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SUNDAY 편집국장 레터] 마지막 레터

중앙선데이

입력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VIP 독자 여러분, 중앙SUNDAY 편집국장 남윤호입니다.


먼저 업무 변동 상황부터 알려드려야 하겠습니다. 최근 인사이동으로 저는 내주부터 중앙일보 뉴스룸에서 일하게 됐습니다. 중앙SUNDAY 제작은 금주까지이며, 오늘로 마지막 편집국장 레터를 보내드립니다. 그동안 독자 여러분들의 따뜻한 시선과 성원에 고개 숙여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2013년 12월 말 355호부터 중앙SUNDAY의 제작을 맡았으니 금주 457호가 제게는 103번째 지면입니다. 동료 제작진의 헌신과 노력 덕분에 2년을 거의 채웠습니다. 돌아보면 부족하고 미진했다는 기억들이 더 많습니다. 모자란 지면에도 불구하고 독자 여러분들은 격려를 보내주시기도, 공감을 표시해주시기도 했습니다. 그 과분한 배려와 너그러움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중앙SUNDAY 편집국은 곧 중앙일보사의 통합 뉴스룸으로 합쳐집니다. 뉴스룸에서 인터넷·모바일·신문·잡지의 콘텐트를 일괄 생산하고, 각 매체별 제작담당과 에디터들이 이를 사용해 각자 매체를 제작하는 시스템입니다. 저 역시 뉴스룸 소속으로서 중앙SUNDAY의 콘텐트 제작을 지원할 예정입니다. 유럽과 미국의 유명 언론사들은 대부분 그런 식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다음주부터는 이정민 중앙SUNDAY 제작담당이 에디터들과 함께 지면을 만듭니다. 더 날카로운 분석, 더 깊이 있는 통찰, 그리고 더 풍성한 읽을거리와 재미를 독자 여러분께 전해드리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앞으로도 변함없는 성원 부탁드립니다. .금주 중앙SUNDAY엔 조금 색다른 기획물이 준비돼 있습니다. 지난주 중앙SUNDAY 1면의 각시탈 쓴 복면 시위대 사진을 기억하시는지요. 복면금지법 발의에 항의한 시위대가 복면 대신 각양각색의 가면과 탈을 쓰고 시위를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클로즈업된 각시탈에서 권력에 대한 조소와 풍자가 물씬 풍기지 않습니까. 핏대 내며 고래고래 내지르는 고함보다 깔끔한 유머와 피식 웃게 만드는 위트가 때로는 더 큰 전달력을 지니는 법입니다. 복면시위를 엄중 단속하려는 당국자들은 각시탈을 보고 어떤 느낌이겠습니까. 요즘 말로 ‘대략난감’ 아니겠습니까. 연성(軟性)으로 나오는 쪽에 대고 강성(强性)으로 대응하면, 힘 쓰는 쪽이 우스꽝스러워집니다.


유머와 위트, 풍자와 조소(嘲笑)를 통해 저항 의사를 표현하는 건 세계적으로 보편화돼 있습니다. 풍자의 대상은 다양합니다. 부당한 공권력, 철옹성 같은 기득권, 만연한 불평등, 권력의 부정부패, 명분 없는 전쟁…. 그를 대상으로 제작한 저항적 이미지는 곧 이미지를 통한 저항이기도 합니다.


저항적 아트라고 해서 민중미술만 있는 게 아닙니다. 국내에선 박근혜 대통령을 혐오스럽게 묘사한 한 민중미술가의 그림들이 논란을 부른 적이 있습니다. 혐오의 경계가 어디까지냐 하는 건 주관의 문제이므로 굳이 따지진 않겠습니다. 샤를리 에브도의 풍자도 서구 독자들에겐 재미겠지만, 무슬림들에겐 신성모독 아닙니까. 다만 논란을 부른 그 민중미술가의 그림은 유머나 위트와는 거리가 먼 거칠고 둔탁한 이미지였다는 데엔 많은 분들이 동의하실 겁니다.


물론 그보다는 창의성 번득이는 ‘작품’이 훨씬 많습니다. 해외 사례 중 기억에 남는 것을 떠올려 볼까요. 몇 년 전 미국에서 시위대에게 최루액을 마구 뿌려대는 경찰관이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를 때였습니다. 미켈란젤로의 ‘아담의 창조’를 밑그림 삼아 아담 대신 최루액을 조물주에게 뿌리는 경찰관 모습을 덧댄 이미지가 나오더군요. 무인 폭격기 사용이 문제시될 때엔 “내겐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고 연설하는 마틴 루터 킹의 사진이 사용됐습니다. 킹 목사의 얼굴 부위에 오바마의 사진을 포토샵으로 처리해 넣곤 다음과 같은 설명으로 확 비틀더군요. “여러분에겐 꿈이, 제겐 드론이 있습니다(You have a dream, I have a drone).” 둘 다 회화와 사진, 다큐멘터리와 시각 이미지를 자유롭게 사용하는 몽타주 기법으로 실재와 허구를 오간 작품들입니다. 답답하고 무거운 현실의 벽에 통쾌하게 균열을 내버리지 않습니까.


영국의 그래픽 디자이너 리즈 맥퀴스턴은 『Visual Impact』라는 책에서 정치사회적 풍자의 확산 배경으로 기술 발전과 SNS의 보급을 꼽더군요. 풍자의 아이디어만 떠오르면 뚝딱 작품을 만들어, 인터넷 공간에서 무제한 퍼트릴 수 있다는 것이지요. 실제 그런 점을 활용해 아티스트나 그래픽 디자이너들이 주도하는 익명의 단체가 사이버 공간을 누빕니다. 대표적인 게 ‘무명씨 연합(The United Unknown)’입니다. 이들은 예술을 대중 저항의 무기로 삼는 데 의기투합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이 운영하는 http://unitedunknown.com엔 배꼽 잡는 풍자 이미지와 영상들이 가득합니다.


폭넓게 공감을 얻는 작품이 한번 등장하면 그를 추종하는 후속작들이 연속해 나오기도 합니다. 저항의 기류가 떠도는 곳이라면 어디서나 그렇습니다. 한 나라의 공권력으론 도저히 통제할 수 없는 글로벌 현상입니다. 맥퀴스턴은 꽉 닫힌 북한도 그런 흐름에서 예외가 아니라고 하더군요.


금주 중앙SUNDAY는 그런 이미지들을 소개하면서 저항적 풍자의 흐름을 짚어봅니다. 무거운 현실에 대한 통렬한 풍자를 따라가 보십시오. 문제 투성이의 현실에 대한 새로운 시각, 그리고 지금까지 생각하지 못했던 대안들이 떠오를지도 모릅니다. ?감사합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