는 곳이라 자연스레 입소문이 났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한 손님들의 자발적 홍보도 한몫했다.

 이곳의 인기 비결은 박 셰프가 전수해준 토마토짬뽕의 역할이 컸다. 커다란 제주산 황게가 통째로 올라 있는 모습이 관광객들의 입맛은 물론 눈맛까지 사로잡았다. 손님 열 명 중 아홉은 음식에 카메라를 들이댄다. 맛에 대해서도 칭찬 일색이다. 토마토 베이스의 칼칼한 짬뽕 국물이 특색 있다는 평가다. 주메뉴인 흑돼지구이를 먹고 나서 느끼함을 잡기 위해 찌개 대신 짬뽕면을 맛보는 ‘먹방’ 풍경이 연출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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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호점인 ‘보말이야기’는 선택과 집중을 통해 하루 매출 50만원을 올리고 있다. 지난해 6월 재개장했다. 주인 박미희(57·여)씨는 18년 전부터 여러 식당을 운영했지만 장사가 잘 되지 않았다. 특별한 직업이 없는 남편과 자녀들을 부양하기 위해 혼자 화목식당을 3년 전에 열었지만 하루 매출은 5만원도 안 됐다. 찌개·해장국 등 메뉴가 너무 많았다. 이 때문에 식재료 관리도 힘들고 맛도 일정하지 않았다.

 호텔신라는 인근 주민과 직장인을 대상으로 외식 선호도 조사를 진행한 뒤 김치찌개 등 기존 메뉴를 모두 없앴다. 그러곤 제주 지역에서 나는 식재료인 ‘보말’(고둥의 제주어)을 주재료로 보말칼국수·보말해장국 등의 주메뉴를 개발해 노하우를 전수하고 부가 메뉴로 매운 등갈비를 추가했다.

 제주신라호텔은 식당 주인들의 표정도 바꿨다. 주인의 밝은 표정이 식당의 첫 이미지를 결정짓게 하기 때문이다. 선정된 식당 주인은 개조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제주신라호텔 서비스 부서에서 훈련을 받았다. 미소 짓는 법부터 억양까지 꼼꼼히 챙겼다. 특급호텔의 노하우가 담긴 서비스 마인드 교육도 이뤄졌다. 제주도민 특유의 무뚝뚝함을 씻어내고 친절한 서비스 마인드를 끌어냈다.

 이 프로젝트가 사회 공헌의 선순환 바이러스를 퍼뜨리고 있다. 최근 ‘맛있는 제주 만들기’를 통해 재기에 성공한 음식점 주인들이 어려운 이웃을 돕겠다며 자발적으로 봉사 모임을 만들었다. 주변의 도움을 받아 재기에 성공한 만큼 어려운 사람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이들은 전수받은 요리법을 활용해 요양원 등 주변 이웃에게 음식을 만들어주거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식당 업주들에게 무상으로 요리법을 전수해주기로 했다.

 봉사 모임 대표를 맡은 1호점 ‘신성할망식당’ 박정미(46·여) 사장은 “전부 포기하려다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은 ‘맛있는 제주 만들기’ 프로젝트에서 받은 도움과 배려 덕분”이라며 “좋은 기운이 소외된 다른 이웃에게까지 퍼져나갈 수 있도록 작지만 진심을 담아 봉사활동을 이어 가겠다”고 다짐했다.

제주=최충일 기자 choi.choongil@joongang.co.kr

[S BOX] 돼지고기, 엄나무나 커피 반 스푼 넣고 삶으면 잡내 안 나

제주신라호텔은 제주 식재료 다루는 비법을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흑돼지=오겹살 구이는 고기의 두께가 중요하다. 제주에서는 고기가 두꺼울수록 맛있다고 여겨 4~5㎝의 두께로 구워 먹기도 하지만 익히기 힘들다. 불 조절을 잘 못하면 겉만 타고 속은 익지 않는다. 2㎝ 정도가 적당하다. 돼지고기를 삶을 땐 두툼하게 잘라야 육즙이 보존되고 풍미가 좋다. 돼지고기의 잡내는 엄나무를 넣고 함께 삶으면 해결된다. 엄나무가 없다면 커피를 반 스푼 넣어도 좋다.

 ◆고등어=구울 때 참기름과 식용유를 6대 4 비율로 발라주면 좋다. 기름이 유막을 형성해 생선 표면이 마르지 않아 살이 탄탄해진다. 또 비린 맛도 적어지고 고소한 향이 입맛을 자극한다.

 ◆게 등 갑각류=찌거나 구울 땐 등 껍데기를 바닥으로 놓고 조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장과 육즙이 새어 나와 풍미가 떨어진다. 또 갑각류를 삶을 땐 양파·당근·셀러리를 함께 넣으면 바닷물의 짠맛을 줄여주고 풍미를 더하게 된다.

 ◆감귤=아귀찜을 할 때 감귤을 잘라 말린 것을 첨가하면 매운맛을 잡아줘 궁합을 맞출 수 있다. 또 감귤즙을 달이거나 잼으로 만들어 넣으면 매운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어린이들도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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