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 줬다 반납 강요하고 근무 절반 자원봉사 처리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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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월급 들어갔지? 20만원은 다시 반납해.”

‘비정규직 부당 처우 사례집’ 보니
쉬는 날 연락 안 된다고 해고 압박도

 산업폐기물 수거 업체에서 경리사원으로 근무하던 A씨(27·여)는 지난해 6월 사장에게 이런 황당한 요구를 받았다. 첫 월급으로 120만원을 받은 지 며칠 지나지 않은 때였다. 회사 측은 신입사원인 A씨에게 최저임금을 보장하는 것처럼 꾸며 고용노동부 지원금을 타낸 뒤 실제로는 100만원만 지급할 생각이었다. 얼마 후 사장은 더욱 심한 주문을 했다. 사무직으로 입사한 A씨에게 “회사가 어려우니 현장근무를 할 수 있게 포클레인을 배우라”고 했다. A씨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4개월 만에 퇴사했다.

 광주광역시 비정규직 지원센터는 지난해 12월부터 1년간 근로자 758명과 상담한 내용을 모아 3일 사례집을 냈다. 여기에는 임금 미지급부터 부당 징계·해고까지 근로자들이 현장에서 직접 겪은 갖가지 부당 노동행위 사례들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아파트 경비원 B씨(63)의 근무시간은 오후 8~10시와 다음날 오전 6~9시였다. 그런데 용역업체는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 다른 경비원을 채용하지 않은 채 B씨에게 오후 10시~다음날 오전 6시에도 휴대전화로 착신전환해 경비실 전화를 받도록 했다. B씨의 휴대전화는 때를 가리지 않고 울렸다. 입주민들은 “윗집 개가 짖는다” “층간소음이 심하다”며 B씨를 호출했다. B씨가 “쉬는 시간입니다”라고 하면 “경비도 잠을 자느냐”고 호통을 쳤다. 그래도 B씨는 야근수당 한 번 요구하지 않고 묵묵히 일했다. 하지만 1년 뒤 업체는 계약기간이 끝났다며 B씨를 해고했다.

 일자리가 아쉬워 어쩔 수 없이 부당 근로계약을 맺은 근로자도 적잖았다. 방과 후 돌봄전담사로 근무한 C씨(45·여)가 그랬다. 학교 측은 지난해 3월 하루 근로시간 4시간 중 2시간은 자원봉사로 돼 있는 근로계약서를 제시했다. C씨는 울며 겨자 먹기로 주당 20시간 이상 근무하면서도 임금의 절반만 받아야 했다. 근로계약서상 주 15시간 미만 근로자여서 각종 수당도 받지 못했다.

  광고물 재료 도소매업체에서 일하던 한 여성 근로자는 쉬는 날 연락이 닿지 않았다며 사장에게 해고 압박을 받았다. 사우나 카운터에서 일하던 또 다른 여성 근로자는 사장에게 툭 하면 욕설을 듣고 성희롱을 당했다. 근로자의 성별에 따라 직장에서 주로 겪는 애로점도 달랐다. 남성은 근무시간·산업재해 등으로 고민하는 경우가 많았고 여성은 주로 임금이나 휴가·징계·해고 문제에 시달렸다.

광주=김호 기자 kim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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