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균 출석 거부에 경찰 1000명 한때 관음전 포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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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에 대한 영장집행이 연기된 9일 밤 한 위원장이 머물고 있는 조계사 관음전 입구 앞에서 경찰들이 경계근무를 서고 있다. 왼쪽에 보이는 관음전 출입문으로 들어가는 구름다리는 이날 오후 2시20분쯤 조계사 측에 의해 철거됐다가 4시50분쯤 다시 복구됐다. 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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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한상균(53) 민주노총 위원장에 대한 체포영장 집행은 잠정 연기됐다. 하지만 9일 오후 대한불교조계종의 총본사인 서울 조계사에선 경찰과 조계사 스님·종무원 간 충돌까지 벌어지는 등 숨가쁜 상황이 계속됐다. “노동법이 저지될 때까지 자진출석은 없다”는 한 위원장과 “종교시설로 대피한 채 계속 불법행위를 선동하는 걸 좌시할 수 없다”는 경찰, “조계사에 대한 공권력 투입은 불교를 강제로 짓밟는 행위”라는 조계종의 주장이 엇갈리면서다.

17년 만에 조계사 공권력 투입
조계종 “불교 강제로 짓밟는 것”
은신처 관음전 잇는 다리 끊고
스님 등 100명 ‘인간벽’ 몸싸움
경찰, 투신 대비 매트리스 깔아

 9일 오전부터 조계사엔 전운이 감돌았다. 조계종 총무원의 일감 스님(기획실장)은 경찰의 체포영장 집행 계획에 대해 “조계사에 대한 공권력 투입은 개인 한상균이 아니라 조계종, 나아가 한국 불교를 강제적으로 짓밟겠다는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한 위원장이 중재를 의뢰한 조계종 화쟁위원회가 아닌 총무원이 직접 나서 입장을 발표한 건 이날이 처음이다. 시민단체들의 찬반집회도 이어졌다. 오전 11시부터 조계사 일주문(정문) 앞에선 민변·문화예술인·전쟁반대평화실현국민행동 등 시민단체들이 릴레이로 ‘한상균 체포 반대’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에 애국국민운동대연합·어버이연합 등은 오후 1시부터 관음전 옆 계단에서 “한상균을 끌어내라”며 맞불 집회를 했다.

 조계사는 경찰력 투입에 대비해 행동에 나섰다. 오후 2시20분 조계사 종무원은 한 위원장이 피신해 있는 관음전 2층으로 통하는 구름다리를 끊어버렸다. 당초 조계사는 지난달 30일 일부 신도가 한 위원장의 방에 찾아가 끌어내려 한 소동 이후 1층의 남문·서문을 폐쇄했다. 그 이후 구름다리가 조계사에서 관음전으로 통하는 유일한 출입구였다.

 그러자 경찰은 폐쇄된 관음전 남문을 통한 진입 계획을 세웠다. ‘체포영장 집행 경찰관들이 오후 5시를 전후해 조계사 일주문을 통해 경내로 진입하고 관음전 잠금 장치 해정을 조계사에 요청한다’는 내용이었다. 경찰은 “조계사가 세 차례 이상 불응 시 열쇠공을 불러 해정을 시도하겠다”고 했다.

 이에 따라 경찰은 오후 2시30분부터 1000여 명을 관음전 근처로 이동시켜 진입을 준비했다. 오후 3시 조계종은 아예 스님 20여 명과 총무원 소속 종무원 100여 명을 관음전 앞으로 보내 남문과 서문, 대웅전으로 통하는 남문 앞 계단 등에 ‘인간 방벽’을 쳤다. 이들은 왼쪽 팔이나 가슴에 불법승 삼보 표식이 새겨진 스티커를 붙이고 나왔다. 경찰은 조계사 주변에 폴리스라인을 설치하고 한 위원장 투신에 대비해 매트리스 20여 개를 설치했다. 오후 3시20분. 관음전 서문과 계단 등 두 곳에서 대치하던 경찰과 종무원들 간에 몸싸움이 벌어졌다. 경찰력을 추가로 배치하려던 경찰을 일부 종무원이 막아서면서다. 경찰은 종무원 10여 명을 대치 현장에서 끌어냈지만 연행은 하지 않았다.

 오후 4시. 경찰이 통보한 한 위원장의 자진출석 마감 시한이 다가왔다. 한 위원장이 머무르는 관음전 407호의 창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하지만 “노동법이 저지될 때까지 물러설 수 없다”던 그는 나오지 않았다. 관음전 1층 남문의 긴장감은 최고조에 달했다. 경찰은 경찰력 1000명을 동원해 관음전을 에워쌌다. 경찰이 조계사 동의 없이 경내에 진입한 것은 17년 만에 처음이다. 그러자 조계사 스님 20여 명 등 종무원 100여 명이 ‘인간 방벽’을 치고 염불을 외우며 경찰력 진입을 저지했다. 반면 신도 200여 명은 관음전과 대웅전 사이의 계단에 서서 “한상균을 끌어내라”며 고함을 질렀다. 이 시각 민주노총은 “ 영장 집행 시 총파업과 총투쟁을 불사하겠다”는 성명을 냈다.

 숨가빴던 상황은 4시20분쯤부터 진정되기 시작했다. 인간 방벽을 치던 스님과 종무원들은 4시45분쯤 모두 대웅전 쪽으로 철수했다. 4시50분엔 조계사 종무실이 끊어졌던 구름다리를 다시 연결했다. 오후 5시 자승 총무원장은 “한상균 위원장의 거취 문제를 내일 정오까지 해결하겠다”고 발표했다. 오후 5시40분 이원준 종로서 경비과장은 “(한 위원장이) 내일은 나오지 않을까 생각하고 오늘은 (영장 집행을) 연기하겠다”는 경비방송을 했고 상황은 일단 마무리됐다.

글=조혜경·윤정민·김선미·박병현 기자 wiselie@joongang.co.kr
사진=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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