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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우 홍콩 보내는 ‘상사맨’의 집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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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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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산 쇠고기 수출은 왜 안하죠.”

대우인터내셔널 이준호 대리
홍콩서 수입 원하는 업체 찾아
민관 ‘수출 개척협의회’에 소개
2년 정부 협상 끝 600㎏ 보내기로

 2013년 8월 홍콩의 한 육류 수입업체 사무실. 회의가 끝날 무렵 홍콩 현지 직원이 뜻밖의 질문을 던졌다. 당시 입사 3년차 ‘새내기 상사맨’이었던 이준호(32·사진) 대우인터내셔널 대리는 말문이 막혔다. 자신도 생각 못했던 일이었다. 철강본부에서 근무하다 육류 담당으로 옮긴 지 이제 1년이 넘어가던 때다. 미국산 돼지고기 가공품을 홍콩에, 호주산 쇠고기를 중국에 수출하는 중계무역 업무를 맡고 있었다.

 홍콩 출장을 끝내고 한국에 돌아온 이 대리는 수소문을 시작했다. 홍콩 거래처 직원의 말은 사실이었다. 한국에 들어오는 수입산 쇠고기는 해마다 4만t이 넘지만 한우를 수출한 실적은 지난 20년에 걸쳐 57t에 불과했다. 그마저도 국외 주재 한국 직원을 위해 조금씩 실어나르거나 개인적으로 가지고 나간 게 대부분이었다. 정부 대 정부의 검역·위생 협상을 거쳐 공식으로 수출한 실적은 사실상 ‘0’이었다.

 가축 질병인 구제역이 우선 걸림돌이었다. 2000년대 들어 한국에서 구제역이 빈번하게 발생했다. 구제역 청정국 지위를 확보하지 못해 생고기 수출길은 막혀 있었다. 게다가 한우 생산량이 국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다 보니 수출의 필요성을 느끼는 업체가 드물었다.

 이 대리의 머릿속에서 ‘왜 한우 수출이 안될까’란 질문이 떠나지 않았다. 쇠고기의 값이 비싸고 공급량도 적다는 점에서 일본은 한국과 비슷하다. 그러나 일본은 홍콩에서 3위의 쇠고기 수출 국가였다. ‘와규(和牛)’란 고급육 브랜드를 내세워 호주나 미국산 쇠고기보다 10배 넘게 비싼 값에 팔고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한류 바람이 불면서 한국을 방문해 한우를 맛본 홍콩인과 중국인이 늘었다. 맛은 와규 못지 않으면서 가격은 3분의 1 정도라 홍콩 거래처에서 오히려 한우 수출의 가능성을 크게 보기 시작했다.” 이 대리가 한우 수출을 실행에 옮길 수 있었던 이유다.

 기회는 찾아왔다. 2014년 1월 민관 합동 ‘수출 개척협의회’가 출범했다. 대우인터내셔널이 민간 회원 자격으로 참여했다. 여기서 이 대리는 한우 수입을 원하는 홍콩의 유통업체를 소개했다. 실마리는 이 대리가 마련했지만 다음은 정부와 공공기관의 몫이었다.

 신선육 수출에 필요한 검역·위생 절차는 매우 까다롭다. 정부간 협상이 중요했다. 이연섭 농림축산식품부 축산경영과 서기관은 “2년 넘게 정부와 민간이 힘을 합쳐 홍콩 수출의 문을 두드렸다”고 말했다. 농식품부 축산경영, 검역정책, 수출진흥 3개과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의 홍콩지사, 농산수출팀에 농림축산검역본부, 농협, 주홍콩 한국영사관까지 총출동했다. 태우그린푸드, 축림 등 국내 육류 가공업체도 적극 나섰다.

 지난해 7월 구제역이 다시 발생했지만 한국과 홍콩 정부는 한우 수출 협상을 이어갔다. 그리고 올해 4월 홍콩 정부는 “한우 수입이 가능하다”는 통보를 해왔다.

 14일 인천공항에서 출발해 홍콩국제공항으로 가는 비행기에 한우 600㎏이 실린다. 정부 대 정부의 검역·위생 협상을 거친 첫 한우 수출이다. 이진홍 농협 한우사업팀장은 “적은 물량이지만 국내 도축장과 가공장을 방문한 홍콩 현지 업체의 반응이 좋아 추가 주문이 예상된다”고 했다. 이 대리는 “홍콩은 세계 축산시장의 ‘테스트마켓’ 역할을 하는 지역”이라며 “홍콩에서 좋은 반응을 얻는다면 다른 지역으로의 수출 가능성도 커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동필 농식품부 장관은 “이번 한우 홍콩 수출은 고품격의 한우가 단순히 홍콩 식탁에 올라가는 의미만 있는 게 아니다”라며 “한국의 식문화를 더 알릴 수 있는 출발점이라는데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세종=조현숙 기자 newea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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