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막말에도 지지율이 치솟는 까닭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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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슬림 입국 전면 금지’라는 극단적인 카드를 꺼내 들었던 도널드 트럼프가 지지율에서 대박을 쳤다. 그간 각종 막말로 관심을 끌어 모은 뒤 이를 통해 보수층의 표심을 자극해 지지자로 만들었던 트럼프의 선동 정치가 이번에도 먹혀 들어간 양상이다. 트럼프의 무슬림 입국 거부 발언을 놓고 백악관이 전례 없이 ‘후보 퇴출’을 공개 요구하고 폴 라이언 하원의장, 미치 매코널 상원 원내대표 등 공화당 지도부까지 “우리의 가치와 다르다”며 반박했지만 집토끼인 공화당 유권자들은 오히려 트럼프를 더 밀어줬다.

워싱턴포스트(WP)·ABC방송이 15일(현지시간) 공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트럼프는 공화당 지지자들에서 38%를 얻어 ‘무슬림 입국 금지’ 발언 이전인 지난달의 32%에서 6% 포인트 상승했다. 이어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 15%, 마코 루비오 상원의원과 벤 카슨이 각각 12%로 공동 3위였다. 앞서 14일 공개된 먼머스대의 여론조사에서도 트럼프는 공화당 지지자중 41%를 얻어 이 대학의 여론조사에서 처음으로 40%대 지지율을 돌파한 공화당 후보로 등극했다. 이는 10월 조사 때보다 13% 포인트 올라간 수치다. 이어 크루즈 상원의원 14%, 루비오 상원의원 10%의 순이다.

WP·ABC 조사에 나타난 주요 현안 별 응답을 보면 공화당 지지자들의 ‘트럼프 신앙’은 압도적이다. 이들 중 50%가 ‘테러’에 가장 잘 대응할 후보로 트럼프를 꼽았다. ‘이민 문제’, ‘워싱턴 개혁’, ‘가장 강한 후보’를 놓고도 공화당 지지자의 각각 50%, 51%, 54%가 트럼프를 선택했다. 크루즈 상원의원 등 다른 후보들은 모두 10%대이거나 한 자릿수였다. 특히 “내년 11월 대선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후보”에 대해서 공화당 지지자의 47%가 트럼프를 선택해 10%대를 넘지 못한 다른 후보들을 압도했다.

이 조사에 따르면 트럼프는 남성, 연소득 5만 달러 이하의 저소득층, 대졸 미만의 저학력층에서 강세를 보였다. 즉 보수 백인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소외된 유권자들이 트럼프 충성층이었다. 이는 주류 언론과 미국 사회의 여론 주도층이 트럼프의 극단적인 반(反) 무슬림 대책에 대해 우려를 표명한 게 먹혀 들어가지 않은 이유를 설명한다. 저소득·저학력 백인 유권자들이 일상 생활에서 느끼는 불만족을 미국의 가치라는 상위 논리로 극복하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준다.

“트럼프는 대선 후보에서 빠져야 한다”고 요구했던 백악관은 당혹했다. 조시 어니스트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 도중 ‘트럼프 지지율’에 대한 질문이 이어지자 “내가 여론조사 현상을 설명할 수는 없다”고 답을 피했다. 대신 “미국인 대다수의 가치를 반영하고 있는 게 아니라고 본다”고 밝혔다.

공화당 지도부는 트럼프 지지율의 수직 상승과 함께 ‘트럼프 불안증’도 표면화되고 있어 딜레마를 겪고 있다. WP·ABC 조사에서 민주당 지지층, 무당파까지 포함한 전체 유권자로 따질 경우 ‘트럼프가 불안하다’는 응답은 68%로, ‘편안하다’는 응답 29%의 두 배 이상으로 나타났다. 트럼프가 집토끼를 결집하는 데선 성공하고 있지만 산토끼들의 배척은 심화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 조사에서 트럼프 대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의 양자 대결은 각각 44% 대 50%로 나타났다.

워싱턴=채병건 특파원 mfem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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