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속 140㎞, 두려움마저 추월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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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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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알파인 컵대회에 출전한 김설경. [사진 대한스키협회]

지난 7일, 캐나다 앨버타주 레이크 루이스에서 열린 국제스키연맹(FIS) 알파인 스키 월드컵은 ‘스키 스타’ 린지 본(31·미국)을 위한 무대였다. 그는 수퍼대회전에서 통산 70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하루 전엔 활강에서도 34번째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최고 경사각 30도, 표고차(출발과 도착 지점의 고도 차이) 800~1100m에 달하는 가파른 눈밭을 질주하는 활강 종목에서 본은 독보적인 실력으로 ‘스키 여제’의 위용을 떨쳤다.

평창 위해 모인 활강·수퍼대회전 팀
경사 30도 가파른 눈밭 아찔한 질주

펜스 부딪히고 무릎 꺾여가며 훈련
“처음엔 무서웠지만 지금은 짜릿해”

 레이크 루이스에서 132km 떨어진 카나나스키스의 나키스카 스키 리조트에서 한국 스키도 같은 종목에 도전장을 던졌다. 지난 3·4일 월드컵보다 두 단계 아래인 FIS 알파인 컵대회에 출전한 한국 선수들은 최고 시속 140㎞의 위압감을 견디면서 코스를 질주했다. 대표팀 3명, 후보팀 6명 등 9명의 알파인 스키 스피드 부문 대표 선수들은 짜릿함과 위험이 공존하는 슬로프에서 ‘한국판 린지 본’이 되기 위해 사투를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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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인 스키 스피드 국가대표 김동우·김설경·이동근·주사랑·이현지·최창현·이장우·박혁·조광호(왼쪽부터). [사진 대한스키협회]

 그간 한국 알파인 스키는 회전·대회전(슬로프에 촘촘하게 설치된 60~70개의 기문을 통과해 기술적인 요소가 더 중요한 종목)에 중점을 뒀다. 활강에선 1994년 릴레함메르 대회 허승욱(43·은퇴)을 끝으로 겨울올림픽 출전 선수가 없었다. 그러나 대한스키협회(회장 신동빈)가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 전 종목 출전을 목표로 정하며 변화가 시작됐다. 지난 7월부터 활강·수퍼대회전 등 속도를 겨루는 알파인 스키 스피드 종목 대표팀을 육성 중이다. 이 종목에 도전장을 던진 선수들은 프랑스·칠레·미국·캐나다를 오가며 해외에서만 4개월째 훈련하고 있다. 2009년 겨울체전 여자 알파인 스키에서 3관왕에 올라 최우수선수(MVP)로 뽑힌 이현지(20·단국대)는 “외국에서 이렇게 오랫동안 훈련한 적이 없다. 알파인 스키 스피드 종목의 기초부터 하나둘씩 배워가고 있다”고 말했다. 대표팀이 훈련지로 택한 나키스카 스키 리조트는 1988년 캘거리 겨울올림픽 알파인 스키 활강 경기가 열렸던 곳이다. 표고차 779m, 슬로프 길이 2250m에 이르는 세계적인 코스다. 그 동안 국내에는 활강 코스가 없었다. 내년 초 강원도 정선에 만들어질 알파인 경기장이 최초다.

 가장 큰 적은 부상이다. 대표팀 멤버 김설경(25·단국대)과 김동우(21·한국체대)는 알파인컵을 앞두고 연습을 하던 중 넘어져 펜스와 부닥쳤다. 여자 후보팀의 이현지와 주사랑(20·강원도스키협회)은 눈 둔덕에 걸려 무릎이 꺾이는 부상을 입었다. 그래도 9명은 겁없이 덤볐다. 오전 6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진행되는 빡빡한 훈련 일정을 견뎌냈다. 알파인컵 활강에서 한국 선수 중 가장 좋은 기록(1분5초39)을 낸 김설경은 “경사가 큰 코스를 한번도 안 타봐서 처음엔 무서웠지만 지금은 짜릿하다. 번지점프를 하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수퍼대회전(활강과 비슷한 급경사를 내려오며 기문 사이로 크게 턴을 하는 종목)에서 3위(1분17초74)에 오른 이현지는 “이 종목을 할 줄 아는 사람이 한국에서 우리 뿐이라는 데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카나나스키스=김지한 기자 hans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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