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병원] 下. 어떻게 이겨나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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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50만명인 성남시 옛 시가지에 종합병원이 없어지면 야간 응급환자 진료에 큰 문제가 생길 겁니다."

7월 10일 폐업 예정인 경기도 성남시 인하병원 노동조합 김선우 지부장의 얘기다. 이 지역의 세개 종합병원 중 다른 한 곳도 경영난을 이기지 못해 매우 어려운 상황에 빠져 있다.

성남시 수정구 보건소 관계자는 "야간 응급환자의 30% 이상을 관내 병원들이 맡아왔는데…. 마땅한 대책이 없어 걱정"이라며 한숨을 지었다.

중소 병원들이 쓰러지면 당장 이런 문제가 생긴다. 일반 환자들도 어쩔 수 없이 다른 시.도의 큰 병원으로 가야 한다. 그러면 대기시간이 길어지고 진료비.교통비 등의 부담도 증가한다. 그래서 병원의 경영위기는 병원만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전문가들은 병원의 형편에 따라 다양한 처방을 해야 한다고 권고한다. 보건복지부 최희주 공공보건과장은 "대도시의 중소 병원은 전문병원으로 특화해야 한다. 지방 병원 중 거점병원 역할을 하는 곳은 정부가 인수하거나 취약 계층 진료를 위탁하면서 운영비를 지원할 수 있다"고 말한다.

백화점식 종합병원이 아니라 산부인과.소아과.마취과 의사가 합해 산부인과 병원을 하는 식으로 전문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김태웅 경북 보건위생과장은 "다양화하는 국민 의료 욕구에 맞춰 특화한 중소병원들이 많이 생기고 있다"고 말했다.

그럼 특화하기 힘든 지방 병원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지방 병원 중 지리적으로나 병원 분포로나 해당 지역의 중심적인 의료 기능을 하는 곳을 정부가 인수하자는 아이디어가 제시되고 있다.

보건의료노조 김미애 정책부장은 "이 병원들이 무너지면 결국 환자들의 부담이 커지게 된다"고 말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지난 2월 이런 병원 45곳을 인수하는 방안을 논의한 바 있다.

나머지 병원은 개방병원이나 요양병원, 주민 밀착형 병원으로 바꾸자는 안도 있다. 중소병원협의회 김철수 회장은 "동네의원이 환자를 중소 병원으로 데리고 들어와 수술도 하고 입원도 시키는 개방형 병원제를 활성화하자"고 말했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김창엽 교수는 "중소 병원이 지역사회 주민의 질병 예방이나 건강증진 등을 맡아 지역사회 밀착형 병원으로 탈바꿈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동네의원-중소 병원-대학병원으로 이어지는 진료체계 선상에서 중소 병원은 허리 역할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협공을 받고 있다.

이들은 외래환자를 두고 동네의원과, 입원환자를 놓고 대학병원과 경쟁해야 한다. 하지만 환자가 중소 병원에서 외래 진료를 받으면 동네의원보다 두 배의 돈을 내야 한다. 또 중소 병원은 대학병원의 수준을 따라가지 못한다.

경북대 의대 박재용 교수는 "동네의원이 보유할 수 있는 병상수(현재 30개 미만)를 줄이거나 대학병원이 외래환자를 못보도록 해야 하는데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다"고 말했다.

중소 병원의 경영난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도 있다. 서울대 김창엽 교수는 "중소 병원이 어렵다고 하지만 매년 숫자가 늘고 있다. 단순히 경영난 때문에 폐업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중소 병원(대학병원 제외)은 1999년 8백59개에서 매년 증가해 지난 5월 말 현재 1천12개가 됐다.

이에 대해 경남 마산의 청암의료재단 최재영 이사장은 "신도시처럼 수요가 새로 생기는 곳에 1백병상 안팎의 소형 병원이 생기고 기존 시가지에는 특화된 전문병원이 생기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신성식.하현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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