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사설

뒤늦은 가계부채 대책 … 경제까지 총선에 밀려나는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4면

정부가 어제 가계부채 관리 가이드라인을 내놨다. 민간단체인 은행연합회가 발표했지만 금융위원회·기획재정부·국토교통부·청와대가 모두 참여한 사실상 범정부 대책이다. 지난 7월 내놓았던 종합대책의 후속조치다.

 대책에 따르면 은행은 앞으로 주택담보대출을 내줄 때 담보보다 소득을 중시해야 한다. 거치식 대출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변동금리 대출엔 스트레스금리를 적용해 대출 한도를 줄이도록 했다. 대출 상환 능력은 주택담보대출뿐 아니라 신용대출 등 다른 부채까지 감안해 평가된다. “총부채상환비율(DTI)이나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을 직접 건드리지 않으면서도 과도한 대출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정부는 기대한다.

 하지만 그럴 수 있을지 의문이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적용 시점이 오히려 늦춰졌다. 지난 7월 종합대책에선 내년 1월 1일부터 전국에서 동시에 대출심사를 강화할 예정이었다. 이번 대책이 나오면서 서울은 2월, 지방은 총선 뒤인 5월로 시점이 미뤄졌다. 한 달에 10조원꼴로 늘고 있는 가계부채 증가세가 내년까지 이어지게 됐다. 가계부채 급증의 주범인 집단대출 등 예외가 너무 많고 가이드라인이 은행연합회가 제시하는 권고 형식이어서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여기에는 총선 변수가 작용했다는 분석이 적지 않다. 정부 내 협의 과정에서 국토부와 기재부는 “건설 경기가 죽는다”거나 “소비 회복세의 불씨가 꺼질 수 있다”며 금융위를 압박했다. 당초 대책보다 후퇴한 방안이 나온 이유도 이 때문이다. 수도권보다 과열된 지방에 대한 적용을 더 늦추고 적용 시점을 굳이 총선 이후인 내년 5월로 잡은 이유도 알기 어렵다.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지난 8월 새누리당 연찬회에서 “내년엔 잠재성장률 수준인 3% 중반 선으로 복귀할 수 있게 해 당의 총선 일정에 도움이 되도록 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한국 가계부채의 위험성을 또다시 경고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도 “지금은 건설경기보다 가계부채 관리가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저금리와 규제완화를 업고 활황을 누려온 부동산 시장에서도 최근 미분양 등 이상 조짐이 나오고 있다. 더구나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15~16일(현지시간) 9년 만에 금리를 올릴 것이 확실시된다. ‘예고된 악재’라고 하지만 전 세계 금융은 물론 실물을 뒤흔들 수 있는 초대형 이벤트다.

 여기에 제대로 대응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 가계부채다. 미국이 금리 인상으로 방향을 튼 이상 한국도 저금리를 더 유지하기 어렵다. 1200조원에 달하는 가계부채 금리가 0.25%포인트만 올라도 가계 부담이 연 3조원 늘어난다. 부동산 가격 급락과 같은 경제 충격도 배제하기 어렵다. 가계부채 증가 속도를 늦추고 부채의 질을 개선하는 노력이 시급한 이유다. 그럼에도 기왕 마련한 대책마저 총선 뒤로 늦춰졌다. 후유증을 누가 책임질지 아찔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