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사회] 1895년 서울에서 채집된 자생식물 '싱아' 최근 귀국

중앙일보

입력

소설가 고(故) 박완서의 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에 등장하는 싱아는 한반도 자생 식물이다. 사람의 손이 잘 안 닿고 볕이 잘 드는 산기슭에 주로 산다. 먹거리가 흔치 않던 시절엔 어린잎과 줄기가 식용으로 쓰였다.

러시아에서 보관하다 지난달 한국에 기증
채집자는 한국 최초 서양식 호텔 운영했던 손탁 여사

지금은 아니지만 구한말엔 서울에서 싱아를 흔히 볼 수 있었다. 120년 전인 1895년 서울에서 채집돼 러시아에서 보관 중이던 싱아 표본이 지난달 30일 한국으로 돌아왔다.

기사 이미지

1895년 서울에서 손탁 여사가 채집한 싱아 표본. [사진 국립생물자원관]

국립생물자원관은 러시아 코마로프식물연구소로부터 한반도산 식물 표본 100점을 최근 기증받았다고 8일 밝혔다. 1886년부터 1902년 사이에 조선에서 채집된 제비꿀·싱아·도라지·시호·층층잔대 등이다. 국립생물자원관은 "과거 한반도의 생물종 분포 연구를 위한 소중한 자료"라고 설명했다.

이들 표본은 직전까지 코마로프식물연구소 수장고에 있었다. 이 연구소는 1713년 세워져 러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과학연구기관이다. 러시아의 유명한 식물학자 블라드미르 코마로프(1869~1945)를 기리기 위해 1940년 현재의 명칭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코마로프는 1897년 한반도 북부를 탐사해 식물 표본을 채집하고 50여 종의 식물 신종을 학계에 발표했다.

이번에 기증된 표본은 당시 조선에 머물던 러시아·폴란드인 등 세 명이 채집한 것이다. 52점은 러시아인으로 동물학자이자 탐험가·의사인 알렉산터 알렉산드로비치 분게(1851~1930)가 1888년과 이듬해 인천 제물포에서 채집했다. 분게는 1888년은 조·러 육로통상조약 체결과 관련한 일로 조선을 방문한 것으로 초정된다. 그는 식물학자인 부친을 위해 여러 식물을 채집했다고 한다. 채집자를 정확히 알 수 있는 것은 식물표본엔 학명·채집지·채집연월일·채집자를 적은 표지를 붙이게끔 돼 있기 때문이다.

22점은 폴라드인 칼리노브스키가 비슷한 시기에 인천과 서울에서 채집했다.

나머지 26점은 채집자가 '손탁'(Sontag)으로 기재돼 있다. 서울 정동에서 한국 최초의 서양식 호텔인 손탁호텔을 운영했던 앙투아네트 손탁(1854~1925)이다.

기사 이미지

한국 최초의 서양식 호텔 `손탁호텔` 외관 [사진 `공공누리`]

손탁 여사는 구한말 한국에 왔던 러시아공사 베베르의 처형(妻兄)이다. 그녀 나이 서른한살이던 1885년에 베베르와 함께 통역사 자격으로 한국에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조선 정부는 외국과의 조약 체결 등을 위해 궁중에서 외교 사절을 접대할 일이 많았다. 외국어에 능통한 손탁은 베베르 추천으로 궁내부 관원이 되어 이 일을 도맡았다. 이를 계기로 고종황제·명성황후와 가까워졌다. 손탁은 커피를 진상하는 등 고종황제에게 서구 문화를 소개했다. 이러한 손탁에게 고종은 서울 정동에 있는 왕실 소유지를 하사했다. 현재의 이화여고 자리로 추정된다.

아관파천 당시에 손탁에게 도움을 받은 고종은 자신이 하사한 땅에 2층짜리 서양식 벽돌건물을 지어주었다. 손탁은 이 건물을 개조해 호텔로 운영하며 외교 사절 등을 손님으로 받았다. 손탁호텔은 조선에 체류하던 외교사절의 사교장으로 자연스럽게 활용됐다.

이후 1909년 다른 외국인 소유로 넘어갔다가 1917년 이화학당에 다시 팔렸다. 한때 이화학당이 이 건물을 기숙사로 사용했으나 1922년쯤 철거했다. 이화여고 정문 안엔 당시의 손탁호텔을 기념하는 표지석이 서 있다.

기사 이미지

이화여고 안에 있는 손탁호텔 터 표지석 [사진 `공공누리`]

손탁은 서울에 머물던 기간 중 1893년부터 1895년 사이에 서울에서 약 340점의 식물을 채집했다. 이들 식물표본을 코마로프식물연구소에서 보관해오다 이중 26점을 이번에 한국 기증 목록에 포함시킨 것이다.

구한말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손탁 여사가 열정적으로 식물을 채집해 표본으로 남긴 것은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다. 그녀가 남긴 표본은 창덕궁 등 채취 장소가 상세히 기재돼 당시 서울의 식물상을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게 국립생물자원관의 설명이다.

국립생물자원관에 따르면 19세 초부터 외국인이 식물학 연구 등을 위해 채집해서 남긴 한반도산 생물표본은 3만8000점에 이른다. 주로 러시아·일본·미국·유럽의 박물관·연구소에서 소장하고 있다. 이중 한반도로 되돌아온 표본은 4800여 점이다. 일본국립과학박물관, 헝가리자연사박물관, 큐수대학교에서 기증했다.

구한말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손탁 여사가 120년 전 서울에서 채집한 싱아·제비꿀 등이 러시아에서 100년 넘게 보관되다 이번에 한국으로 돌아온 것은 참 기이하면서 반가운 일이다. 도시화 등 서식 환경 변화로 서울에서 이제 싱아를 보게 어렵게 되었으니 더욱 그렇다. 그나저나 그 많던 싱아는 다 어디로 갔을까.

성시윤 기자 sung.siyoo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