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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 슬기와 생존이 필요한 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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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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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규학
소프트뱅크벤처스 대표이사

애플이 아이폰 초기 모델인 2G를 출시했던 지난 2007년 6월 이후에도 노키아의 주식은 상승세를 타며 주당 30달러에 근접했다. 노키아는 곧이어 닥친 금융위기도 무난하게 견뎌 냈다. 이들이 전면을 터치 스크린으로 장착한 ‘스마트폰’이라는 제품군 하나 때문에 몰락하게 되리라고 내다 본 사람은 없었다. 노키아는 2004년엔 ‘심비안’이라는 모바일 운영체제를 활용한 스마트폰을 출시해 제법 많은 판매 기록을 올렸다.

경제 전반에 어두운 그림자
감원 같은 고전적 방식 대신
보다 유연하고 창의적인
위기 대응 시나리오 마련을

 애플 이전까지 십수년 간 세계 휴대전화 산업의 지배자로 군림했던 노키아는 애플 제국과 안드로이드 연방군의 협공을 견뎌내지 못했다. 끝내 2013년 휴대전화 사업을 마이크로소프트에 매각했다. 지금은 통신장비와 가상현실 기술을 내세워 재기를 노리고 있다. 낙관이 불러온 재앙이었다.

 노키아의 몰락은 핀란드 경제 전반을 위축시켰다. 지난해 겨울, 핀란드 헬싱키에 출장을 갔다. 일정을 마치고 호텔에서 공항으로 가는 길은 낮인데도 엄청나게 막혔다. 고작 인구 60만 명인 도시에서 웬 교통 정체냐고 기사에게 물었더니 “경찰들이 시위를 하고 있어서 그렇다”고 했다. 알고 보니 예산이 부족한 정부가 경찰 인력을 감축하겠다고 발표했기 때문이었다. 핀란드 경제에서 30% 정도의 비중을 차지한 노키아의 몰락이 국가 재정마저 위태롭게 만든 것이다.

 나라 경제가 심상치 않다. 경기를 가늠할 수 있는 모든 지표들이 반전은커녕 하향세다. 수년째 경제성장률은 제자리 걸음이고, 고용을 늘려도 시원찮을 판에 대기업들은 조용히 사람들을 내보내고 있다. 고도 성장기에 나라 경제의 주춧돌이 됐던 주력 산업들은 중국을 비롯한 신흥 부국들의 공세로 그동안 우월했던 지위를 하나 둘 내주고 있다. 또 아주 빠른 속도로 고령 사회를 향해 가고 있지만 준비 중인 대책들은 허술해 보인다. 가계 부채의 증가세도 우려의 대상이고, 국가 채무도 매년 가파르게 늘고 있다.

 이렇듯 경제 전반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 있지만 여전히 정부는 그리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다. 물론 경제를 비롯한 국가 경영 전반을 책임지는 정부의 입장에서 비관론을 쉽게 내비칠 수 없는 입장은 이해해 줘야 한다.

 그러나 민간 부문, 특히 기업들은 앞으로 상황이 결코 만만치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을 전제로 삼아야 한다. ‘비관론’적인 관점에 근거해 국면을 헤쳐나가야 한다. 특히 경험이 제한적이고 자원이 넉넉하지도 못한 ‘스타트업’들은 지금부터라도 생존을 위한 준비를 해야 한다.

 소프트뱅크벤처스가 투자한 기업들은 한 달여 간격으로 이사회를 통해 경영 현황과 전략을 주요 경영진들과 논의하고 있다. 최근에는 매출이 전혀 없다고 가정하고, 앞으로 적어도 2년 이상을 버틸 수 있는 자금을 마련해 두라고 조언 중이다. 지난 2000년대 초반 닷컴버블과 2008년 금융위기 때의 경험으로 보면 자금이 부족해 못 버티는 스타트업들이 가장 먼저 쓰러지게 마련이다.

 인력 감축과 비용 통제 같은 대기업들의 고전적인 위기 대응 방식과는 다른, 보다 유연하고 창의적인 위기대응 시나리오도 만들어 보라고 주문한다. 해당 스타트업들이 자리 잡고 있는 산업이나 사업 분야의 경기 민감도를 시뮬레이션해보라고 요청하면서 온실 속 화초처럼 살다가는 결코 못 버틸 것이라고 겁도 준다.

 알스톰·카길·모토로라·뉴트로지나·포르셰·레고·웨스틴호텔 등 지금도 명성이 자자한 기업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다름 아닌 1929년 세계적 대공황 시기 전후에 창업한 기업들이라는 점이다. 모든 기업의 출발은 스타트업이다. 그 엄중하고 혼란한 시기에 감히 창업을 해서 지금까지 당당히 최고의 기업으로 생존한 기업들이 있다는 것은 결국 살아남는 자들이 모든 걸 가진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지난 몇 년간 한국의 스타트업들이 창업 이후 보여 준 것은 열정과 패기와 도전 정신이었다. 그러나 지금부터 증명해 보여야 할 것은 슬기와 생존이어야 한다.

문규학 소프트뱅크벤처스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