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 ‘살충제 사이다’ 할머니 무기징역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8면

기사 이미지

“피고인이 사이다에 농약을 넣어 살해했음을 재판부는 인정한다. 배심원도 만장일치로 유죄 평결을 내렸다.” 판사가 이렇게 선고한 직후 피고 박모(83) 할머니는 법정에서 퇴장하면서 소리쳤다. “내가 약 타지 않았다.”

 11일 대구지법에서 있었던 경북 상주시 살충제 사이다 사건 선고 공판 모습이다. 올 7월 14일 경북 상주시 공성면 금계1리 마을회관에서 이모(89) 할머니 등 60~80대 할머니 6명이 냉장고 안에 있던 사이다를 나눠 마시고 이 중 2명이 숨진 사건이었다. 누군가 사이다 속에 살충제를 탔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국민참여재판서 전원 유죄 평결
“옷·지팡이에 묻은 농약이 증거”
할머니 “약 타지 않았다” 소리쳐

 재판은 지난 7일부터 11일까지 닷새 동안 연속해 국민참여재판으로 이뤄졌다. 5일간 검찰과 변호인은 치열하게 맞섰다. 일찌감치 박 할머니를 범인으로 지목한 검찰은 몇 가지 증거를 댔다. 할머니의 옷과 지팡이 등에서 사이다 속에 들었던 것과 같은 살충제 성분이 검출됐고, 피해자들이 중독돼 쓰러졌는데도 같이 있던 박 할머니가 구조를 요청하지 않았다는 것 등이었다. 범행 동기는 전날 화투놀이를 하다 생긴 다툼이었다고 했다.

 변호인은 “피해자들이 잠든 것으로 박 할머니가 오해해 신고하지 않았고, 나중에 거품을 물길래 닦아주다가 살충제 성분이 옷 등에 묻었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검찰의 손을 들어줬다. 입에서 거품이 나온 것을 닦아줬다면 살충제 성분뿐 아니라 침에 있던 유전자도 함께 옷 등에 묻었어야 하는데 이런 것이 전혀 없다는 등의 이유였다. 재판부는 “옷과 지팡이, 전동 카트 등에 묻은 메소밀이 결정적 증거”라고 받아들였다. 또 “피고는 유족들에게 평생 정식적 고통을 안겨줬고 마을 공동체를 붕괴시켰다”며 무기징역을 선고한 배경을 밝혔다.

 배심원들도 만장일치로 무기징역을 평결했다. 이날 오전 검찰이 구형한 것과 같은 형량이다. 검찰은 “잔혹한 범행 수법과 은폐 시도, 반성을 하지 않는 점 등이 있어 중형 구형이 불가피하다”고 했다. 박 할머니의 가족들은 선고 직후 “항소하겠다”고 했다.

대구=김윤호 기자 youknow@joongang.co.kr
사진=김경빈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