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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핏 룰’과 ‘트럼프 룰’의 격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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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김현기 기자 중앙일보 도쿄 총국장 兼 순회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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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기
워싱턴 총국장

최근 세계 3위의 갑부로 발표된 미국의 투자가 워런 버핏의 재산은 623억 달러. 요즘 환율로 약 74조원이다.

 저금리 시대인 요즘에도 하루 이자가 40억원이 넘는단다. 그런데 “내 비서보다 내 소득세율(17.4%)이 낮다”란 버핏의 고백은 충격적이다. 그것도 조금 낮은 수준이 아니라 절반이라니 말이다.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미국 소득세율은 소득 수준에 따라 10~39.6%의 7단계로 나뉘어 있다. 당연히 버핏에겐 39.6%의 최고 소득세율이 적용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금융소득 때문이다. 버핏과 같은 부유층은 주식 매각으로 얻는 이익이나 배당수익 같은 금융소득이 많다. 그런데 금융소득에는 15~20%의 상대적으로 낮은 세율이 적용된다. 그러니 전체 소득 중 급여소득보다 금융소득의 비율이 높을수록 전체 세율도 떨어진다. 부자일수록 세율은 낮아지는 모순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이를 시정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부유층에 30%의 최저세율을 부과하는 이른바 ‘버핏 룰’을 도입하자고 의회에 촉구했다. 하지만 실현이 안 됐다. 누가 뭐라 해도 ‘버핏 룰’을 용납하지 않는 소득세율 체계는 백인 부유층이 주도해 온 미국 사회질서를 상징했다.

 ‘버핏 룰’ 공방은 미국 사회에 ‘트럼프 룰’이란 기현상을 낳았다.

 이민자 등 사회 비주류 세력을 비하하고 모멸할수록 주류의 지지를 받는다는 게 이른바 ‘트럼프 룰’이다. 트럼프 룰에는 기존 질서에 도전하는 거센 흐름에 대한 백인들의 두려움이 깔려 있다. 도대체 미국 사회에 어떤 변화가 나타나고 있는 것일까.

 먼저 인구 구성부터 달라졌다. 1970년 히스패닉 인구는 960만 명. 이게 지난해 5540만 명으로 늘었다. 비율로는 4.7%에서 17.4%로 급증했다. 퓨 리서치센터에 따르면 35년 후에는 1억600만 명, 즉 3명 중 1명이 히스패닉이 된다. 백인 비중은 50% 밑으로 떨어진다. 이는 사회의 주도세력, 정치적 영향력의 변화를 의미한다.

 경제적으로 보면 백인 중심의 중산층이 붕괴됐다. 60년 61%로 두텁던 중산층 비율이 올 들어 ‘마지노선’으로 불리던 50% 밑으로 떨어졌다. 중산층에서 ‘탈락’한 백인의 불안과 분노는 커질 수밖에 없다. 그 화살은 중산층 자리를 비집고 들어온 다른 인종으로 향한다. 고졸 이하 백인들이 트럼프에 유달리 환호하는 이유다.

 분명한 건 백인에 의한 소수 인종 차별의 시대는 갔고, 이제는 대등한 인종 간 대립·갈등의 단계로 들어서는 전환점에 미국 사회가 서 있다는 점이다. 트럼프 현상은 그냥 우연히 등장한 게 아니다.

 기존 질서를 바꾸려는 ‘버핏 룰’, 그리고 그걸 거부하고 맞서는 ‘트럼프 룰’의 맞짱 격돌은 미국 사회 빅뱅의 신호탄이다. 남의 나라 일만은 아니다. 다문화 사회가 진행 중인 우리의 10년 후, 20년 후 모습일 수도 있다. 한가하게 구경만 할 일은 아닌 게다.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