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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 뱅크 ‘날개’ 비대면 계좌개설 시작

중앙일보

입력

“안녕하세요, 고객님. 이름과 생년월일을 이야기해주세요.”

2일 서울 중구 신한은행 본점.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신분증 사진을 찍어 스마트폰으로 전송하자 영상통화 화면에 은행 상담원의 모습이 나타났다. 상담원은 신분증 사진과 영상통화 화면에 비친 임 장관의 얼굴을 대조한 뒤 몇 가지 개인정보를 더 물었다. 새 계좌를 열기 위한 본인 확인 절차였다. 이후 스마트폰 화면에 ‘계좌 개설이 완료됐습니다'는 문구와 함께 계좌번호가 떴다. ‘인증번호 신청·입력→신분증 촬영·전송→영상통화→계좌발급’에 걸린 시간은 3~4분 남짓이었다.

이날 임 위원장은 1993년 금융실명제 실시 이후 처음 은행 창구를 방문하지 않고 계좌를 연 주인공이 됐다. 금융당국은 그간 금융실명제법이 의무화한 실명확인 절차를 ‘대면 확인’으로만 엄격히 한정해왔다. 인터넷·모바일뱅킹 거래가 전체 은행 거래에 90%에 육박하지만 계좌를 열 때만은 꼭 창구를 방문해야 했던 까닭이다.

그러나 금융위는 기존 유권해석을 바꿔 1일부터 ‘비(非) 대면’ 방식을 허용하기로 했다. 이제 이론적으로는 은행 창구를 한 번도 가지 않더라도 웬만한 은행 서비스는 다 이용할 수 있게 됐다. 본격적인 ‘손안의 은행’, ‘무인(無人)점포 시대’가 열린 셈이다. 임 위원장은 “비대면 실명확인으로 1년 365일 금융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무인 스마트 점포가 출현해 은행 고객의 편의성이 크게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비대면 본인확인 제도는 최근 금융당국으로부터 설립 예비인가를 받은 카카오은행·K뱅크 등 인터넷전문은행에 ‘날개’를 달아줄 것으로 보인다. 이에 맞서 기존 시중은행들 도 속속 모바일 전문 브랜드를 도입하며 ‘선제 공격’에 나서고 있다. 기존의 시중은행 모바일뱅킹이 오프라인 지점을 보완하는 서비스 개념이었다면 새롭게 선보이는 브랜드는 모바일의 ‘독자성’,’전용성’을 앞세운다.

신한은행이 이날 선보인 ‘써니뱅크’가 대표적이다. 비대면 본인확인이 한 축이라면 ‘디지털 키오스크(Kiosk)’는 또 다른 축이다. 자동입출금기(ATM) 옆에 설치된 키오스크에 신분증을 넣고, 손바닥을 화면에 대면 ‘정맥지도’로 본인을 확인을 한다. 이 과정만 거치면 창구 직원을 만나지 않아도 카드를 발급받는 것은 물론, 예·적금이나 펀드 등 금융상품에 가입할 수 있다.

KEB하나·IBK기업·NH농협은행 등 다른 시중은행들도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하나은행은 올해 초 캐나다에서 먼저 선보인 모바일뱅크 ‘원큐뱅크’를 이르면 연내 선보일 예정이다. 한준성 하나금융 미래 혁신총괄 전무는 “모바일뱅크는 인터넷전문은행, 삼성페이 등 새로운 금융환경에 대응하기 위한 금융사의 새로운 플랫폼이 될 것”이라며 “현재 캐나다에서 성과를 거둔 핸드폰 번호를 통한 자금 이체, 스마트폰 전용 자유 적립식 적금 등의 모바일 서비스를 국내에서도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IBK기업은행도 자체 모바일 플랫폼인 ‘i-ONE뱅크’의 경쟁력을 높일 예정이다. 지방은행 중엔 부산은행이 유통회사인 롯데와 손잡고 ‘B뱅크(가칭)’를 준비하고 있다.

플랫폼뿐 아니라 서비스도 모바일에 맞춰 가다듬고 있다. 인터넷전문은행이 은행시장을 뒤흔들 주요 ‘무기’로 준비하고 있는 10%대 ‘중(中)금리’ 대출이 표적이다. 신한은행 역시 써니뱅크의 주요 서비스로 중금리 대출을 내세웠다. 문봉기 신한은행 실장은 “기존에 하지 않았던 5~7등급 고객을 대상으로 중금리 상품을 선보인다”며 “특히 빅데이터 기반으로 서류 없이 신청 5분 내에 대출할 수 있는 간편 대출과 직장인 및 군인 특화 대출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5월 은행권 처음으로 모바일뱅크를 선보인 우리은행도 중금리 대출 상품인 ‘위비모바일대출’ 시험을 마친 상태다. 월 평균 대출액이 80억원으로 6개월 동안 430억원의 중금리 대출이 모바일뱅크를 통해 나갔다. NH농협은행 관계자도 “모바일뱅크를 농협캐피탈과 연계해 중(中)신용자 대상으로 중금리 상품을 내놓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권우영 우리금융경영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시중은행들까지 모바일뱅크 경쟁에 나서면서 점차 무인 점포가 늘고, 중금리 대출 등 새로운 서비스가 늘어날 것”이라면서 “하지만 기존 점포의 수익성과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는데다 은행 건전성도 나빠질 수 있는 등 시중은행들이 풀어야 할 과제도 만만찮을 것”이라고 말했다.

염지현 기자 y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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